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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Jul 13. 2021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건축기2

-근거없는자신감의대책없는발현

                                      

“여기 초등학교 근처에 집을 지을만한 50평대 땅이 있나요?“


나는 조심스레 공인중개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런 쪽으로 아는 게 없으니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으로 들어선 공인중개사 사무실이었다. 처음 들어가 본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나에게 아주 낯설고 어색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안내하고 큰 지도를 피고 부동산 거래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말이 많았다.


이 인근에 50평대 땅은 없으며 최소 100평이 기본이다. 이쪽은 구획이 정리된 지역이라 자투리 땅이나 작은 땅은 거의 없는 편이고. 초등학교 바로 앞 코너에 마침 분할이 되어서 80평짜리 땅이 급매로 나왔는데 3~4층으로 지어서 1~2층에 상가세를 놓고 맨 위층에 살면 딱이다. 요즘엔 상가주택이 대세다. 비싼 땅이니 임대료를 받아야 땅값을 하지 않겠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인근에 땅값이 비쌌는데 지금은 조금 내려서 지금이 땅을 구입하기에 적기다. 여기는 위치가 좋아서 주택만 지어 살기에는 땅이 아까우니 일반 주택보다는 무조건 1~2층에 상가를 넣어야 된다. 그 땅 바로 다음 골목 코너에도 젊은 부부가 3층짜리 상가주택을 지어서 1~2층에 세를 놓고 3층에 살고 있는데 정말 만족스러워한다. 향후 이 골목길 끝에 큰 길이 날 예정이고 이 동네에는 IC도 예정되어 있으니 이 가격에 이만한 땅이 없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반복해서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그 끝도 없는 이야기 들 중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 이야기는 딱 세 가지였다. ‘상가주택, 초등학교 앞 코너, 급매’


모두 나에게 낯선 단어들이었다. 상가주택은 뭐란 말인가. 내가 아는 세계는 아파트, 주택, 상가 이 세 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말이다. 상가와 주택의 컬래버레이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고 잠정 결론을 짓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급히 부동산을 빠져나왔다. 거기 계속 앉아 있다가는 공인중개사 아저씨의 삼성 입사 시절 이야기부터 공인중개사 입문기까지 낱낱이 알게 될 터였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해졌다. 우린 어쨌든 무조건 주택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방치된 쓰레기가 쌓여있는 땅



땅에서 바라본 1분 거리 초등학교

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나와 아저씨가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았고 조금 전에 학교 앞을 지나면서 스치듯 지나갔던 방치된 쓰레기가 쌓여있던 땅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창밖으로 그 구원의 빛이 찬란한 땅을 감상했다. 땅 앞에는 인근 원룸과 주택의 쓰레기 집합소인듯한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지만 말이다.  아, 초등학교까지 1분 거리라는 중개사 아저씨의 말이 과장이 아니구나. 초등학교를 마주 보는 코너에 자리한 이 땅에 집을 짓는 다면 모든 불안감은 다 날려버리고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마구마구 들던 순간이었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부동산에서 나는 폭풍 같은 중개인 아저씨의 쏟아지는 말들을 듣고 나니 정신이 없으면서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 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아저씨의 다른 말들은 다 흘러들었고, 급매로 나와서 저렴하다는 평당 280만원 이라는 땅값만이 내 귀에 맴돌았다. 집 대출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있는 돈은 현금 7천만원이 전부이고(그 마저도 그 집이 시세대로 팔려야 확보할 수 있는 자본이다) 4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나는 신랑 월급으로 알뜰살뜰 살아왔지만 적금 하나 조차 넣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2억2천만원이 넘는 땅이 눈에 들어온다고? 땅값의 30%로의 자본도 없으면서 그 땅을 사서 어쩌겠다는 건지 아무런 대책도,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 내 머릿속은 그날 이후 이사, 땅, 상가주택 이 세 단어만 머릿속에 뜬 그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사실 그 당시에 그 땅에 우리집을 짓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신랑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우리가 보내고 싶다던 그 초등학교 바로 앞 코너에 80평짜리 땅이 있는데 초등학교까지 1분 거리야. 아니 실제로는 1분도 안 걸려. 한 30초?? 원래는 훨씬 비싼 땅인데 지금은 땅주인이 급매로 내놔서 평당 280만원이래. 그 위에는 중학교가 있으니까 민우 중학교까지 생각하면 15년 동안 아이들이 초, 중학교를 걸어서 다닐 수 있어. 내가 복직하고 일 년 반뒤면 민제가 초등학교에 가는데 등하교 걱정 없이 학교를 보낸다는 건 맞벌이 가정인 우리에게 가장 큰 메리트야. 그 뒤로 새길 나는 거 알지? 그 길이 생기면 어머님이 애들 봐주실 때 왔다 갔다 하시기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신랑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우리의 자금 상황을 알면서 2억2천만원짜리 땅을 산다고??? 도대체 무슨 말이야. 자기. 현실적으로 생각해. 아무리 우리가 아랫집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해서 지금 우리는 현재 땅 계약금 낼 돈 조차 없는데 그 땅을 사지도 못 할 상황에 집은 무슨 돈으로 지어?? 우리 가족 모두 스트레스받는 상황이지만, 자기 마음이 많이 괴롭고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릴랙스하고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자.” “무슨 다른 방안? 지금 여기서 크게 다른 방안이 있어? 어차피 여기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면 대출은 필수야. 대출을 더 하나 덜하나 그 차이라고. 아파트 1층으로 이사 가도 상황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어쨌든 공동주택 생활의 스트레스는 거기 가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 당장 이사 갈 수 있는 1층 아파트가 없으면 또 다른 방안은 뭐야 그럼? 우린 최대한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래. 당신이 하는 말 모두 맞는 말이야. 그런데 우린 지금 돈이 없잖아. 땅을 살 돈도. 집을 지을 돈도”

다시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신랑 말이 맞았다. 지금 당장 아파트가 팔린다는 보장도 없고 그럼 우린 통장에 200만원 정도의 여유돈이 전부였다. 200만원이라니. 부동산의 비읍에도 관심 없던 우리였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게 어떤 과정인지 전혀 감도 없었다. 신랑과 나 둘 다 경제에 대한 관념이 거의 없이 그저 일을 해서 버는 내에서 아껴 쓰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가까운 곳을 여행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던 우리였다. 당연히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공무원이라는 직장으로 시작한 우리는 어떤 우리만의 우물 안에서 살고 있었을 뿐 부동산, 투자, 주식과 같은 경제관념 등에 무지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분야에서 우리는 아주 백지, 더 심하게 말하면 무식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우리였기 때문에 신랑의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랫집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위축된 나의 마음을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둘째는 이제 겨우 기기 시작했지만 첫째와 달리 훨씬 더 활동적이고 큰 몸짓을 가졌다. 그런 둘째가 걷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질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우린 지금보다 더 큰 불안감을 온몸에 한가득이고 지고 살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란 것이 가끔 발현될 때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적극적이지도 아니 사실 소극적인 성향에 가까운 아이였다. 겨우 이모가 지원해준 돈으로 입학금은 마련했지만 당장 쓸 용돈이 걱정이었다. 집안 사정을 뻔히 다 아는 상황에 엄마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대형마트에서 하루 일당 4만5천원을 받고 그날 나에게 주어진 제품을 시식이나 시음 매대를 놓고 판촉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아이들이 잘 먹는 무첨가 두유입니다, 드셔 보시고 가세요” 눈앞에 지나가는 사람도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바닥만 응시한 채 머뭇거렸다. 당연히 첫날은 하나도 팔지 못했다. 4만 5천 원을 받고 내 밥값도 못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아니 그 기분은 씁쓸한 게 아니라 어떤 실패자의 기분이었다. 내 옆 라인에서 오렌지주스를 파는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언니의 제품은 한 바구니 건너 한 바구니마다 담겨 있었다. 언니는 목소리가 컸다. 두유를 하나도 팔지 못한 그날 집에 가서 잠들기 전에 다짐했다. 내일은 나도 꼭 목소리를 크게 하리라. 나는 갑자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발현되어 내일은 정말로 두유를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정말로 큰 목소리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그날이 비가 오는 주말이라 마트에 유독 사람이 많던 날이라서 였을까. 나는 전날 하루도 팔지 못했던 두유를 35박스나 팔았다. 아주 오랫동안 잘 팔리지 않던 제품이었는데 말이다. 어떤 자신감이 머뭇거리던 나를 당당하게 만든 걸까. 그날을 계기로 나는 마트 MD들에게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고 입학 전에 한 학기 용돈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후로도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뜬금포 발현되곤 했는데 가령 어떤 경품 당첨 자리에서 분명히 내 번호가 호명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또는 확신이 드는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면 신기하게 내 번호는 호명되고 크게는 백화점 상품권, 자전거에서 작게는 고무장갑이라도 받는 경험을 종종 하곤 했다. 이번에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주 강하게, 아주 터무니없게, 그리고 아주 대책 없이 발현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이 땅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잘 될 거야’라는 정말 택도 없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휘감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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