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의 탓일지도.
그대의 의지가 없음마저.
그저 바랄 수밖에 없으니.
바라지 않음으로 굴레를 벗고
바람으로 방향을 찾고자 한다.
행하지 않음과 행하는 것 사이,
그 어딘가에 답이 있을지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결국 내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조적인 사람이다.
스스로를 비웃고, 탓하는 사람.
스스로를 믿어주지 않음은
끊을 수 없는 굴레 안에 가두어 버린다.
누군가 나를 감금하고
빛 한 줄기, 물 한 모금마저 통제하는 기분.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어지고,
눈은 빛을 잃어간다.
나를 가둔 누군가는
결국 나다.
모든 것은 내 탓이고,
내 잘못이다.
나는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은 할 수 없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머리가 멍하다.
그래도 숨은 쉰다.
희미하게라도, 마시고 뱉어내고 있다.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까.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것?
살아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
글쎄, 그때 그때 다를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어라 나 살아있네' 떠오르면 그만이다.
어느 한쪽일 수는 없다.
자조적인 나도, 살고자 하는 나도 결국 하나다.
받아들이는 것과 침식당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려 한다.
받아들이는 건 둘 중 하나다.
행동으로 변화하거나
내면으로 변화하거나.
대개 하나쯤은 굳어있으니.
많은 순간들에 계속 묻는다.
행동으로? 내면으로?
그리고 시도하고자 한다.
행동으로, 내면으로 변화하기를.
둘 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시도는 해봤으니, 이 자체로 성공이라 부르고 싶다.
노력과 별개로, 나도 모르는 사이 침식당하는 때가 있다.
익숙한 듯 매번 새로운 느낌.
지금의 나는 그저 넋두리하듯 뱉어내기를 택했다.
그대의 잘못 마저, 내 탓일지도.
결국 나의 행하지 않음으로, 행함으로 나타난 결과일지도.
뱉어내고 나면 꽤나 후련해진다.
내 탓이다. 이제 어째야 하지.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걸 느낀다.
동시에 그 후에 명료해진 나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모든 건 내 탓이고,
모든 건 그대의 덕이다.
그래서 나는 행하고자 한다.
그저, 바라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