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담쟁이

-도종환 시집 <다시 피는 꽃>을 읽으며-

by 강지영

마침내 가을이 되었다. 덥지 않은 여름이 어디 있을까마는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기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은 아열대 기준을 충족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열대기후가 되어 간다는 뜻이다. 아열대기후의 특성으로 우기와 건기가 있는데, 올여름 장마와 이어서 나타난 찜통더위를 우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름이야 어떻든 참으로 견디기 힘든 더위였다. 언제 가을이 올까, 오기는 올까 기다렸더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산책하기도 좋고 등산하기도 좋고 책 읽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은 때다. 이렇게 말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은

"놀기에도 좋고. 헤헷!"

역시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그래, 놀기에도 좋다. 하하. 다만 공부하고 놀자. 오늘은 어디 공부할 차례지?"

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도 놀고 싶은 마음은 같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까.


추석이 이틀 지나 김포 장릉에 갔다. 지난여름 초록의 향연은 끝났다. 이미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흙길에는 낙엽이 뒹굴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니 가느다란 가지에 구슬 같은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이름표를 보니, '작살나무'라고 씌어 있다. 풉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곱고 예쁜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 이름이 작살나무라니. 장대 끝에 포크처럼 뾰족한 게 붙어 있는 도구가 작살이 아니던가. 물고기를 잡는 그 작살, 섬뜩하다. 작살나무 가지 끝을 보니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자란다. 그래서 작살나무로 이름을 붙인 듯한데, 열매 모양과 나무 이름이 맞지 않아 맘에 들지는 않았다.


작살나무라는 이름표를 보고 떠오른 것은 '작살내다'이다. 무언가 파괴적인 느낌이 나는 이 말, 결딴을 내겠다는 굳은 의지와 강한 행동이 연상되는 이 말 때문에 보랏빛 또는 하얀빛을 내는 고운 열매나무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영어 이름은 'beautyberry'라고 한다. 이제야 제 모습에 걸맞은 이름을 찾았다. '아름다운 열매'라,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다음부터는 '뷰티베리'라고 불러주련다. 우리말만 고집할 것은 아니다.


십분 쯤, 걸었을까. 고마리꽃이 숲을 뒤덮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나 관리실에서 일부러 심지는 않았을 터이다. 풀꽃의 특성상, 고마리 스스로 번식하고, 고마리 스스로 자라고 꽃을 피웠다. 자세히 보면 작은 작은 꽃봉오리가 여러 개 붙어서 한 송이 꽃을 이룬다. 그 작은 낱개의 작은 꽃이 다섯 장이다. 고마리 꽃이 연못의 연꽃과도 같다. 초록잎 위에 피어난 연분홍 꽃 색깔이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연꽃과 고마리꽃은 크기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고마리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나무에 담쟁이가 자란다. 담쟁이는 울타리를 기어오르며 사는 넝쿨 또는 덩굴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니 제대로 된 이름이다. 어릴 적 토담에 붙어서 자라는 담쟁이를 보았다. 흙벽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줄 알았더랬다. 지금은 나무에 붙어서 자라면서 나무의 즙을 빨아먹으며 자라는가 보다 했는데, 그것도 아님을 바로 알았다. 담쟁이가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며 자라는 것은 나무의 즙을 빨아먹으며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담쟁이에게 기어오를 자리를 내준 나무가 저렇게 멀쩡하게 자랄 리가 없다.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나무도 굵은 가지로 뻗어 있고 싱싱한 잎을 달고 있다. 그러니 저 나무는 담쟁이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뿐이다. 담쟁이도 식물이니 저 숲에서 햇빛을 보고 싶었을 테다 그러다가 나무를 만나 햇빛을 바라 위로 위로 뻗어나갔을 터이다. 그러다가 가을을 맞아 담쟁이 잎도 단풍이 들었을 것이다. 위로 위로 뻗어가는 담쟁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잎이 방향을 잡으면 뒤따르는 잎들도 뒤따랐겠지. 담쟁이의 꽃말이 '우정'인 이유도 납득이 간다. 담쟁이를 보며, 도종환의 시 '담쟁이'가 떠올랐다. 살짝 땀이 날 정도로 산책을 마친 뒤, 집에 와서 시집을 꺼내 들었다.


담 쟁 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당신은 누구십니까>(2002, 창작과비평사), p.82)


시인 도종환은 1977년 교직을 시작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참여했다가 해직되었다. 10년 후, 복직하여 교사 생활을 하였다. 2004년에 개인적인 이유로 사직했다. 2012년에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일했다. '담쟁이' 시는 그가 해직되었을 시기에 쓴 것이라고 한다. 교사가 노동운동을 한다고 해직되었을 때의 모멸감 절망감이 이해된다. 게다가 투옥까지 되었으니 그 고통의 크기는 얼마였겠나. 그럼에도 시인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냈다. 그리고 시를 썼다.


도종환 시인이 해직된 시기를 짚어보니, 내가 1987년에 첫 학교에 발령받고 1988년부터 투병 중이었던 시기다. 그 후 나는 전교조에 가입할 심적 신체적 조건이 아니었다. 마음으로는 열렬히 지지했다. 1990년 전후로 학교는 술렁거렸다. 전교조 집회에 나가는 교사들을 징계하네 마네, 교사의 연가투쟁을 허가하네 마네 시국이 어수선할 시기였다. 그런 즈음에 시인은 '담쟁이'와 같은 절창을 남겼다. 시인이 정치인으로 변모한 내막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 덕분에 담쟁이는 위기 저항 투쟁 결기 연대의 가치를 일깨웠다.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학교에 출근한 날, 퇴근시간이 되었다. 학교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 갔다. 여러 날을 오간 곳인데 거기 그 자리에 담쟁이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학교 담장에서 담쟁이가 자라고 있다. 살며시 타고 오르는 줄기를 걷어 보았다. 살짝 건드려서는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강한 힘을 주어 떼어 보았다. 들깨알보다도 작은 빨판이 덩굴 곳곳에 자라고 있다. 바로 그 빨판이 담장에 붙어 있었던 거를 알았다.


궁금증을 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 꽃을 피운 풀꽃이 눈에 띈다. 조팝나무 꽃같이 하얗다. 소박하면서도 귀여워서 휴대폰으로 꽃이름 검색을 해보았더니 '서양등골나무'라고 한다. 우리말에 '등골 빼먹다' 또는 '등골 빠지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예쁜 꽃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집에 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서양등골나무 또는 서양등골나물이라고 한다. 근데 2002년, 환경부에서 생태교란식물로 지정했다고 한다.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는 외래 유입종이란다. 독성이 있어서 주변에 다른 풀들이 자생하는 걸 방해한다고 한다는데, 이름을 잘 지은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한의학자가 말하길, 서양등골나물은 독성이 있어서 그 풀을 먹은 소에게서 짠 우유를 먹으면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도 그렇게 사망했다고 한다. 그것 참, 보기보다 무섭네. 역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은 진리인가 보다. 그렇다고 서양등골나무를 나쁘게 볼 것도 아니다. 그게 그의 본질일 뿐이다. 인간 세상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나고 자라는 풀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출근하면 그 풀을 뽑아버려야 할까, 고민이다. 꽃이 지고 씨가 여물어 퍼지기 전에 조치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진짜뉴.jpg 도종환, <당신은 누구십니까>(창작과비평사, 2002) 도종환, <다시 피는 꽃>(현대문학북스, 2001)
인천발산초교 담쟁이.jpg 학교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
고마리.jpg 김포 장릉에서 본 '고마리꽃'
고마리꽃.jpg 자세히 본 '고마리꽃' -김포 장릉에서-
작살나무(beauty berry).jpg 뷰티베리(작살나무) -김포 장릉에서-
서양등골나무-인천발산초교.jpg '서양등골나물' -학교 담장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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