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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l 14. 2022

감정은 꺼낼수록 진해진다

마흔 즈음에

내가 일기를 꺼내는 건 주로 힘든 날이다. 상실, 좌절, 실패... 들로 상처받은 때다. 마지막 일기는 일 년, 이년 전쯤일까. 괜한 뒤척임 없이 적는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릴수록 감정은 깊숙이 내려가다 글을 마치며 겨우 바닥인 듯 안심한다. 거기에서 끝냈어야 했지만 잠시의 안도감 뒤, 결국 들춰선 안될 지난 지난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순간 끝인 줄 알았던 바닥은 늪이 되어 나를 침식시킨다.






어두운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종종 일기가 나오곤 하는데, 어떤 이는 지난 글을 읽노라면 다시 어둠이 치민다고도 한다. 나는 이야기를 꺼내보는 정도로는 다시 어둠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다만 감정이 극에 달한 경우엔 이기지 못하고 칠흑 속에 갇히고 마는데, 이럴 땐 밤새 울며 혼술이라도 해야 해소된다.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 공허함은 각각 느낌이 다르다. 외롭지 않지만 고독할 수 있고, 쓸쓸하면서 공허할 수도 있다. 완전히 어느 하나의 감정이라 떼어 말할 수 없지만 느끼는 마음은 분명 다르다. 어릴 적 모두 하나의 감정이라 느낄 때가 있었다. 이것도 그것, 저것도 그것, 이것도 그것으로. 서른 중반 어느 날부터 개별적으로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각이 분명했다. 내겐 특히 공허함이 크게 치밀었는데, 처음 그것이 공허함임을 느꼈을 땐 겨우 이게 공허함이구나라며 이해했던 것이, 이제는 오기도 전에 예보라도 하듯 스멀스멀 기운을 풍긴다. 그리고 지금은 더 깊고, 크게 다가온다.


깊은 어둠의 방문에 무너지지 않는 건 이겨낼 만한 감정도 충분히 수련된 이유다. 어둠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누군가 나를 감싸주기만 바랐다면, 지금 나는 사회적으로 단절된 인생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둠이 강한 만큼 밝음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고, 깊은 어둠만큼이나 높은 밝음을 얻었다. 밝음을 얻는 방법도 다르지 않았다. 즐거우려 했고, 즐거움을 반복했다. 감정은 꺼낼수록 진해졌다. 어둠은 어둠을 꺼낼수록 진해졌고, 밝음은 밝음을 꺼낼수록 진해졌다. 꺼낼수록 진해지는 건 양쪽 다 동일했다. 그럼에도 밝음이 더 힘든 건, 어둠은 동일한 패턴으로도 나를 어둡게 했지만 밝음은 가끔 다른 경로를 찾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모두 그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감은 사실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매 초 맞닥뜨리는 사건과 감정을 뱉어내거나 받아들이며 산다. 즐겁게 사는 건 힘든 일이다. 행복하게 살기 쉽지 않다. 물질적인 즐거움을 찾든 정신적인 즐거움을 찾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힘든데, 그걸 자주 해야 하는 건 곤욕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밝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며 알게 된 건, 그 과정 자체도 밝음을 더 진하게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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