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물거품

by 로그모리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알람 소리에 맞춰 힘겹게 눈을 뜬다.

반쯤 감긴 눈으로 습관처럼 카톡을 연다.


'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이내 폰을 내려둔다.

양치를 하고 옷을 고르고 신발을 신는다.

닫히는 현관문의 소리가 이리도 컸었나.


출근길의 지하철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숨 막힐 듯 부딪히며 움직인다.


옆 사람의 노랫소리가 내게도 들린다.

지하철은 꽤 큰 소리가 나는구나.

사람들의 발소리는 이렇게도 컸구나.


다르지 않은 아침,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전부 무의미해졌다.


사랑을 약속하던 목소리도

떨어지기 싫어하던 손길도.


이럴 거면 그렇게 말하지 말지

이럴 거면 내 손 잡으면 안 됐지.


끝없는 원망으로

우리의 만남을 되돌아본다.


최악의 인간이라며

차오르는 분을 이기지 못하며.



당연하다 생각했던 걸까

일상의 대부분은 전부 너였다.


따스히 반겨주던 눈길도

사랑을 속삭이던 목소리도

애정이 담겨있던 손길도


모두 나를 힘들게 했지만

가장 큰 건 습관이었다.


눈 뜨면 바로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에

화장실 가며

집에 왔노라

연락하던.


오히려 네가 없던 그 순간들에

빠짐없이 네가 있었다.



너를 떠올리는 순간들에서

거짓말처럼 나를 잃어갔다.


나의 일상이었던 네가 가고

나는 일상이 두려워졌다.


모든 순간 너의 그림자 안에서

너를 이겨내려 노력해야만 했다.


점차 생기를 잃어가며

끝없이 싸우는 나만 남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찾아오는 너는

나를 쉼 없이 잠기게 만들었다.



살아야 한다며 말을 건네는 듯한

내 몸의 소리를 들었을 때, 정신이 들었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부정하며

끝없는 후회의 굴레를 벗어나


비로소 나를 쳐다보았다.


헤어진 후 오직 너만을 생각하던

이 긴 시간들은 짙은 흔적이었다.


우리의 마음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의 마음은 새겨졌다.


그 간 마음도 힘들었으나

몸은 더욱이 망가지고 있었다.


상실을 통해 배운다 했던가

아니, 시간이 약이었던가.


이제야 나는 우리를 돌아본다.



끝나버린 관계를 되돌릴 수 없다.

끝나버린 관계를 다시 정의할 순 있다.


몸의 울부짖음을 따라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우리의 시간들이 내게 남겨준 것들

마음 행동 습관 모든 것.


다시 나를 위해 보려,

다시 내게 알려주려 노력했다.


걱정 어린 눈망울도

춥지 라며 잡아준 두 손도

몸 챙기라던 다정한 목소리도


닿을 수 없지만

그 마음을 다시 느꼈다.


후회도 아쉬움도

감사도 그리움도


결국 지금의 나만이

느끼고 선택하는 것을.


떠올릴수록 분명해진 게 있다.

나는 정말 진심이었구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을지언정

그 누구보다 간절했었구나.


이토록 사랑했음을

너는 내게 알려주었구나.



한 여름밤의 꿈같던

한 순간의 물거품 같던


나의 사랑이 저물기 시작했다.


그 생각과 마음의 깊이를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적어도 3달 내내 밤마다

혼자 숨죽여 울던 그날의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희미해진 기억 너머 담긴 마음을.



우리는 상실을 통해 소중함을 배운다.


안타깝게도 사람이 태어나기를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때로는 상실로 배우나,

때로는 상실을 두려워하며 느낀다.


과거의 나의 이별은 분명한 트라우마였으나

현재 돌아보는 나의 이별은 확실한 마음의 성장이다.


온전히 나아지진 않았다.

어느 이별을 마주하면 다시 떠오른다.


이런 트라우마는 내게 다른 가르침을 준다.

지금 더 소중히 대하라고.


더 많이 아끼고

더 많이 표현하라고.



이별함으로 끝까지 너는

내게 사랑을 안겨주었다.


잠들지 못하던 그날들을

새삼 떠올리며 고마움을 전한다.

이전 17화체념, 자기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