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면서 보는 꽃

by 강지영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문학동네에서 펴낸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 50쪽에 실려있는 시편이다. 퇴임하기 전 몇 해 동안에도 여러 꽃이 피고 지고 했을 텐데, 다시 돌아와 보고서야 알았다. 이 학교에 이렇게 많은 꽃이 있는지를. 인생도 그런 것인가.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이 이리 많으니 말이다. 퇴임하기 전에는 학교 밖에 행복이 있는 줄 알았다. 35년간 초등교사로 살면서 좋은 때도 있었지만 힘든 때가 더 많았다. 학교만 떠나면 장밋빛 삶이 펼쳐질 줄 알았다.


잠시 교감 교장으로의 바람을 가진 적은 있었으나 바로 발을 뺐다. 학급 담임으로서만 지냈는데도 교사 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평교사로만 있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학교 밖에 내 길이 있는 줄 알고 퇴임을 했다. 학교 밖에 행복이 있는 줄만 알았다. 막상 퇴임을 하고 일 년간 자연인으로 살아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꿈꾸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학교 밖에 행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다. 올 8월 말까지 초등2학년 담임교사 신분이다. 3월에는 참 힘들었다. 퇴임할 때, 절대로 학교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서 많은 자료를 폐기하거나 처분했다. 기본적인 도구만 교실에 비치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교실 꾸미기, 일명 '환경 미화'를 2월에 마쳤다. 3월 2일, 학생 25명을 맞이했다. 학생의 이름을 완전히 외우는데 3주간이나 걸렸다. 쌍둥이도 아닌데, 두 쌍이 자꾸만 헷갈렸다. 여학생 두 명은 눈이 작고 얼굴도 갸름하고 키도 비슷하고 머리 모양도 너무나 비슷해서 분간이 어려웠다. 남학생 두 명은 또래와 다르게 둘 다 얌전했다. 말수도 적고 목소리도 비슷하고 하는 행동도 너무나 닮아서 구별하기 힘들었다.


겨우 이름을 외웠을 무렵, 학부모 상담을 했다. 코로나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요즘 엄마들이 바빠서인지 학교 방문하는 대면 상담보다는 전화상담이 많았다. 사실 상담이라기보다는 자기소개 정도. 자기 자녀에 대한 어필과 교사에 대한 부탁으로 채워졌다. 상담 내용을 메모는 해두었는데, 지금 읽어 보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감이 잘 안 온다. 학생에 대한 파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진 대화였기에 그렇다.


초등2학년 학생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어쩌면 나도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기도 하다. 자유로운 영혼이 만났으니 서로 이해하기는 더 쉬웠어야 할 터인데,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학생들과 내가 마음 맞추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달이 지나서야 그들의 특성을 조금 파악했고, 두 달이 지나서야 학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화도 냈다. 화를 내고 나면 어른답지 못한 내 태도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안하기(가명). 그림 그리는 것도 싫고 글씨 쓰는 건 더 싫고, 운동장에 나가서 규칙에 맞게 게임하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안하기를 어떻게 달래서 공부하게 하는지도 이제 알게 되었다. 틈만 나면 일어나서 교실을 배회하는 서성이(가명)를 자리에 앉히고 내 말에 경청하게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서둘러 마쳐야 할 일에도 늘 태평한 한가해(가명)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학생 한 명은 지금도 좀 어렵다. 친구와의 다툼이 생길 때마다 남 탓만 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김샘(가명)을 지도하기는. 나쁜 버릇을 고쳤나 싶으면 또 친구와 말싸움을 하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정말 김샌다.


그러면서 이제는 학생들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듯이, 사랑보다 더 진한 건 '정'일 듯하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주간이 지나 개학을 한다. 개학하고 2주간만 지나면 계약 기간이 끝난다. 시한부 교사. 남은 기간이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우리 학교 꽃밭에 '눈 붉은 찔레꽃'이 있다. 꽃이름 팻말이 꽃 속에 파묻혀 있어서 처음엔 잘 몰랐다. 휴대폰으로 꽃검색을 해서 이름을 알았다. 찔레꽃, 하면 하얗기만 한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렇게 붉은 찔레꽃이 있다니, 새로움을 알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난 달에 한명이 전학가고, 우리 반 스물네 명의 학생도 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아이들이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주려나, 기대된다. 내려오면서 보는 꽃, 학교 밖에 있어 보니 학교 안에도 행복꽃이 있음을 알았다.

꽃이름은 '눈 붉은 찔레꽃'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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