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인터넷 )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1983년~1986년), 도시에는 '음악다방'이 꽤 많았다. 때로는 '음악감상실'이라고도 하였다. 다방 입구에 스피커가 있기도 해서, 길 가는 사람에게도 노래가 들려왔다. 기억을 소환해 보니, '나 어떡해', '잃어버린 우산', '참새와 허수아비', '내가', '밤배' 등이 떠오른다. 때로는 클래식도 있었지만, 주로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곡이나 당시 대중가요가 많았던 것 같다. 또 생각나는 게, '디제이'다. 디제이는 음악다방 한 편에 마련된 작은 박스 안에서 음악을 선곡하여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디제이는 주로 남자였다. 나는 공주에서 여자 디제이는 못 보았다. 디제이가 남자여서 그런지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감성적이어선지, 음악다방에는 주로 여자 손님이 많았다. 나도 친구들하고 음악다방에 가서 신청곡을 써서 디제이에게 건네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음악다방에 간 기억은 없다.
음악다방에서 여자들은 미팅에 대한 얘기, 돈이 없어서 학교 다니기 힘들다는 얘기, 시험이 끝나서 홀가분하다는 얘기, 사귀던 친구와 결별해서 슬프다는 얘기 등등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자취생이나 기숙사생들은 타향살이에 대한 서글픔을 말하기도 하였다. 때로 어떤 친구는 메모지에 즉흥시를 써서 좌중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디제이는 저음의 목소리로 여러 사연을 읽어 주고 그에 알맞은 음악을 선곡하여 들려주기도 하였다. 또는 사연과 함께 건네받은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는 꽤 인기가 많았다. 기억에 기대 보니, 그 음악다방 이름이 '엑시트'이다. 엑시트는 공주에 있던 젊은이들에게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날 수 있는, 잠시 다른 세계로 순간 이동하여 지낼 수 있는 환상적인 '비상구'요, '탈출구'였다.
내가 그와 함께 주로 간 곳은 디제이가 없는 다방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다방이름이 '새다락'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 다방은 2층 구조였다.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자마자 허리를 굽히고 자리를 찾아 앉아야 할 만큼 천장이 낮았다. 시골집 다락같은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다락방답게 2층은 아늑하고 포근하고 편안했다. 다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까지 다 들릴 정도로 좁디좁았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즐거웠고 신났다. 손님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앉을자리만 있으면 좋았다. 좋은 사람하고 있으면 장소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담배연기 자욱했고, 사람들은 서로서로 자기들 얘기에 바빴다. 새다락은 매우 어두웠다. 어두워서 담배연기가 매우 잘 보였다. 담배연기가 낭만이었던 시절이다.
새다락 외에 간 곳이 또 있는데, '산성파크 커피숍'이다. 산성파크는 공주 '공산성(公山城)' 입출구에 있던 호텔이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호텔 객실에 갔던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 잠깐, 공산성을 소개하자면, 공산성은 공주에 있는 해발 백 미터 남짓한 '공산'에 자리한 성이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웅진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이후에 '공산성'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화려강산이 대부분 그렇듯이, 공산성에도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했고, 가을이면 잎잎이 단풍 들어,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와 나는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 공산성에 자주 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때를 가리지 않고 갔다.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공산성이었고, 공산성에서 데이트하고 내려오면 산성파크였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주 간 것은 아니지만, 그 커피숍은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산성파크 커피숍은 새다락과는 달리 매우 넓고, 쾌적하고, 무엇보다도 매우 밝았다. 자연 채광 말고도 곳곳에 켜져 있는 조명등이 얼마나 근사한지 정말로 멋있었다. 차를 서빙하는 사람들도 정장을 입고 있었고, 우리에게도 매우 정중하게 대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와 내가 자주 간 자리에는 회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였다. 그 자리 양 옆으로 커다란 통유리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 그 자리에 있으면, 바깥의 멋진 풍경이 시야에 거의 다 들어왔다. 마치 바깥에 서 있듯이. 유리에 떨어져 미끄러지던 빗방울이여! 유리에 부딪혀 떨어지던 눈송이여! 오, 옛날이여! 날이 어둑해지면 통유리를 통해 달도 별도 보였다. 거기서 그를 기다리며 책도 읽고, 그를 만나 공부도 조금 하고, 별별 얘기도 하고 그랬다. 통유리도 낭만이었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