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오는 날.
이 날의 약속을 기억하는가.
어쩌면 낭만적이었을지도,
어쩌면 끝내지 못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첫 눈은,
소심한 고백이었다.
'어? 눈이다. 이번 겨울 첫 눈이네.'
라며 담담한 미소를 지어야지 생각했다.
'ㄴ..눈이다. 올ㅎ 아니 겨울 첫 ㄴ눈이네.'
아마 이렇게 들렸을 거다.
다짐했던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 버벅임이 닿았는지 미소로 돌아왔다.
내게 첫 눈은 말을 건넬 핑계였고,
한 번 더 눈을 맞추기 위한 구실이었다.
"사케 마셔본 적 있어?"
'ㅇ..어..?'
"아냐, 따라와."
눈 올 때는 따뜻한 사케 라며,
나의 코트 자락을 끌어 이자카야로 향했다.
나는 아직도 눈이 올 때는 따뜻한 사케를 떠올린다.
저항 없이 끌려가던 그 날과 함께.
쭈뼛대는 나를 귀엽게 봐주었고
아마 그 날, 손을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따스한 것인지,
손을 잡았는데 왜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당황스러움과 설렘, 그 어딘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모습일지 모르나,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꽤 달라졌다.
설렘은 대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글로 적어둔 나의 추억을 보며
아 이런 것이었나 어렴풋이 느낀다.
처음이란 대개 비슷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
어색하고 설레거나, 당황스럽고 두렵다.
비슷한 삶의 흐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설렘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문제 인식과 문제 해결만이 남았다.
삭막하지만, 효율적이다.
지금의 내 모습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면 되니까.
어느 날, 대화를 하던 중
이 생각은 무너지게 됐다.
연애사를 듣고 있었고,
나는 혼자 파악하고 있었다.
'아 이러저러한 사람이겠구나,
이렇게 헤어지겠네.'
순간, 아찔했다.
상대의 감정 대신 사태의 파악을 하고 있었다.
설렘도, 슬픔도 그저 + / - 로 치환했다.
총점이 -3 이네. 헤어져.
분명 아는 감정인 것 같은데
잠시동안 나는 그 감정을 떠올리지 못했다.
이내 나는 다짐했다.
처음을 찾기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낯선 곳도 가봤다.
묘한 설렘이 느껴지며
몸도 마음도 들뜸을 느꼈다.
하지만 처음은
거창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작은 행동들에서
나는 처음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 기계처럼 주문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켜본다던가.
비 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지! 외치는 대신,
술 없이 뜨끈한 김치찌개를 먹는다던가.
관성적으로 하던 행동들을
하나씩 비틀어보았다.
카푸치노는 이런 매력이 있구나,
비 올 때 김치찌개도 맛있네.
첫 눈 내리던 날의 따뜻한 사케만큼은 아니어도,
설레는 마음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처음이라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
김치찌개 먹어봤잖아.
아냐, 비 온다고 작정하고 먹은 건 처음이잖아.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아메리카노가 질리네. 가 아닌,
새로운 음료는 없을까? 궁금하다. 로 접근하는 것.
반복되는 삶에서,
가끔, 사소한 시도를 하기 바란다.
대개 처음이란 건,
설렘을 안고 오니까.
내일은 아아 하나요 대신,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