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삭제하고 말장난을 쳐보자
나는 왜 막스 아저씨가 자신이 이곳에 없는 동안 내가 그 그림들을 보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크빌트 부흐홀츠
나의 옷장은 화려한 편이다. 꽃무늬 패턴의 원피스, 핑크색 블라우스, 형형색색이다. 친구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보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다. 아이들은 옷의 출처가 중요하지 않다. 명품인지 유니클로인지 자라인지 이름 모를 보세인지 관심 없다. 노란색 꽃이 화려하게 수놓은 원피스를 입으면 식탁보를 두른 마녀가 되고, 프릴이 크게 달린 블라우스를 입으면 꿈과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요들레이소녀가 된다. (말하다 보니 놀림당하는 편에 가깝지만) 어쨌든 알록달록한 옷을 걸친 날이면 출근하기 전부터 전신 거울을 보고 묘한 기대를 한다.
아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다. 구속 없는 발상은 즐거운 사고활동을 이끌어내고 창의를 넘어 창조적인 시간을 만든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된, 반은 죽고 반을 살아 있는 슈뢰딩거 고양이는 어느새 좀비가 되어 있기도 한다. 좀비가 탄생한 시기와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등장한 시기를 검색해 보고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관계성을 찾기도 한다. 또 마법한자문이나 속담책을 보기 시작한 아이들은 틈만 나면 수업 주제와 상관없는 한자 조어나 속담 구절을 외친다. '초보'의 '초'는 무슨 초일까 물으면 초고추장, 초파리, 초콜릿이 나오고 '예술'의 '술'은 맥주, 소주, 와인, 엄마 아빠의 주종이 화려하게 열거된다. 하루는 알고 있는 속담을 마음껏 말해보기로 했다. 속담은 관용적 표현이다. A와 B가 만나 새로운 의미 C를 만든다. 아이들은 A와 B를 새롭게 해석하고 기발한 D, E, F를 창조해낸다. 현규는 친구들에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의미를 아는지 물었다. 유진이가 '뭐든 늘 하던 사람이 잘한다'고 정답을 말했는데도 ‘땡!‘을 외쳤다. '고기를 먹을 때는 빠르게 먹어야 형에게 뺏기지 않고 많이 먹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선점하는 기술을 배워서 뺏기지 않고 먹어본 놈이 계속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지는 '한술 밥에 배부르랴'의 뜻을 새로 만들었다. '시작에 만족할 순 없으니 꾸준히 하라'는 설의적 표현을 의문형으로 바꿔 버렸다. ’너 한 숟가락 먹고 배불러?‘라는 뜻이고 다이어트하는 친구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속담에 아이들은 "오~" 끄덕거리며 민지의 속담풀이에 즐거워했다. 속담을 더 알고 싶다고도 하고 어른들은 진지한 줄만 알았는데 조상님들은 재밌다며 칭찬도 한다.
나는 이 창조적인 아이들에게 미술작품을 몇 점을 보여줬다. 마르셀 뒤샹의 <샘>.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에요? 왜 변기가 인기가 많아요?" 1917년 출품을 거절한 미국 독립 예술가 협회 사람들의 표정이 이랬을까. 아이들은 완강한 표정으로 야유를 보냈다. 그러더니 볼일 급한 사람이 화장실 모든 칸이 차서 참을 수 없을 때, 사용하도록 제작한 긴급 화장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놀리기 위해 화장실 밖에 놨을 거라는 추측도 더했다.
다음은 자크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생을 아는 사람들은 인물과 시대에 집중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드라마틱한 생의 한 순간을 연결하며 감상할 것이다. 반대로 낙담하는 표정, 굽은 어깨, 절규하는 듯한 몸짓에서 그림이 가리키는 상황은 언제인가 다양하게 유추해 볼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관습적인 과정을 시원하게 건너뛰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원근법에 따라 시선을 끄는 가운데 남자, 명도 짙은 갈색 의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오른손을 뻗은 채 춤을 출 준비. 맞다, 이것은 문워크와 유사한 실루엣이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어떤가.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입체주의의 출발점으로 불리며 깊이감을 배제하고 이차원적으로 표현했다는 기나긴 설명은 의미 없다. 아이들은 분리된 인체 조각을 보고 제로 투 댄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 함께 일어나 겨드랑이를 한껏 드러낸 채 귀여운 엉덩이춤을 추었다.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마릴린먼로 팝아트는 코로나 시국 열화상 카메라가 되었다.
대화도 놀이가 된다. 소통의 기본 조건이 유머가 되면 사고의 유연함이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난다.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산뜻함이 남는다. 어쩌면 타인과의 대화가 피로해지기 시작한 이유는 파편화된 정보가 널려있고 우린 알 필요가 없는 정보 알게 되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 경계를 넘으면 보통 '어른'이라 불린다. 가끔은 맥락과 흐름을 지어 보자. 배경지식을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즐겨보자. 편견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각이 더해진다.
아이가 되어보자. 백주원은 백종원이, 이준비는 이준비린내, 이청헌은 청소헌터라 별명 짓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어수룩한 단순의 재미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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