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할 수 있는 권력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by 서하루

워낙 유명한 그림이다. 피카소와 큐비즘을 대표하는 작품. 우리는 유명한 그림 앞에서 무언가 대단한 미학적 감각을 느껴야 한다는 압박을 자주 받곤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이 탄생했던 시절과, 내가 지금까지 나고 자란 환경이 다를진대 어떻게 그 ‘위대함’을 나도 똑같이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이런 그림을 보면 ’왜 또 이 여자들은 헐벗고 있을까?‘, ’왜 하필 ‘여자’, ‘누드’일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발화력’. 얼마 전 이라영 작가의 독서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발화력을 가진 이의 권력은 엄청나다. 그걸 뼈저리게 느꼈던 20대가 있었다.


회사에서 비주얼 디렉터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외근 나간 촬영 현장에서, 계약서에 기재된 ‘을’이라는 명칭과 달리, 사진을 찍는 촬영 실장님은 실제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스텝과, ‘갑’ 회사에서 파견된 어린 여자 직원인 나는 하루종일 그의 취향에 따라 선곡된 음악을 듣고, 그의 기호에 맞춘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그의 컨디션에 따라 촬영 마감 시간을 결정당했다. 그때, 다짐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젠간 내가 있는 공간에 흐르는 음악은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취향을 표출하고, 주관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권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힘인가’하는 생각을 이 그림을 보며 다시 떠올린다. 아비뇽에 사는 이 처녀들(피카소가 창녀들이라고 불렀던 이들)은 자신들이 보여지는 새로운 방식인, 큐비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아, 이 얼마나 수동적인 존재인가. 나는 이제 이런 그림을 그만 보고 싶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2화집념. 버리고 싶기도, 갖고 싶기도한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