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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일등 아니면꼴찌

by 장수생

2019년도 신년에 한 대기업 부회장이 회사 직원들에게 했던 '일등 아니면 꼴찌라는 마음가짐으로 뼛속까지 변하겠다는 자세로 더 빠르고 처절하게 도전해 나가자'라는 신년사가 기사화되면서 '일등 아니면 꼴찌'라는 말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재무과에서 6년간 근무하면서 총 4명의 재무과장을 모셨는데 그중 4번째 과장님이 첫 회식인 환영회에서 했던 말도 그 말이었다. '나는 무조건 일등 아니면 꼴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니까 잘 따라와 주길 바란다라고 했었다. 그 이후 며칠간은 너무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과장과 일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일등 아니면 꼴찌'말의 뜻은 최대한 노력해서 누구보다 뛰어나게 일을 처리해서 일등이 되든지, 못할 것 같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건 꼴찌를 해도 괜찮으니 빨리 털어내고 다른 일을 잘 처리하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그 과장은 '일등 아니면 꼴찌'라 하였으나 우선 꼴짜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오로지 일등만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분의 지향점을 따라가는 게 너무 벅찼다. 나는 항상 중간에서 살짝 위쪽에 위치하는 그래서 못하지는 않으나 잘하는 쪽에서도 특출 나게 눈에 띄지는 않는 그런 지점에 머물기를 바라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무 진취적이고 열정적이고 놀 때는 또 화끈한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나 튀는 사람과 일을 하려니 그 과장이 원하는 흐름을 쫓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결국 적응이 되어가고,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성격의 상사가 생각보다 일하기가 편했다. 본인 기준에 대한 신념이 너무 강해서 설득이 힘든 건 있지만, 결정이 빠르기에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 들어서 좋았다. 그리고 과장 성격상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는 다이내믹한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기에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말 수가 적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현상에 대해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는 진지한 상사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직원에게 미루는 자들보다 10배쯤은 괜찮은 상사였다.


열정 넘치는 상사는 한 가지 일의 처리 시간을 빠른 결정과 진행으로 줄어들게 해주는 대신, 다른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만들어 낸다. 업무 처리에 쏟아붓는 하루의 시간은 동일하나 일의 총량 자체는 증가하게 된다. 당연히 결과가 좋은 일들이 더 많다면 긍정적인 감정(보람 같은)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반대라면 리바운드가 더 크게 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40대인 지금의 나에게 또 같이 근무하고 싶어?라고 묻는 다면 대답이 쉽진 않겠지만, 30대의 나에게 다시 한번 열정 넘치는 상사와 근무하고 싶어라고 묻는 다면 한번쯤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그 상사에게서 떨어지는 열정의 부스러기를 양분 삼아 조금은 뜨겁게 살아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30대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40대인 지금의 나에겐 개인적인 관계로는 좋게 생각하지만, 업무적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상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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