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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ul 02. 2021

엄마와 사춘기 딸의 말싸움

아빠는 어느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가?

"뭔 소리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라고. 지금 하려고 하고 있잖아"라며 부릅뜬 눈엔 약간의 눈물이 맺혀 한없이 억울하다는 듯 온 동네에 다 들릴 정도로 소리치고 있는 우리 딸. "그럼 네가 잘했어? 방금 엄마가 너한테 하라고 했지. 근데 왜 아직도 안 해?"라며 서늘한 냉기를 풍기며 말하고 있는 와이프.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엄마 이것 봐 봐라"라며 웃고 있는 6살짜리 아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를 피해야 하는 건지 못 들은 척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판사처럼 양쪽 내용을 듣고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하는 사람의 편을 들어야 하는 건지,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시물레이션을 해보며 눈알만 굴리고 있는 내가 있는 오늘 아침 우리 집 식탁 풍경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엄마와 하루에 최소 2번 이상은 싸운다. 학교 가기 전에 한번, 학교 갔다 온 후 한번.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은 특별한 날이니까 3번 이상도 싸울 때가 있다. 어차피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고 떠들 거면서. 그땐 왜 다신 안 볼 사람들처럼 속에 있는 모든 울분을 터틀 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싸우는 걸까? 그리고 그 싸움의 틈에 가장 깊게 빠져있는 나는 대체 어떤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어느 날은 딸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딸 편을 들고, 또 어떤 날은 와이프 말이 맞는 것 같아 와이프 편을 들며 내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항상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아빤 항상 엄마 편만 들더라"아니면 "자긴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고 말이다. 정말 누구 편도 들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다. 그런데 또 가만히 있으면 둘 다 똑같이 "아빠(자기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누구 말이 맞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물어보면 또 말을 해줘야 한다. 중립은 없다. 그 상황에 내 가치관과 밀접한 누군가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어떤 대답을 하든 누군가에겐 또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된다. 헤어 나올 수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이다.


나는 누나나 여동생이 없다. 형만 1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집안의 가풍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모님한테 대들어 본 적이 없다. 형이 중학생 때쯤 한번 대들어 본 것 같은데 평생을 후회할 정도로 혼난던 걸 본 기억이 있다. 암튼 그런 집에서 자라온지라 자식과 부모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말싸움을 할 수 있다는 걸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매일 펼쳐지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싸우는 이유라도 대단한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방 정리 안 하는 것, 머리 안 묶는 것, 동생 놀리는 것 같은 정말 사소한 것들이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 정도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가 않는다. 또 딸과 와이프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의 방 정리로 시작한 말싸움은 한 달 전 숙제 안 해서 혼났었던 일까지 흘러간다. 어떤 연계성을 가지고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아니 연계성이 전혀 없다.


그런 상황에 해결해 보겠다고 한없이 지적이고 차분한 말투로 '이건 이 말이 맞아. 저건 저 말이 맞아'라고 하면 양쪽한테 핀잔을 듣는 게 확실하니 그런 답변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누군 한 명의 편을 드는 게 쉽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와이프 편을 들고 있다. 유부남들은 알겠지만 살아보니 그게 정답에 가장 가깝다. 그리고 딸이 워낙에 성격이 좋고 뒤끝이 없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달라붙고 하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나는 그러면 딸과 싸우지 않느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싸우지 않는다. 나는 그냥 화를 낸다. 딸은 그게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말대답을 하지 않는다. 와이프도 내가 화내면 더욱 나를 다그친다. 자기 딸에게 왜 그러냐며. 내 딸이기도 한데 말이다. 결국은 와이프와 말싸움이 많다는 건 나 보다는 본인의 말을 더 와이프가 들어주기에 그런 것 같다.


나도 말싸움은 하고 싶지 않지만 딸과 대화는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와이프와 딸도 항상 웃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서로의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뭐 대부분 시작은 웃으면서 하지만 결국 큰소리로 끝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어렵다. 정답을 모르겠다.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한없이 사랑함이 느껴지는 우리 가족이기에 이번 생은 우리 식대로 한번 살아가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옆집 아저씨에게 -

저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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