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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에 시작하는 잔치에 11시에 가야 하는 이유

바닷가 마을의 소문난 잔치

by 로컬일기

며칠 전부터 마을방송 수신기에서 잔칫날 안내가 수차례 흘러나왔다. 집에는 행사 이름이 적힌 수건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차려질 것이라고 미리 말이 돌았다. 이 정도면 오늘 잔치를 모르는 동네사람은 없을 것이다.


잔치가 예정된 시간은 11시 30분. 10분 전에 출발하면 되겠지 했는데 11시부터 어머니가 서두르신다. 먼저 가 계신 분들이 벌써 가 있다고 전화가 오는 모양이다.


서둘러 도착해 보니 이미 자리는 꽉 차있고 빈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처럼 못 먹고 못 사는 시대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리가 마련되면 누구나 반갑게 모인다. 음식은 이미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고 동네분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11시 30분에 맞춰 온 분들은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했다. 이 정도면 잔치는 11시에 시작된 느낌이다. 마을잔치에 참석하는 노하우는 예정시간보다 미리 가는 것이다. 잔치가 일찍 끝나는 법은 없지만 음식이 동이 나버릴 수도 있기에 다들 미리 서두른다.


20250503_101229.png 마을 잔치 한상

보통 마을에서 잔치를 하면 부녀회에서 음식을 전담하여 준비한다. 이번에는 부녀회가 아닌 얼마 전 마을 사업으로 준공한 회센터에서 열렸다. 덕분에 주민분들의 수고로움을 덜고 모두가 음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먹어 본 바에 의하면, 음식은 부녀회에서 준비하는 것이 제일 맛있다.


밥 먹고 나서는데 옆 카페에서 사람들이 나오며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한다. 알고 보니 커피도 선결제하셨단다. 세심하게 잔치를 준비하셨다는 게 느껴졌다. 작은 카페는 식사 후 담소를 이어가는 주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난 테이크아웃 잔을 받아 들고 잠시 바닷길을 걷는다.


이번 잔치는 어느 마을 주민의 통 큰 후원으로 성사되었다. 그분이 누구인지 이번에 처음 뵈었지만 누군가가 베푸는 선의에 모이는 것으로 화답하며 정겨운 밥상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곳에선 이렇게 종종 잔치가 열린다. 지난번에는 새로 이사 온 주민분이 마을회관에 상을 차렸다. 코로나 이후 많이 줄긴 했지만 이곳에선 결혼식을 타지에서 할 경우 마을회관을 빌려 피로연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잔치를 마을사람들의 도움 없이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행사를 치르던 날, 아직 시골에 내려오기 전이었던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곧 이곳은 가장 바쁜 시기로 접어든다. 그래서 더 여유롭고 달달한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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