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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10. 2023

지속 가능하게 여행 작가를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하기 위하여

대학원을 마치고 힘들게 취업을 했다. 일을 하면서도 답답할 때면, 재미있는 일들을 만끽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여행길을 떠났다. 회사에서 번 돈은 여행하는데 투자하였다. 여행을 다녀오면 아주 잠시나마 에너지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추억이 희미해져 약빨이 빠르게 떨어져만 갔다. 조금 더 여행의 흥분을 유지시키기 위해 차곡차곡 개인 SNS에 흔적을 남겨놓기 시작하였다. 


여행 콘텐츠가 제법 쌓였을 무렵 출판사와 함께 여행책을 출간할 기회가 생겼다. 첫 여행책으로 계약금 100만 원이 입금되었다. 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10%의 인세도 제공한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여행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그 어떤 다국적 회사, 연봉 높은 회사보다 '여행작가'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첫 책은 스페인 여행책이었다. 일주일간 스페인을 어떻게 알차게 여행할 수 있는지 알짜배기 정보를 모아 만든 책이다. 이미 스페인을 마르고 닳도록 여행해서 눈감고도 여행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막상 한 권의 책으로 묶으려 하니 확인해야 할 여행 정보가 너무 많았다. 대망의 첫 여행책을 위해 매 휴가 때마다 스페인으로 향했다. 왕복 비행기표만 200만 원이니, 두세 번만 가도 명품 가방이 하나 날아가는 셈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어떻게든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었다. 모든 주말과 평일 저녁 시간을 다 바쳐 만든 원고 '7일의 스페인'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곧 2쇄를 찍었고, 목돈이 내게 들어왔다. 물론 내가 투자한 비용 대비 미미한 비용이긴 했지만, 마냥 좋았다. 책을 내 자식이라 여겼고, 자식에게 돈을 따지는 건 창작자이자 엄마로서 갖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라오스책, 스페인책 등을 집필할 기회가 생겼다. 원 없이 여행을 하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벌 수 있었다. 내 여행이 콘텐츠화가 될수록 기분은 좋았지만, 콘텐츠가 쌓일수록 여행업만 갖고 살아가는데 한계를 느꼈다. 콘텐츠에 욕심이 생기면 생길수록 여행을 더 자주 갈 수밖에 없었고 떠날 때마다 현실적으로 돈이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소비가 필수적이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더욱 열심히 회사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셈이다. 


연애로 치면 아주아주 잘생긴 남자인데, 이 남자를 만나려면 내가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 달콤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 한순간을 위해 대부분은 시녀처럼 일을 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건전한 관계가 될 것인가, 질질 끌려다니는 관계가 될 것인가. 


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좋아한다'는 마음만 갖고 현실을 유지하긴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정당한 보상'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합당할 때 보다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사랑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경험, 보람도 중요하지만 당시 난 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왜냐하면 여행 콘텐츠를 만들면서 수익적으로 계속 마이너스를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만들며 돈도 벌 수 있다고?'라는 철없는 희망은 '아, 오로지 콘텐츠만으로 먹고살기 참 힘든 구조네.'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열심히, 더 잘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여행작가 생활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여행작가라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뒤에서 할 이야기이지만 어떻게 지속가능한 여행 작가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는지 그 여정을 천천히 공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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