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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골드 Oct 23. 2020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집이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세상은 너무나 냉혹하다는 현실이 가슴 뼈저리게 다가왔다.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신세. 여섯 가구의 월세를 받던 임대인 우리 부모님,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매달 월세를 지급해야 하는 세입자 신세가 되었다. 그것마저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겨운 상황이 되어, 부모님께서는 월세를 마련하기 힘드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어렸던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한순간에 집과 사업체를 비롯한 모든 재산을 잃으신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무너지듯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마음껏 먹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마음껏 사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시절. 그 부가 평생 우리 가족과 함께, 나와 함께 할 듯 보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은, 추억 속에 깊게 잠겨 버렸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린 나이에 속셈학원은 기본으로 과외나 발레학원, 수영학원, 웅변학원, 피아노 개인 레슨 등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살았다. 그땐 학원에 다닐 수 있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너무 어렸기에 몰랐다. 오히려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투정도 부리고, 그 비싸다는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는 날엔 도망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복에 겨웠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인생을 한순간 뒤바꾼 그 사건이 있은 뒤로는 나에게 학원이란,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물론이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은 학교 수업 후 학원가기에 바빴는데, 나는 학원을 단 한 군데도 다니지 못했다. 부모님께서는 동생인 나보다도 늘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공부를 잘했던 언니를 위한 교육비를 부담해야 하셨다.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의 친구들은 대부분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다녀오거나, 값비싼 학원을 다니곤 했다. 학원에 다닐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자유롭게 놀기에 바빴다.

 그 당시에는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입 밖으로 말로써 표현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내 가슴 한구석에서는, 늘 크나큰 부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학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를 족집게처럼 콕 찍어주는 학원 선생님께 배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학원에 가면 같은 반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반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는 아마도 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이라고는 오직 같은 반 친구에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웠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단순했던 부러움과 아쉬움이 너무나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밤새도록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나에겐 그랬다.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공부 잘하는 친구, 물론 있을 것이다. 학원 한 군데 다니지 않고도 오로지 학교 수업과 EBS 방송만으로도 충분히 스스로 공부해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라는 것, 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기초가 제대로 쌓이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 수업만으론 따라가기 버거웠고, 혼자서는 도저히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조용히,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버스타고 가야하는 학교 근처에 있던 무료 독서실은 경쟁이 치열했고, 매번 자리가 꽉 차서 거의 이용할 수도 없었다. 수포자처럼 중요과목을 체념하고 포기해 버리는 상황까지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기하는 것이 체질에 맞았는지 국사, 세계사, 일본어, 윤리 등의 암기과목은 매번 거의 만점을 받아 보통의 평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을 보면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 아래 그 유명하다는 입시 학원들을 다니며 공부에 열심인데, 나는 마음 편히 공부할 내 방 하나 없이 시험 기간에도, 일하고 오시면 고된 하루의 유일한 낙인 TV를 보시는 부모님과 함께 그 중요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야 했다. 어느 대학에 가겠다는 강렬한 의지, 뚜렷한 목표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더 없이 소중한 10대를 열정도, 의지도 없이,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보내버렸다.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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