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꽤 무섭다.
덩치가 매우 크기에,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다.
작으면 300kg, 크면 500kg 이니,
존재만으로 압도적이고 두렵다.
때로는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둔하고, 순한 행동과 맑은 눈을 보면.
왜 그대로인 말이 어느 순간엔 무섭고,
어느 순간엔 귀엽고 만만해 보일까.
아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쳐주다 보면,
대화가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무서워요.'
"왜 무서운 것 같아?"
'몰라요, 무서워요.'
표현의 부재라기 보단,
진심으로 모를 수 있다 생각한다.
스스로도 느낀 적이 있다.
미시감, 자메뷰 라고도 한다.
익숙하던 말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
승마를 하는 모든 이에게 한 번씩 나타난다.
나는 이 현상을 알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갑자기 그럴 뿐.
하지만 해결하는 방법은
경험이 쌓이며 알게 되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모습을 보면 된다.
"지금 말 눈을 보면 어떤 기분인 것 같아?"
"말의 털은 어떤 느낌이야?"
"말 속눈썹 진짜 길지!"
"말은 왜 코털이 길게 나 있을까?"
한 부분씩 뜯어보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떨림이 멎는다.
'졸린 것 같아요'
'부드러워요'
'엄청 길고 많아요!'
'왜 이렇게 길어요?'
두려움 대신 궁금증이 자리한다.
이런 치환은 극복의 시작이 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긴 시간 말 위에 머물도록 유도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그 위에 머물러 있음이
몸과 마음을 적응시키는 과정이 되기에.
우리도 이미 느끼고 있다.
실체가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크고 두렵다.
무지의 공포는 모두가 알지만
실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이, 나는 사소함을 떠올린다.
사소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작게 쪼개어보는 방법이 우리의 감정을 치환하기에.
단순히 덜어내는 것으로는 불안하다.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웠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사소함을 관찰하려는 시도가.
그 자체로 용기이자 의지의 표현이다.
두려움이 크게 느껴진다면,
사소한 부분을 관찰해 보기를 바란다.
의외로 이상한 점들이 많다.
두려움이 궁금증으로, 기묘함으로, 역설적으로.
바뀌어 보이는 순간들이 생긴다.
억지로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그런 시점을 경험한 것으로
두려움은 천천히 치환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보다 자세히 이해하게 되고
보다 가벼이 여길 수 있게 된다.
불필요한 과한 감정을 덜어내고
필요한 에너지를 쓸 수 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껴 보았다면, 앞서 말한 가벼이의 의미를 알 것이다.
잠시나마 나의 힘을 덜어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하루가 두려워지는 날이면
괜스레 떠 있는 구름을 눈으로 따라 그려본다.
'저건 강아지처럼 생겼네'
라는 생각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기존의 것이 물러난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사소함으로 자리를 대신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큰 것이 더욱 알기 어렵고 두렵기에
더 작고 사소한 부분을 보고자 한다.
사소한 관찰은 자연스레 이겨낼 방법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