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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un 24. 2021

손질된 재료를 사야되는 이유

- 힘드니까 -


-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며 과거를 후회하다 -


최근에 와이프가 "밑반찬이 너무 없다. 메추리알 장조림이라도 해. 애들도 좋아하니까".  메추리알 장조림을 받아먹기만 했을 땐 그렇게 어려운 요리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냥 메추리알 사다가 간장 넣고 졸이면 끝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그래. 내가 바로 만들어 줄게"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와이프 왈 "메추리알 껍질 벗겨진 거 말고, 껍찔채 있는 걸로 사 와야 돼. 우리가 잘 모르는 약품으로 껍질을 깠을 수도 있잖아"라고 추가 주문을 했다. 나야 뭐 당연히 "알았어. 그렇게 하지 뭐"라고 쉽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왜 업체에서 껍질을 벗긴 메추리알을 팔며, 사람들이 그걸 사는 건지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했었다. 껍질 있는 메추리알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 손질된 것보다 싸다는 것이다.(설마 요즘 같을 때 몸에 좋지 않은 위험한 약품을 사용해 껍질을 녹이진 않을 것이다.) 집에서 메추리알을 삶고 껍질을 벗기는 나(또는 주부)의 노동력은 비용으로 계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또는 주부)의 노동력은 공짜이니. 슬프다.


메추리알 껍질을 벗기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계란 껍데기이야 그래도 쉽게 벗겨지지만 그 조금만 알의 껍질을 1개, 2개 벗기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요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데 짜증이 확 올라왔다. 유튜브나 수많은 블로그를 참고해서 껍질 잘 벗겨지게 삶는 법, 쉽게 벗기는 법 등을 공부했으나 실제로 해보니 그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결국은 누군가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엔 나의 노동력을 갈아 넣었지만 지금까지 12년간 갈아 넣어진 노동력의 주체는 나의 와이프였다.


메추리알뿐만 아니다. 최근 오징어 볶음을 2번 해보았는데 한 번은 오징어를 사서 내가 직접 손질을 했었고, 다른 한 번은 사장님이 현장에서 직접 손질을 해서 주는 걸 사보았다. 같은 재료이고 같은 사람이 같은 레시피로 했으니 먹는 사람들은 첫 번째 요리나 두 번째 요리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첫 번째 건 만드는데 30분이 걸렸다면 두 번째 건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노동력이 덜 들어간 것이다. 요리할 때마다 이런 시간들을 줄일 수 있다면 훨씬 주방일이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휴직 전 요리를 하지 않았을 때는 가격만 보고 와이프에게 말을 했던 것 같다. "이 쪽에 있는 게 더 싼데 왜 그걸 사. 같은 건데 싼 거 사서 그냥 손질해서 먹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이다. 그러면 와이프도 저렴한 걸 고르긴 했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말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조금 비싸도 손질된 걸로 사자. 그럼 더 쉽게 할 수 있잖아?" 이렇게 이쁘게 말을 해줬어야 했다.(지금 내가 그런 말이 듣고 싶다). 그래서 또 후회한다. 휴직 후 가사를 하면서 나의 과거 행동이나 말에 대한 후회를 자주 한다.


그렇다면 무조건 금액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당연히 손질된 재료를 사야 되는 게 맞는 거 아냐?라고 물으면 지금의 난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대부분 가정 주부들은 본인의 노동력이 더 들어가더라도 같은 품질이면 금액이 더 싼걸 사질 않을까 싶다. 본인 몸의 힘듬보다 가족들의 건강과 가족들이 벌어온 돈을 더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니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요리하는 사람이 재료를 살 때 상대방이 기뻐할 만한 관심은 가져주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필요한 건 조용히 지갑을 열어주는 것뿐이다. 손질된 걸 사든 손질이 안된 걸 사든 어차피 힘든 건 요리하는 사람뿐 이니깐.


- 옆집 아저씨에게 -

가족들 삼시세끼를 처음(요리 선정)부터 끝(설거지)까지 딱 일주일만 해보세요. 모든게 달라 보이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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