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나의 아내는 이제부터 육식을 하지 않겠다며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그 이후 수년간 이를 지키고 있다. 예전엔 의지가 대단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니 여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난 잡식주의 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편식 주의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의 삼시 세 끼를 차려낸다는 게 요린이인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우선 채식을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 가정집에 있는 밑반찬들이나 내가 끓이는 국들 거의다가 채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 채식은 아니고 어류는 일부 먹는 페스코 채식 이기에 고등어나 조기 한 마리 구워주면 쉽게 차려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차려주면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또한 고기 없는 밥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 딸은 흰 살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먹지 못한다. 조기, 고등어, 갈치 모두 싫어한다. 회나 장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라면, 짬뽕, 떡볶이 그리고 육류와 잘 차려진 한식을 좋아한다. 6살인 아들은 요즘은 아예 입맛이 없어서 뭘 줘도 잘 먹질 않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나와 비슷하게 모든 걸 잘 먹는 잡식성이다.
휴직 후 지금까지 200끼 이상을 내 손으로 차린 것 같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민하는 게 '오늘 뭐 먹지?'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검색창에 '오늘 뭐 먹지?'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요리 레시피가 검색이 된다. 그런데 막상 검색되는 요리들을 보면 장을 보지 않고서는 당장 만들 수 있는 건 몇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개 중에서도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하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귀찮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제외하고 나면 당장 만들어서 먹을 게 없다. 메뉴만 결정이 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4명 가족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메뉴를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 어려운 메뉴 정하기는 결국 나의 의지로 결정이 된다. 그렇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미리 계획하지 못하고 닥쳐서 생각하고 있는 나의 귀찮음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매주 식단표를 짜 놓고 매일매일 열심히 음식을 차리고 싶진 않다. 삼시 세 끼를 차리는 건 휴직 기간 동안 내가 맡기로 한 일이니깐 책임지고 해야 하는 거고, 가끔은 재미도 있고, 내가 만든걸 맛있게 먹어줄 땐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생각과 움직이기 싫다는 귀찮음이 더욱 강하다. 휴직기간 동안 크게 바쁜 일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더 많다.(이러다 복직을 어떻게 하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든 가족들이 한식을 그것도 흰쌀밥에 김치를 좋아한다는 거다.(와이프는 잡곡밥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 우리 딸은 고기를 먹든 짬뽕을 먹든 무조건 흰밥과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만 하는 아이다.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한식 위주의 밥반찬을 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어묵볶음을 해도, 감자볶음을 해도, 장조림을 만들어도 하루 이틀이면 모두 없어진다. 나름 많이 만든다고 한 건데. 내가 생각보다 손이 작은가 보다.
생각해보면 수십 년간 우리 엄마도 '오늘 뭐 먹지?'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와이프도 12년 동안 그랬을 것이다. 이들은 가족들을 굶길 수 없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매일매일 메뉴를 생각하고 귀찮은 날도 아픈 날도 본인 몸을 움직여 밥상을 차렸을 것이다. 이 점은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하지만 난 책임감이나 의무감보다 나의 귀찮음이 더 강한 사람인것같다.
이러니 저러니 고민하고 짜증 내도 결론은 하나다. 귀찮고 어렵지만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고 몸을 움직여 밥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몸을 움직여야겠다. 가족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 뭐 먹지?
- 옆집 아저씨에게 -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 잡식주의자, 편식주의자 모두가 먹을 수 있는 한 가지 요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요리를 하면 그 중 하나는 본인 취향에 맞을 거에요.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 수 수 있는 실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