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달나라의 장난,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
한겨레신문의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⑤ 한국전쟁 <“나는 민간억류인”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에서 이영준 교수는 김수영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중 하나를 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휴전협정이 조인되기도 전에 쓴 시인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에서 “시대를 장악한 대치 상황, 좌우 둘밖에는 선택지가 없는 이분법의 시대"에 그는 "냉전의 가장 거대한 빙산인 한반도를 녹일 수 있는 사랑의 언어, 자유의 언어”를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이영준 교수의 말대로 김수영의 시에서 “양극의 대치 상태를 배치하고 그것을 다시 엇갈리게 꽈배기로 엮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에서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수영은 반공포로서 자유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 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북한으로 갔던 자신의 행위를 “자유를 찾기 위하여서의 여정”이었다고 규정한다. 당시에 그는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 “현대의 천당”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속아서 북한으로 갔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후에 자세히 서술되는 것처럼 북한의 “개천 야영 훈련소에서 받은 말할 수 없는 학대"로 인해 “북원 훈련소를 탈출”하였다가 “중서면 내무성군대에게 체포”되어서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 등을 통해 북한 공산주의의 실상을 깨닫고 “평양을 넘어서 남으로 오다가 포로”가 된다. 그래서 그가 “자유를 찾아서 포로수용소에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거제도 제61수용소에서 단기 4284년 3월 16일 오전 5시”에 “제62적색 수용소로 돌을 던지고 돌을 받으며 뛰어들어” 갔다고 덧붙인다. 당시에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포로의 반공전선”에서 친공포로들에 맞서 싸운 것은 “독특한 위치와 세계사적 가치”를 가지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가 “자유를 위하여 출발하고 포로수용에서 끝을 맺은” 자신의 “생명과 진실”에 대하여 아무 뉘우침도 남기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자신이 공산주의 ‘이념’이 아니라 ‘자유’를 추구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자유를 연구하기 위해 소련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을 폭로한 책인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를 들춰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자신이 이미 북한 공산주의 사회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대한민국의 꽃”인 자유를 위해 “싸우고 싸우고 싸워” 왔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이북에 억류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UN군 포로들을 구해 내기 위한 “새로운 싸움”을 하라는 친구의 말을 전한다.
그는 자신의 북한 체험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UN군의 포로"가 되어 너무 좋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북한의 가시철망을 뛰어나오려고 애를 쓰다가 “억울하게 넘어진 반공포로들”이 다함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며 명복을 빈다.
마무리 부분에서 그는 북한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반공포로들의 노력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 “반항의 자유”, “새날을 향한 전승의 노래”, “숭고한 희생”이라고 거듭 찬양한다. 그리고 이러한 찬양의 노래가 없어지더라도 “자유의 길”을 영원히 잊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유의 천당이라는 선전에 속아서 북한으로 갔다가 탈출해서 포로가 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1953년의 미완성 소설 「의용군」에서도 "이북에 발을 실제 들여놓고 보니 모오든 것이 틀리다. '여기는 너무나 질서가 잡혀 있다!'"라고 하면서, "'질서가 너무 난잡한 것도 보기 싫지만 질서가 이처럼 너무 잡혀 있어도 거북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1953년의 산문「내가 겪은 포로 생활」에서도 포로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자유에 대한 염원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자유는 포로 생활에서 몸에 박힌 염원이자 기도로서 그의 시작 내내 길잡이가 되었던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 피난민이건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거러지건 아니 수용소 철망 밖에 있는 것이라면 소나 망아지 같은 짐승까지 포로들에게 있어서는 황홀하고 행복스러운 구경거리였다.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철창 밖에 나가 보았으면! 이것이 포로들의 24시간을 통하여 잊혀지지 않는 몸에 박힌 염원이요 기도였다.”(36-37)
한편, 이영준 교수의 말대로 김수영이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시가 「달나라의 장난」(1953)이다. 이 교수는 이 시가 포로수용소에서 나와서 남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던 그의 슬픈 생활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한다.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자신의 처참한 경험을 알 리 없는 그들과 섞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저 혼자 돌아가는 팽이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수영의 유일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이 시는 전쟁 직후 당면한 현실적인 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초월적인 예술 사이에서 긴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그는 전쟁 직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어 도시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살고 있다. 생활난에 시달리면서 누구보다도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주인” 집에 와서 “어린아이”가 돌리고 있는 “팽이”를 보게 된다.
그는 “살림을 사는 아이”들처럼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면서, 잠시 멈춰서 노는 아이들이 돌리는 자꾸 팽이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소설보다 신기로운” 자신의 생활을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자신의 나이와 나이가 준 “무게”를 생각하면서 "속임 없는 눈"으로 팽이가 도는 것을 보니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현실적인 생활을 위해 뛰어다니지만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초월적인 예술과 정신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 바쁘지도 않으니 /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라고 덧붙이는 것도 생활난을 해결하고 여유 있게 멈춰 서서 초월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추구하고 싶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것은 시인이 「토끼」(1949)에서 태어날 때부터 뛰는 훈련을 받는 운명에 처한 ‘토끼=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고 서서” “별과 또 하나의 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고 했던 말의 변주로 보인다.
이어서 그는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던지자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팽이를 “달나라의 장난”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팽이가 돌면서 자신을 울린다고 덧붙인다.
이것은 현실을 초월해서 소리 없이 도는 자유로운 팽이를 보면서, 현실 생활의 밑바닥에 끈으로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의미로 이해된다. 자신도 팽이처럼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그가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자신은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제트기로 상징되는 전쟁 기간에 돈을 번 뚱뚱한 주인처럼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밤”, 즉 현실적인 시간인 낮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초월적인 시간인 밤에는 방심하지 말고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데 현실 생활을 떨치지 못하고 나약하게 울고만 있는 자신을 팽이가 비웃는다고 느낀다.
그는 현실 생활 속에서 “비행기 프로펠러”처럼 힘차게 돌아가는 “강한 것”보다는 초월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팽이”같이 “약한 것”이 기억이 멀다고 한탄한다.
전쟁 직후에 직면한 극심한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초월적인 예술과 정신을 추구하는 것보다 다급하고 절실한 문제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처럼 도는 낡은 팽이, 즉 초월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무리 부분에서 제시되는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라는 말은 흔히 개인과 집단의 대립으로 해석된다. 그가 개인적인 '스스로 도는 힘'을 긍정하면서, 집단적인 '공통된 그 무엇'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마무리부분에서 개인과 집단의 대립이 제시되는 것은 의미상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도는 힘"과 "공통된 그 무엇"을 유사한 의미가 병렬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도는 힘”과 “공통된 그 무엇”이 모두 자유를 상징한다는 해석이다.
이것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끊어 읽으면 분명해진다. 그리고 "너도 나도"라는 말 자체가 "공통"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
그렇다면, 이 시행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생각하면 서러운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너도 나도” 가지고 있는 “공통된 그 무엇”인 “스스로 도는 힘”, 즉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 울지 말고 적극 노력해야 된다는 다짐으로 볼 수 있다.
전쟁 직후의 극심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쫓겨 다니는 듯이 살고 있는 현실 생활로부터 벗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유를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고 보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현실 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초월적인 자유만 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이미 시의 앞부분에서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 노는 아해들도 아름다워 보인다”라고 하면서, 초월적인 놀이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도 긍정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영원히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것이 “밤”이라고 분명히 한정하고 있다. 즉 현실적인 시간인 낮에는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다가도 초월적인 시간인 밤에는 자유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낮과 밤, 현실적 생활과 초월적 자유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영준 교수의 말대로 김수영의 시적 이상이 자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이상적인 자유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도 함께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그가 양자택일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방식은 언제나 가운데에서 중립을 지키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김수영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곡예사처럼 양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달나라의 장난(1953)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조국으로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1953)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하여서의 여정이었다 /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 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 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 // 나는 원래가 약게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 / 진실을 찾기 위하여 진실을 잊어버려야 하는 / 내일의 역설 모양으로 / 나는 자유를 찾아서 포로수용소에 온 것이고 / 자유를 찾기 위하여 유자철망(有刺鐵網)을 탈출하려는 어리석은 동물이 되고 말았다 / “여보세요 내 가슴을 헤치고 보세요 여기 장 발장이 숨기고 있던 낙인보다 더 크고 검은 / 호소가 있지요 / 길을 잊어버린 호소예요”
“자유가 항상 싸늘한 것이라면 나는 당신과 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 그러나 이것은 살아 있는 포로의 애원이 아니라 / 이미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슴으로 등으로 쓸고 나가는 / 저 조그만 비행기같이 연기도 여운도 없이 사라진 몇몇 포로들의 영령이 / 너무나 알기 쉬운 말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당신의 뺨에다 대고 비로소 시작하는 귓속 이야기지요” / “그것은 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지요 / 누가 거제도 제61수용소에서 단기 4284년 3월 16일 오전 5시에 바로 철망 하나 둘 셋 네 겹을 격(隔)하고 불 일어나듯이 솟아나는 제62적색수용소로 돌을 던지고 돌을 받으며 뛰어들어 갔는가”
나는 그들이 어떻게 용감하게 싸웠느냔 것에 대한 대변인이 아니다 / 또한 나의 죄악을 가리기 위하여 독자의 눈을 가리고 입을 봉하기 위한 연명을 위한 아유(阿諛)도 아니다 / 그리고 이러한 변명이 지루하다고 꾸짖는 독자에 대하여는 / 한마디 드려야 할 정당한 이유의 말이 있다 / “포로의 반공전선을 위하여는 / 이것보다 더 장황한 전제가 필요하였습니다 / 나는 그들의 용감성과 또 그들의 어마어마한 전과(戰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 그들의 싸워 온 독특한 위치와 세계사적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 그리하여 나는 자유를 위하여 출발하고 포로수용소에서 끝을 맺은 나의 생명과 진실에 대하여 / 아무 뉘우침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 나는 지금 자유를 연구하기 위하여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의 두꺼운 책장을 들춰 볼 필요가 없다 / 꽃같이 사랑하는 무수한 동지들과 함께 / 꽃 같은 밥을 먹었고 / 꽃 같은 옷을 입었고 / 꽃 같은 정성을 지니고 / 대한민국의 꽃을 이마 위에 동여매고 싸우고 싸우고 싸워 왔다
그것이 너무나 순진한 일이었기에 잠을 깨어 일어나서 /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신성한 착감(錯感)조차 느껴보는 것이었다 / 정말 내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나오려고 / 무수한 동물적 기도를 한 것은 / 이것이 거짓말이라면 용서하여 주시오 / 포로수용소가 너무나 자유의 천당이었기 때문이다 / 노파심으로 만일을 염려하여 말해 두는 건데 / 이것은 촌호(寸毫)의 풍자미도 역설도 불쌍한 발악도 청년다운 광기도 섞여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여러분!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시가 아니겠습니까 / 일전에 어떤 친구를 만났더니 날더러 다시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 정색을 하고 물어봅니다 /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 내가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것은 / 포로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 / 민간 억류인으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라고 / 그랬더니 그 친구가 빨리 삼팔선을 향하여 가서 / 이북에 억류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UN군의 포로들을 구하여 내기 위하여 / 새로운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 이북에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 상병포로들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한 감이 듭니다”
내가 6·25 후에 개천(价川) 야영훈련소에서 받은 말할 수 없는 학대를 생각한다 / 북원 훈련소를 탈출하여 순천 읍내까지도 가지 못하고 / 악귀의 눈동자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운 밤에 중서면 내무성군대에게 체포된 일을 생각한다 / 그리하여 달아나오던 날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 군복을 사흘을 걸려서 찾아내고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 그리고 나는 평양을 넘어서 남으로 오다가 포로가 되었지만 / 내가 만일 포로가 아니 되고 그대로 거기서 죽어 버렸어도 / 아마 나의 영혼은 부지런히 일어나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 대한민국 상병포로와 UN 상병포로들에게 한마디 말을 하였을 것이다 / “수고하였습니다”
“돌아오신 여러분! 아프신 몸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 우리는 UN군의 포로가 되어 너무 좋아서 가시철망을 뛰어나오려고 애를 쓰다가 못 뛰어나오고 / 여러 동지들은 기막힌 쓰라림에 못 이겨 못 뛰어나오고” // “그러나 천당이 있다면 모두 다 거기서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 억울하게 넘어진 반공포로들이 / 다 같은 대한민국의 이북 반공포로와 거제도 반공포로들이 / 무궁화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 나는 이것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 반항의 자유 / 진정한 반항의 자유조차 없는 그들에게 / 마지막 부르고 갈 / 새날을 향한 전승(戰勝)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 그것은 자유를 위한 영원한 여정이었다 / 나직이 부를 수도 소리 높이 부를 수도 있는 그대들만의 노래를 위하여 / 마지막에는 울음으로밖에 변할 수 없는 / 숭고한 희생이여! // 나의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 지금 이 땅에는 온갖 형태의 희생이 있거니 / 나의 노래가 없어진들 / 누가 나라와 민족과 청춘과 / 그리고 그대들의 영령을 위하여 잊어버릴 것인가! // 자유의 길을 잊어버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