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건 와사비가 아니었습니다

고추냉이 대신 고추 모종을 사게 된 이야기

by 로컬일기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것저것 다 심어서 바로 수확해서 먹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던 중 텃밭에서 키운 와사비를 강판에 갈아서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어서 와사비 모종을 구하러 읍내에 있는 시장에 가게 되었다.


시장의 한편에는 모종을 파는 할머니들이 모여 계신다. 봄에는 모종을 찾는 사람이 많기에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모종들이 나와있다. 상점과 노점의 경계도 잘 안 보인다. 그중 모종이 제일 많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더니 할머니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신다.


“와사비 있어요?”

“몇 개나?”

“세 개만 주세요.”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 모종을 담아 주셨다. 값을 치르고 봉지를 들고 차에 탔다. 혹시 차에 두는 동안 말라버릴까 봉투를 아래로 젖혀두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모종이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 대량으로 심었던 고추 모종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심지어 아주 작은 고추가 달려있기까지 했다. 아무리 초보 농사꾼이라지만 내 눈에 이건 확실히 고추 모종이었다. 고추를 심지 않았다면 가져가서 심고 말 테지만 이미 몇백 개를 심은 이후여서 더 이상은 필요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모종을 들고 다시 할머니께 갔다.


“할머니, 이거 와사비 맞아요? 아닌 거 같은데요. 고추 아닌가요?” 할머니는 모종을 들여다보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와사비? 아삭이야. 난 아삭이 달라는 줄 알았어.” 머쓱하셨는지 한마디를 더 하신다.

“사실 모종은 우리 딸이 키우고, 난 그냥 팔기만 해. 잘 몰라.”




이 에피소드는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참 많이 들려주었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고추냉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올해에는 인터넷으로 모종 10개를 주문했다. 그러나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날씨와 정성부족으로 모조리 죽어버렸다. 그리고 이번에 주문하고 나서야 알았는데 다른 채소처럼 금세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올해 심으면 내년에나 수확할 수 있다고. 아무 데서나 쉽게 자라는 작물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와사비 키우는 것은 당분간 보류다. 일단은 슈퍼로 생와사비를 사러 간다.



다음 주 에피소드는 논두렁 드라이버입니다.

keyword
이전 02화11시 30에 시작하는 잔치에 11시에 가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