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 대신 온도

by 로그모리

맥주가 보리차로 바뀌고,

크게 달라진 기준이 있다.


도수 대신 온도.


5도, 8도, 11도 등의 도수를 보며

오 묵직하겠군 기대를 하던 것이


100도, 80도, 60도 등의 온도를 보며

마시는 속도를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부르는 단위가 같다.

표기는 다르나 발음이 같은 우연이다.


나는 이런 우연을 좋아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같은 '도' 라는 표현 아래


이토록 대비되는 것들이

한 곳으로 뭉쳐 있다는 사실이.


이를 핑계 삼아,

역시 보리차는 맥주를 대신할 수 있군.


이런 생각을 다져본다.


맥주의 도수에 따라 목 넘김이나

맛의 스펙트럼이 달라지듯


차 역시도 온도에 따라

향도, 목 넘김도, 맛도 달라진다.


사실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차라고 해봐야 식당에서 주는 것만 보았으니.


직접 물을 끓이고

어느 정도 담겨있었는지에 따라


그 맛이 다름을 느끼는 건

새로우면서도 재밌는 경험이다.



분명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지는 않으나

대개 나는 차이를 느끼고 분석하기를 즐긴다.


어라? 향이 좀 다른 거 같은데?

어라? 맛이 좀 다른데?

어라? 이건 다른 매력이네.


이를 테면 보리차가 식으며

미지근~차가운 사이의 온도가 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오래 두어

얼음이 녹은 후의 맛과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맥주뿐만 아니라

커피의 의존도가 매우 낮아졌다.


다소 높은 온도의 보리차는

특유의 깊은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사실, 화려하지 않을수록

따뜻한 온도에서 더 피어난다.


대표적으로는 이렇게 두 온도를 느끼나

점차 식어가는 과정에서의 변화도 즐겁다.



참 신기하다.

소맥을 타면서도 비율을 연구하던


그 습관이 어디 가지 않고

보리차의 온도를 맞추려 연구하고 있으니.


이런 순간들이 오면

최대한 몸의 감각을 열어두려 한다.


과학 실험이 아니기에 변수가 다양하나

몸은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내 몸이 좋아하는 순간을 포착하려 하면

거짓말처럼 손이 움직이게 된다.


마치 소맥을 기계처럼 말아내듯

보리차를 기가 막힌 상태로 내어준다.



도수와 달리 온도를 느끼며

몸은 다른 감각이 열린다.


비유하자면 도수는 '어.. 이거 괜찮겠어?' 라면

온도는 '지금 느낌 오나? 이거야?' 하고 묻는다.


경계를 바탕으로 느껴지는 감각과

수용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도수의 차이는 외부를 지나

내부에서 결정하게 되고


온도의 차이는 외부에서 결정된 채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


두 경우 모두 내부에서 느껴지는데 초점을 두지만

접근하는 자세가 달라지기에 차이를 만든다.


보리차를 마신다며 동네방네 자랑하지는 않았으나

가끔 안부인사를 하며 얘기하면 다들 놀란다.


그 좋아하는 술도, 커피도 안 마신다고..?

네가?



극단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편해하기에

금주. 보리차. 두 단어만을 남겼다.


보리차에 익숙해져 가면서,

스스로를 더욱 잘 들여다보고 있다.


앞서 말했던 경계와 수용의 기반이

사실 삶에도 연결된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계심을 기반으로

잔뜩 날을 세운 감각을 열어둔다.


무조건적인 수용을 기반으로

나를 바라보는 때가 있을까.


전에는 분명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글을 적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보다 나의 몸을 잘 사용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를 실험체로 다양한 시도를 하겠지만


결국 나를 이루는 것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간접적으로 나마

권하는 문장들로 닿기를 바라고.



경계심이 가득한 삶 안에서

수용하며 지내는 순간을 잡기를.


그렇게 나의 몸이 조금은

편하게 쉬어갈 시간을 만들어 주기를.


이 글을 통해 대화한 우리가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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