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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Jan 27. 2021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

나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객관적 조건을 잣대로 들이대면 행복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인생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던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책을 확장해서 읽기 시작했던 30대쯤인가 싶었다가 나의 세계를 넓혀 갔던 대학생 때를 거슬러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작은 경험들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열여덟 여고생이었다.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해서 밤 10시가 되어야 하교를 하는 생활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힘들거나 지긋지긋하지 않았다. 할만했고 학교를 가는 것이 대체로 즐거웠다. 설날이나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1년에 360일 넘게 학교를 갔던 것 같다. 학교에선 주말에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실을 개방해주었고 친한 친구들과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라는 명목으로 햇살 비치는 교정 벤치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수다을 떨다가 목표했던 공부 양은 시작도 못 해보고 돌아오기를 반복해도 학교 가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어느 수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주신 콜라캔 따개를 버리지 않고 서랍에 고이 모셔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친구들이 여럿 모이면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내밀한 이야기는 잘 안 하게 된다. 어쩌다 둘만 있게 되면, 햇살이 좋고, 바람이 좋아서 교정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있다가 여럿이 있을 때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빛바랜 사진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날의 나는 순수하고 맑은 그리고 친구의 아픔에 함께 눈물이 흐르는 여고생이다. 친구는 울고 있다. 처음에 나는 당황한다. 그 친구는 그런 눈물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모두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부러워하는 친구다. 그런 아이가 뭔가 슬픔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마음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 아버지가 있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부모님의 잦은 다툼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눈물을 흘렸다. 위로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라 듣고만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들어줄밖에. 그리고 울지 말라고 등 토닥여주는 정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마음 아프게 기억해야 할 이 장면은 잊혀질 만하면 떠오르고 또 잊혀질 만하면 떠올라 지금껏 살아남아 있는 귀한 기억이다. 아무래도 잊지 않도록 뇌가 있는 힘껏 애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고 있는 소중한 장면이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우정이 깊어지는 계기가 있다. 어떤 위기를 함께 극복한 사건이 있다던가 아주 고마운 일이 있었다던가 하는. 나 같은 경우는 주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이 그렇다. 우리 가족의 부끄러운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았다는 것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다. 타인의 신뢰. 그게 내겐 굉장한 인정이었다. 시험 100점 맞는 것 보다 멋진 일이었다. 시험 점수로밖에 확인할 길 없었던 나의 가치가 그것 아니어도 더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 ‘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싹텄다. 비로소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그냥  나'로서 인정받는 작지만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 작은 에피소드 하나로 충분하다. 이 정도면 자신의 인생을 깊이 사랑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없다. 큰 성취에서 찾으려고 하면 너무 어렵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는 것에서 괴로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길 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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