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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May 02. 2020

한인타운 부럽지 않은, 순대

장장 여섯 시간의 순대 지옥, 아니 순대 천국. 

 순대가 한가득 채워진 풍요로운 냉동실이 우리 집에 있다. 

그것도 맛없고 비싸기까지 한 한인마트 표 순대가 아니라, 좋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순대가. 



 외국살이를 하면 애국자(?)가 된다던데, 내가 겪은 바로는 외국살이를 하면 요리사가 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감자탕, 족발, 돼지국밥, 치킨 같은 '외식메뉴' 레시피를 찾다 보면 조금 과장해서 게시물 두 개 중 하나는 외국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올린 것이다. 당연히 그럴 만도 한 게, 나도 한국에 살 때에는 등뼈를 구해 감자탕을 끓이거나, 돼지 족을 사서 족발을 하거나, 닭을 튀기거나 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선 삼만 원에 3-4인분의 감자탕을 먹을 수 있으니까. 

사만 오천 원이면 우리 가족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켜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고,

이만 원에 치킨 한 마리와, 어플로 할인을 받으면 사이드 메뉴 하나까지 먹을 수 있으니까. 


 순대도 화, 금요일에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에 걸어가는 길에 유명한 곱창/순대볶음 트럭이 있었다. 

곱창+순대볶음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순대 대여섯 개를 썰어 주시던 인심 좋은 아저씨까지 계셨으니 저녁 시간에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는 참 어려웠다. 


 나도 순대나 내장을 참 좋아하지만 남편도 보기와는 다르게 순대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한인마트에서 행사를 하게 되면 조금 비싸도, 기분 낼 겸 소소한 사치를 부린다 생각하며 순대를 사 오곤 했다. 

물론 거의 피와 당면, 약-간의 야채만으로 채워진 '분식집 당면 순대'에 가까웠고, 퀄리티는 한국에서 먹던 당면 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낮았다. 한 번은 유통 중 보관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제조공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너무 냄새가 나서 남편이 한동안 순대를 접었을 정도. 


 그러던 와중에 순대 레시피를 하나 찾게 되었는데 역시 외국에 사는 사람의 레시피였다. 화면 속 사진에서 완성된 순대는 내가 좋아했던 '그 순대'의 모습이었고, 재료의 양과 만드는 과정까지 적당히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순대에 뭔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먹고 있었다. 당면 순대가 아니니까 그냥 '야채 순대'라고 생각했던 그 순대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선지와 찹쌀, 고기가 들어가는 거였다. 나는 내가 선지를 잘 못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순대 소를 만들며 야채와 찐 찹쌀을 섞고 손으로 으깬 선지를 섞다가 알았다. '순대 냄새'는 바로 '선지 냄새' 였다는 것을. 


 그렇게 온 집안을 순대 냄새로 채우고, 장장 여섯 시간의 재료 손질, 준비, 소 채우기, 삶기가 끝났다. 

남편와 함께 호들갑을 떨며 배불리 먹고, 친구에게 조금 보내고, 하루 이틀 안에 먹을 양은 냉장고에 넣어 두고도 많은 양의 순대가 냉동실에 채워졌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재료 1]
찹쌀 800g - 물에 1시간 불렸다 물기 빼고 쪄서 고두밥 만들기
돼지고기 800-1000g - 갈아 후추, 미림 뿌려 섞어두기
마늘 300 + 생강 30 - 갈기
대파 700, 양배추 600, 당근 200g, 양파 1개, 부추 200g - 다지기
-> 재료 1을 적당량 나눠 고기 피순대 / 김치 순대 / 고추 백순대로 나눈다.      
     선지 1200g 기준, 전체 양의 70% 정도를 피순대에 사용.
     (김치/백순대 비율을 높이고 싶으면 선지 양 줄이기)

[재료 2]
선지 1200g - 덩어리를 블랜더에 한번 갈기
당면 한 줌 (김치 순대용) - 불렸다 찹쌀과 함께 쪄서 잘라두기
김치 300g - 잘게 자르기
깻잎, 고추 (김치/고추 순대용) - 잘게 자르기/다지기

[조미료]
소금 35g, 국간장 3큰술, 후추 1큰술
사골+야채 육수 젤라틴 반 컵 + 분말 조미료 1 Tbsp

* 고기 피순대 : 재료 1 + 선지 
* 김치 순대 : 재료 1 + 김치 + 당면 + 깻잎 - 김치 순대에는 조미료를 상대적으로 적게 넣어야 간이 맞음
* 고추 백순대 : 재료 1 + 고추 + 깻잎

* 소시지 케이싱을 물에 15분 불렸다 속까지 잘 헹궈낸 뒤 키친타월 위에 물기를 빼서 준비하고
   한쪽 끝을 묶은 뒤 소를 채워 반대쪽도 묶고 70-80도의 물에서 4-50분 삶는다.
   (물이 끓지 않게 주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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