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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ul 16. 2021

우리 집 에어컨 전쟁

에어컨은 대체 왜 산거야?


하교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공기가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더워서 숨을 못 쉬겠어"

그 옆에서 6살 막둥이는 고개를 땅으로 숙이고 깊게 숨만 쉬고 있다. '하아~, 하아~'

나는 "도저히 못 버티겠다. 에어컨 틀자"라고 말하며, 에어컨 방향이 아닌 아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우리 집엔 분명히 에어컨이 있다. 거실 한쪽 구석에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새하얀빛의 에어컨이 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어떠한 장식품보다 더 장식품 같은 물건이다. 분명 처음에는 에어컨이라는 생명체의 탄생의 목적에 맞게 우리 가족들을 시원하게 그보다 더 차갑게 만들어 줄 거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큰 비용을 지불하고 샀었다.


하지만 우리 집 에어컨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안'하고 가 아니다. '못'하고다. 본인은 하고 싶을 텐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우리 집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는 이 집의 최고 의사 결정권 자이신 나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분이 에어컨을 너무 소중하게 아낀다. 만지기만 해도 닳을까 봐 걱정인 사람 같다. 만지질 못 하게 한다. 그렇기에 여름만 되면 우리 집은 항상 에어컨 전쟁을 시작한다.


전체 가족 4명 중 3명이 에어컨을 틀길 원한다. 삼대일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세 명이 한 명을 이기기가 싶지 않다. 하지만 이번 장마 이후 극심한 폭염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작은 용기들을 모아서 아내이자 엄마에게 말했다.

"우리 에어컨 좀 틀자. 너무 덥다"

"괜찮은 것 같은데. 샤워하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야"

'안 괜찮으니깐 틀자고 하는 거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괜찮은데. 애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깐 조금만 틀자"

"그렇게 더워? 알겠어. 그럼 28도로 온도 맞춰서 틀어"

"우리 집이 시청도 아니고 28도를 맞춰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정도만 해도 엄청 시원해. 그렇게 안 할 거면 틀지 마"

"아니야. 무슨말을 그렇게 무섭게 해. 그렇게 할게"


그렇게 해서 거실 온도가 32도가 넘어가는 날씨에 드디어 에어컨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일하느라 거실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는 온도를 아내가 지정해준 것보다 1도 더 낮추고 바람은 가장 강하게 틀었다. 몇 분후 작은 소음과 함께 찬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찬 바람은 우리 집 온도를 크게 낮추어 주고, 우리의 텐션은 크게 올려주었다. 아이들과 나는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며 입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몸이 시원해지니 입맛도 돌기 시작했다. 거실에 앉아서 아이들과 군것질을 하며, 이 보다 더 좋은 피서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에어컨님의 은혜 아래에서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는 그때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에어컨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설정온도를 28도로 맞추고 바람세기를 약하게 조절하였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세게 틀어놨어. 너무 추우면 감기 걸려"라고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속으로는 '감기 걸릴 정도로 틀어보기나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응. 알겠어. 내가 눈이 침침해서 숫자를 잘 못 봤나 봐"라는 구차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가족들 냉방병 그리고 전기세. 집안 가계부를 담당하고 있는 아내 입장에서는 에어컨이라는 게 엄청난 돈을 잡아먹는 하마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한 여름에 우리 몸이 시원해질수록 치러야 할 비용은 그만큼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리고 에어컨이라는 게 한번 틀기 시작하면 그 여름이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버티다가 정말 힘들 때 잠깐씩 사용하자는 아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더위가 너무도 견디기가 힘들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나만 힘든 거라면 버틸 수 있다. 정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더위에 너무 힘들어 하기에 다른 해보다 조금 일찍 틀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골이라 그런 건지 아직 시작을 안 한 건진 모르겠으나 열대야 현상은 없다는 것이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는 창문만 열어놓아도 찬 바람이 불어온다.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추위를 느낄 정도다. 그렇기에 집안이 달궈질 데로 달궈진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된다. 이 시간대만큼은 반드시 에어컨을 작동시켜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내 마음데로 작동시켜서는 안 된다. 에어컨으로 인하여 집안에 불화를 만들면 안 되니 사전에 가족 구성원 모두의 협의가 완료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에어컨을 작동시킬지에 대하여 가족 간에 다수결로 정할 수 있도록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해 봐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내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아내 스스로 에어컨을 켜게 만들 수 있는 마법 같은 문장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내의 눈을 보고 쫄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충전해야 한다.


신이시여 나에게 용기를 주서소. 용기 충전!! (다짐한지 이틀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까진 아직 충전이 완료되지 않아서 말하지 못했다.)


- 옆집 아저씨에게 -

남는 용기가 있으시면 조금만 빌려 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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