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몬 베유 Oct 21. 2024

어떤 재미에는 선택이 필요하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13)

재미와 의미의 밸런스 찾기… 실패


그렇게 세 가지 키워드가 생겼습니다. ‘함께, 재미, 의미’ 이 세 가지 키워드였습니다. 이후 거처를 옮기고, 긴급하게 사내에서 팀을 이동하며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팀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세 가지 키워드가 맞는 구석을 찾으려 점점 사내 모임에 약간 소홀해진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남는 에너지들은 모두 세 가지 키워드가 포함된 결과물을 내는데 집중됐습니다.


첫 번째로 시도했던 건 ‘책모임을 가볍게 만들기’였어요. 속해 있던 연구소는 함께 의미를 찾는 곳이었지만 재미가 없었습니다. 재미가 없고 가볍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이 적응하는 건 고사하고 같이 노는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깊은 의미를 추구하다 보니 가벼운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지 못하는 결과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치 “간판이 없는 요즘 2층 카페에는 어르신들이 없다”는 결론과 비슷했어요. 간판이 없고 인터넷으로만 찾아야 하니 접근성이 떨어졌고, 2층에 카페가 있다고 하더라도 2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니 올 엄두조차 낼 수 없었죠. 책모임도 마찬가지 었습니다. 허들이 높다 보니 매 번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것처럼 부담이 있었어요. 너무 의미만을 추구하여 오히려 자연스러운 배제가 일어나게 된 이 모습이, 그리고 어쩌면 제 안의 재미마저 배제하게 된 이 모습이 참 답답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가지기란 쉽지 않지만 재미와 의미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추고 싶었어요. 결국 의미만 추구하다 보면 철학의 재미, 만남의 재미마저 사라져 그 부분을 제거한 채로 딱딱한 부분의 의미만 나누다 헤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금이나마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결심했습니다-만 그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시도는 ‘가벼운 모임에 의미를 추가’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이후 제가 알아본 어떤, 1회성으로 짧게 진행되는 모임은 네트워킹 하고, 서핑하고, 대화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단 술 없이 말이에요. 양양에서 진행된 해당 모임은 양양을 좀 더 건전한 곳으로 바꿔보고자 시도하는 분의 모임이었습니다. 도보여행, 서핑, 다과회등이 주된 플롯이었으며 재미있게 노는 게 나름대로의 목적이었습니다.


제가 운영진으로 참여한 건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 참가인으로써 의미를 넣을 수 있는지 조그만 각들을 살펴본 것 같아요. 다만 너무 가볍다 보니 아쉽게도 새로운 이야기나 획기적인 이야기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재미는 어느 정도 있었으나 의미가 없다 보니 울타리나 뿌리 같은 게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에너지를 함께, 재미, 의미의 교차점에 넣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실패 그 자체… 정말 어렵더라고요. 기존 관계들은 의미에 힘을 주고 있거나, 함께하는 것에 힘을 주고 있거나, 그저 재미에 힘을 주고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새 판을 짜지 않는 이상은 어려웠어요. 


함께 -  빼고 재미와 의미에 집중.


그렇게 새판을 짰냐- 싶었지만… 그 이후로 새 판을 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요. 새판만이 답이 있다고 느꼈을 때 든 감정은 일종의 패배감이었으나 그렇다고 좌절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찰나, 역시 제 안에 들려오던 소리는 다름 아닌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였어요. 새로운 판을 짜지 않는 이상 함께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게 어렵다면 내가 새판을 짜면 됐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교의 말처럼 내가 먼저 잘해야 공동체건, 함께하는 모임이건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생겼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판단이 생기기 전 점점 다시금 스스로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어요. 글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자꾸 마주했습니다. 팀을 옮겨 수많은 야근을 통과하고 적응하는 와중에도, 오히려 새로 업무로 생긴 시각을 통해 스스로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결정한 것이 바로 다시금 떠나는 제주 여행이었습니다. 정확히 1년 전, 저에게 깨달음을 줬던 그 여행지를 가보고자 했습니다. 다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요. 그렇게 8월 초, 제주행 티켓을 예매하게 됩니다. 기간은 1년 전에 갔던 것과 비슷하게 8월 14일부터 19일까지였습니다. 회사에서 오전업무가 끝나자마자 출발하여, 회사로 복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1년간 저는 함께, 재미, 의미들의 키워들을 각각 경험했습니다. 그 한계도, 단점도, 장점도 마주했습니다. 궁금했어요. 1년이 지난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커졌을지, 또 이 문제를 다루는데 얼마나 성숙해졌을지요. 그래서 우울과 힘듦으로 허덕이며 걸어 다녔던 도보여행 코스와 숙소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에너지가 있을 때 그곳에 다시 가면 더 잘 즐길지, 재밌게 놀지, 의미와 재미를 함께 가질 수 있을지 하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함께 의미와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른 것이 사실이에요. 어떤 아이템들을 함께 그리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해야 할지 파릇파릇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스스로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들을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요. 제주에 있는 내내 정말 많은 시간들을 의미 있는 대화로 채웠는데, 그 대화들은 분명 재미있는 대화들이었거든요.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삶을 듣는, 연결과 연결이 오가는 대화들이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물론 이후에 ‘함께, 재미, 의미’를 모두 추구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다시금 차근차근 도전해 보렵니다.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일단 조금씩 시도해 보려고요. 그럴 때 언젠가 누군가는 거기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저도 마찬가지로요. 이렇게 보니 서로가 힘이 되려면 역시 서로가 필요한가봅니다. 함께 노는 것 역시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