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경매로 신혼집을 샀다

낙찰받은 날 집주인을 만나다


낙찰됐대


11시 50분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가 보낸 ‘낙찰’ 두 글자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처음 경매장에 갔을 때는 손에 땀이 났다. ‘이 집을 낙찰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다른 집은 또 언제 알아보나’와 같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최저입찰가에서 아주 조금(?) 높여 쓴 금액으로는 집을 차지할 수 없었다. 여러 번의 낙방(?)이 계속되며 언제부턴가 경매 참여는 특별하지 않은 행사가 되었다.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격대, 위치 등이 맞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참여했다. ‘일단 넣고 보자’ 별 기대감 없이 계속 도전해서였을까. 낙찰이 되었다.


경매 전 남자친구와 쓰기로 한 금액으로 낙찰이 되다니?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경매를 매번 참여할 수 없어 남자친구 어머니가 대리인으로 참석해 주셨는데 우리가 처음에 쓰기로 한 금액보다 천만 원 높게 낙찰가를 쓰셨다. 최저입찰가에서 50만 원 높게 쓴 2등을 제치고 최고가 매수인(낙찰자)이 됐다.


이 집을 낙찰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 입찰 전 임장을 다녀오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끌리는 집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원했던 집의 위치는 낙성대역과 사당역 근처였기 때문. 지금 집은 신림에 있었고 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이 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출근길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출근 시간이 단축될 것 같았다.


낙찰받은 날 바로 퇴근하고 남자친구와 신림역에서 만났다. 신림역에서 나오자마자 버스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버스 정류장에 가봤으나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신림역은 꾸역꾸역 밀려든 사람들을 처리해 내기 바빴고 붐비는 신림역의 저녁은 분주했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니 신림역 근처와 사뭇 다른 분위기의 조용한 동네가 나왔다. 우리가 내리는 곳에 사람들이 단체로 내렸고 언덕을 올라 주택가로 들어섰다. 주택가에 듬성듬성 나 있는 가로등만이 어둠을 밝혔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왔다. 우리가 낙찰받은, 적어도 앞으로 2년은 살게 될 집이 보였다.


낙찰받은 날, 집주인을 만나다


낙찰받으면 대문에 쪽지를 붙여 연락처를 남긴다. 낙찰자 ooo이니 연락 바란다는 내용의 쪽지다. 성의를 보이기 위해 일부러 편지지에 봉투, 테이프까지 준비해 갔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꺼내 붙이기 전, 우선 벨을 눌러봤다. 바로 집주인을 만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 번 정도 벨을 눌러보고 사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쪽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열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바로 남자친구 어깨 뒤로 물러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처음 접하는 이런 상황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자친구: 안녕하세요. 오늘 이 집을 낙찰받은 사람입니다. 집에 안 계신 줄 알고 쪽지를 남기려 했는데,
(편지 봉투를 내밀며) 제 연락처입니다.


중년 남성은 오늘 경매가 열린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봉투를 받아 든 채, 알았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집주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얼핏 집 안이 보였는데 불도 켜지 않는지 집 안이 온통 어두웠다. 문이 열린 틈새로 새어 들어간 빛이 집을 비추자 벽에 붙은 가족사진 액자가 보였다. 실루엣만 보이는, 가족사진 속 사람들은 곧 이 집을 떠나겠구나. 누군가는 집을 얻고 누군가는 잃을 것이다. 남자친구가 집주인과 대화를 하는 중, 어두운 그늘이 드리운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문이 닫히고 언덕을 걸어 내려와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 만났던 집주인이 편지를 보고 전화를 한 것. 집주인 아저씨는 "이렇게 늦은 시간(회사 끝나고 8시쯤 집에 도착)에 오면 어떻게 하느냐"부터 시작하여 “법원에서 연락받으면 빨리 나갈 거다, 나도 경매해봐서 안다” 등 못다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도 첫날에 집주인과 만나 연락처까지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예의를 갖춰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우리의 진짜 경매 집 낙찰받기가 시작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당에서 결혼하면 무엇이 다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