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견학

소수 의견

by Loche

생애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봤다. 표가 생겨서.


경기 시작 시간은 6시 반. 2시간 전에 출발하였는데 야구장 쪽으로 갈수록 차가 막혀서 1시간 전에 도착하였고 구장 주차장에는 이미 자리가 없어서 아이들 먼저 내려서 표를 받으라고 하고 1.3킬로 떨어진 유료 주차장에 세웠다. 사전 정보 조사에 의하면 2시간 전에는 도착하는 게 좋고 제일 좋은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잘 이해가 되었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택시 타고 와서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택시 타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그렇게 택시에서 연달아 내리는 이들을 보니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생길 정도로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구장으로 걸어가는데 야구복을 입고 구단색이 입혀진 전용 가방에 전용 응원도구들을 잔뜩 담아 걸어가는 이도 있었다. 매우 색다른 풍경이었다. 삶을 즐기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구나.


사람들은 왜 야구를 보러 갈까


살면서 한 번도 야구장에 직접 가본 적이 없었기에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야구장에서 파는 식음료가 많이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 원에서 이천 원 정도는 비싸다고 해서 냉장 가방에 아이스팩과 대용량물과 전날 스타트업 세미나에서 다과와 간식으로 제공된 이삭토스트와 아이스커피 등을 안 먹고 챙겨놨다가 가져갔다.

우리가 배정받은 자리는 외야석이었다. 가격은 성인 12500원이었고, 초등생과 중등생은 추가 할인이 있었다. 새로 지은 구장이라 시설은 좋았다. 같은 파장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증폭은 굉장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집단의식의 에너지. 이 정도 에너지는 예전에 남프랑스 접경 부근으로 여름휴가 때 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잠시 정차했던 어떤 마을에서 관람했던 투우 경기 군중들의 에너지 레벨과 비슷했다.


그때를 언급하자면 2시간 동안 투우사 3명이 번갈아가며 일인당 두 마리씩 총 여섯 마리를 상대하는 경기였다. 투우사 중에 한 명은 세계적인 투우사 훌리안 로페스 에스코바르(Julián López Escobar; 줄여서 El Juli라고 칭한다.)였다. 취주악단의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의 연주와는 달리 이 날 사람 죽는 것 빼고는 다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 중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었다. 피카도르가 탄 말이 소에 받혀서 넘어지고 어떤 투우사는 소뿔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고, 흥분제 약을 먹은 듯한 소가 달리다가 제 풀에 넘어지기도 하였다.


첫 게임와 두 번째 게임 때는 소를 찌르고 소를 죽이는 모습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숙이고 안 볼 정도였는데 세 번째 게임부터는 잔인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고 군중들과 같이 손수건을 흔들면서 게임에 전적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였던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소는 당일 저녁 주변 레스토랑에 식재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이날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마치 피를 보려는 검투사의 그것처럼 보였다. 영화 아포칼립스에 나오는 높다란 신전 위의 제사장의 눈빛과도 비슷하다고 할까. 마을의 신성한 축제를 위해서 제단에 올려지는 소를 기다리는 죽음의 시선들.

점심을 먹고자 들른 어느 스페인 시골마을인데 여기 아이들은 투우 놀이를 하며 논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꿈은 투우사가 되는 것이겠지. 이 아이들이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에 살면서 부모님 따라 한국의 야구장에서 논다면 그 아이들의 꿈은 야구 선수나 치어리더가 되고 싶어 할 테다. 런 연유로 내가 학교에 강연을 갈 때마다 학생들에게 매번 언급하는 레퍼토리로 "여러분들의 꿈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공간적 배경에 제약을 받고 여러분이 가진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세계 여행도 좋지만 그 한계를 넓혀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독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전석매진이지만 야구장 곳곳에 빈 좌석들이 많이 보였는데 뒤를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좌석을 벗어나서 응원봉을 흔들며 응원가와 구호를 따라 부르며 신들린 듯이 몸을 움직인다. 자리에 앉은 관중들은 계속해서 치킨이나 먹거리를 사 오면서 들락거린다. 그런데 맨 뒤자리에 앉아있자니 응원녀들의 하나 된 응원구호 소리가 귀를 찌른다. 계속 듣고 있으면 청력 손상이 우려될 정도로. 애초에 딸에게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말할 때에도 보다가 재미없거나 힘들면 말하라고 미리 이야기했는데 2회 때부터 딸은 그만 나갔으면 하는 눈치였고 3회가 되니까 덥고 시끄러워서 힘들다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해서 3회 말이 끝나고 야구장을 나왔다.


멀리 세워놓은 차로 걸어가면서 아이들이 다들 우리 뒤에서 응원하던 여자애들의 구호 소리에 귀가 아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그랬구나 아빠도 그랬어~^^." 그들의 엇박자나 씽코파에 맞춘 구호를 떠올리며 "꽥꽥꽥꽥, ~꽥 ~꽥 ~ ~꽥!" 장난스럽게 조롱하니 딸이 웃는다. 아들도 응원하는 여자들의 꽥꽥거림에 자기도 시끄러웠다고 하면서 학교에도 그렇게 귀 아프게 떠드는 여자애들이 있다고 한다.


딸만 아니었으면 시간을 두고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대중문화와 사회를 천천히 관찰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내 돈을 내고 표를 사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들은 그래도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았는데 자기도 또한 자기 돈으로 표 사서 오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였다. 돈 아깝다면서.


왜 나와 아이들은 거의 매번 매진을 이룰 정도로 절대다수의 야구장 관중들과는 선호도가 다를까.


1. 시끄럽다.

2. 그렇게 무리 지어 떼창하고 떼동하는 것이 신나거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은 안 가지만 몇 해 전에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아하던데 자기가 주도적으로 노래를 하는 것과 군중의 집단적 광기를 따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 것 같다.)

3. 먹방 동참도 흥미 없다.


어제의 전석매진이 벌써 시즌 마흔네 번째 매진이라고 한다. 경제가 안 좋아도 야구장의 열기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영화관은 파리를 날리는데 야구장은 거의 매번 꽉꽉 차니 참 신기하기도 하면서 사업은 이런 사업을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사업을 하기에는 내 성격과 취향이 대중들의 그것과 너무 달라서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구장에서 나와 멀리 주차된 차로 걸어가면서 딸에게 '아이고 많이 힘들었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딸은 또 "스키 타러 가고 싶다~ 겨울이 언제 오나~" 노래를 한다. 눈 덮인 겨울산을 조용하게 혼자 스키 타며 내려오는 즐거움. 한편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역 스키 동호회에 가입해서 그들과 떼스킹을 해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도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스키조차도 대중들은 우르르 모여 줄줄이 떼 지어 내려가는 문화를 좋아한다.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다 동호회 만들어서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행동을 하는 이들이지 않던가.


나와 아이들은 집단적 다수가 아닌 유별난 소수인 것 같다. 다수의 문화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사업으로 큰돈을 벌려면 다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다. 이해하려고 하고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지면 된다.


매우 놀랍고 신기한 풍경이었고 대중문화사회 이해 차원에서 가보길 잘했다. 영상으로 보는 야구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고 사람들과 교류할 때 야구팬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상상해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나와는 성향이 많이 달라서 거리를 두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만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도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워낙 독특하고 계속 변하니까.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어제 스타트업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온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30대 초반의 매우 스마트한 연쇄 창업마가 조언하기를 사업은 외롭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라고 털털하게 가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가 다르면 말이 안 통한다고. 백억 원대 자산가와 천억 원대 자산가의 자산운용시스템은 크게 다르다. 그래서 부자가 될수록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업 규모가 다르니 같이 나눌 이야기가 없다며.




이틀 동안 생각하고 내린 결론:


사람들은 자극을 원한다. 강한 쾌감을.

그런데 그것이 좋은 게 아니다. 거기에 맛들리면 작은 즐거움에는 만족을 못하게 된다. 현장에서 미친 듯이 움직이면서 소리 지르는 동안에는 아주 신이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야구장을 가고 싶어진다. 중추신경계에 굵고 선명하게 각인된 그 쾌감 기억이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일상의 소소함에서는 만족을 느끼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지는거지.


이 야구장이나 밀롱가를 안가더라도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얻는 만족감이 충분히 높다면 그게 더 바람직하다. 어떻게 하면 잔잔한 일상으로부터 충분하고 지속가능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내 경우는 독서를 통해서 조금씩 지적 성장을 하는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때로는 혼란스럽거나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궁극에는 뿌리 깊은 만족감과 성장감을 준다. 반면에 강한 쾌감은 그와 동일한 크기의 고통감이 시소의 급격한 솟구침에 이은 아찔한 추락처럼 필연적으로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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