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로 욕하는 아이

by 강지영

(사진 출처:인터넷)

초등학교 2학년 점심시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배불리 밥도 먹었겠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다. 식사 후, 삼십 분간의 시간을 아이들은 옹골차게 보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목을 타고 주룩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것들이 '치열한' 삶을 말해준다.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인지, 나도 저들처럼 땀 흘려 일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렇게 신나야 할 점심시간에 서서히(가명)가 나가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서히는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하고 나는 서히에게로 가보았다. 영어공책에 단어를 쓰고 있다. dog, dog, dog, dog. 여러 개의 단어를 네 번씩 쓰고 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구나. 서히야, 영어 재밌어?"

"재밌겠어요?"

"근데, 친구들은 다 나가 노는데 너도 나가고 싶지 않아?"

"학원 숙제라서 지금 해야 해요."

"그렇구나."

나가 놀지 못하고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고, 주어진 일을 해내려는 성실함이 기특하기도 했다.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교를 하는데, 서히가 가지 못하고 또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날은 알림장 내용이 없는 날이라 쓸 게 없는데, 이상했다.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 학원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탓이다.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조용해졌다. 나는 책상 위를 정리하고 있는데, 서히에게 전화가 왔다. 무언지 모를 다소 부드럽지 못한 말이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그 까칠까칠한 말이 끝나고, 서히는 힘없이 이렇게 말한다.

"응, 엄마, 지금 나가려고 해."

"기다리시니까, 빨리 나가."

서히 엄마의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린다. 상황을 짐작해 본다. 학교 앞에 학원차가 왔고, 학원차에 서히가 오지 않으니 학원차 운전하시는 분이 서히 엄마에게 전화를 하였으며, 서히 엄마가 서히에게 빨리 나가서 학원차를 타라는 전화내용이겠지. 하교 시간에 학원차를 타지 못한 것은 학원 숙제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 서히에게 다가갔다.

"서히야,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심조심 나가야 해. 뛰어가지 말고. 알았지?"

서히가 급히 뛰어가다가 넘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안녕히 계세요."

서히는 가방을 메며 인사까지 챙긴다.

"조심히 가라."

서히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작은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렸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를 쓰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영어 문장을 쓴다. 레벨이 올라간 것이겠지.

"서히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

고개도 들지 않고, 쓰면서 대답한다. 알면서 쓰고는 있다. 다행이다. 그간의 일을 학부모에게 전할까 망설이다가 사교육 문제라서 그만두었다.


서히는 키가 작아서 맨 앞에 앉는다. 그 학생의 행동이나 표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부터 쉬는 서히. 아침 독서 시간에 책을 세워 놓고, 엎드린다.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지는 모르겠다. 어깨를 바로 세워 주며, 바르게 앉아서 읽자, 하는 말을 건넸다. 정수리에는 까치집이 지어졌다. 입술은 말라 있다. 아침에 무얼 먹고나 왔는지 모르겠다. 마치 이불속에서 금방 나온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과묵했던 서히의 입에서 '씨발'이라는 말이 나왔다. 짧은 말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교 시간에 가방을 메면서 하는 말이었다.

"서히야, 누구한테 그렇게 말한 거야?"

"그냥, 혼자서요."

"왜 그랬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냥요, 해 보고 싶었어요."

"..."

나는 서히의 말에 대꾸할 말이 바로 나오지 못했다. 그냥 욕설을 해 보고 싶은 그 마음은 뭘까. 그러고도 두어 번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었다.


여러 날을 생각했다. 서히 엄마가 학원 관련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서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서히 엄마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듣고 말했다. 다행인지도 모른다. 멘털이 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열 살도 안된 남자아이, 대상도 없이 허공에 욕설을 해대는 아이의 내면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서히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어느 국어 시간이었다. 글씨를 쓰라고 했더니, 서히가 곧바로 말한다.

"연필이 없어요."

"엥?"

서히의 필통을 보니, 심이 다 부러진 연필 두 자루. 꼬질꼬질 때 묻은 지우개. 그 마저도 한 귀퉁이는 잘려 나갔다.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 주었다. 한 학생이 말한다.

"선생님이 연필 깎기 당번이네. 크크큭"

"그래, 이제부터 내가 연필 깎기 당번이다. 하하하"

학생들이 다 가고 난 교실을 둘러보면, 임자 모를 연필이 굴러다닌다. 그 연필은 어김없이 부러져 있다. 하루에 한 개씩은 꼭 나온다. 아이들이 나에게 주고 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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