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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un 30. 2021

채식주의 아내와 잡식주의 남편

그리고 편식 주의 아이들

몇 해전 나의 아내는 이제부터 육식을 하지 않겠다며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그 이후 수년간 이를 지키고 있다. 예전엔 의지가 대단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니 여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난 잡식주의 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편식 주의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의 삼시 세 끼를 차려낸다는 게 요린이인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우선 채식을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 가정집에 있는 밑반찬들이나 내가 끓이는 국들 거의다가 채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 채식은 아니고 어류는 일부 먹는 페스코 채식 이기에 고등어나 조기 한 마리 구워주면 쉽게 차려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차려주면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또한 고기 없는 밥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 딸은 흰 살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먹지 못한다. 조기, 고등어, 갈치 모두 싫어한다. 회나 장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라면, 짬뽕, 떡볶이 그리고 육류와 잘 차려진 한식을 좋아한다. 6살인 아들은 요즘은 아예 입맛이 없어서 뭘 줘도 잘 먹질 않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나와 비슷하게 모든 걸 잘 먹는 잡식성이다.


 휴직 후 지금까지 200끼 이상을 내 손으로 차린 것 같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민하는 게 '오늘 뭐 먹지?'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검색창에 '오늘 뭐 먹지?'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요리 레시피가 검색이 된다. 그런데 막상 검색되는 요리들을 보면 장을 보지 않고서는 당장 만들 수 있는 건 몇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개 중에서도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제하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귀찮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제하고 나면 당장 만들어서 먹을 게 없다. 메뉴만 결정이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4명 가족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메뉴를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 어려운 메뉴 정하기는 결국 나의 의지로 결정이 된다. 그렇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미리 계획하지 못하고 닥쳐서 생각하고 있는 나의 귀찮음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매주 식단표를 짜 놓고 매일매일 열심히 음식을 차리고 싶진 않다. 삼시 세 끼를 차리는 건 휴직 기간 동안 내가 맡기로 한 일이니깐 책임지고 해야 하는 거고, 가끔은 재미도 있고, 내가 만든걸 맛있게 먹어줄 땐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생각과 움직이기 싫다는 귀찮음이 더욱 강하다. 휴직기간 동안 크게 바쁜 일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더 많다.(이러다 복직을 어떻게 하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든 가족들이 한식을 그것도 흰쌀밥에 김치를 좋아한다는 거다.(와이프는 잡곡밥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 우리 딸은 고기를 먹든 짬뽕을 먹든 무조건 흰밥과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만 하는 아이다.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한식 위주의 밥 반찬을 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어묵볶음을 해도, 감자볶음을 해도, 장조림을 만들어도 하루 이틀이면 모두 없어진다. 나름 많이 만든다고 한 건데. 내가 생각보다 손이 작은가 보다.   


생각해보면 수십 년간 우리 엄마도 '오늘 뭐 먹지?'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와이프도 12년 동안 그랬 것이다. 이들은 가족들을 굶길 수 없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매일매일 메뉴를 생각하고 귀찮은 날도 아픈 날도 본인 몸을 움직여 밥상을 차렸을 것이다. 이 점은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하지만 난 책임감이나 의무감보다 나의 귀찮음이 더 강한 사람인것같다.


이러니 저러니 고민하고 짜증 내도 결론은 하나다. 귀찮고 어렵지만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고 몸을 움직여 밥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몸을 움직여야겠다. 가족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 뭐 먹지?


- 옆집 아저씨에게 -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 잡식주의자, 편식주의자 모두가 먹을 수 있는 한 가지 요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요리를 하면 그 중 하나는 본인 취향에 맞을 거에요.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 수 수 있는 실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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