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으로 시작하는 덴마크의 하루

Ep 22. A Danish Day Begins in Chorus

by 롤라

음악에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하나로 모으는 힘-

덴마크 헬싱외르에 있는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의 하루는 합창으로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계속 합창단에서 활동했고 개인적으로 합창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사실 이 시간이 궁금해서 IPC에 오고 싶었던 것도 있다. 책 『나의 덴마크 선생님』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그 장면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참여해 보니, 책에서 느꼈던 설렘만큼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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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큰 홀에 모여 앉아 다 같이 노래를 시작한다. 가사를 외울 필요도, 실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다. 덴마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짙은 푸른색 커버의 호이스콜레 노래책을 펴고, 피아노 혹은 기타 반주에 맞춰 선생님이 가이드 주시는 대로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합창 전통의 뿌리는 19세기 덴마크의 사상가 니콜라이 그룬트비(N.F.S. Grundtvig, 1783-1872)의 민중 학교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교육이 시험이나 점수가 아니라 삶의 기쁨과 공동체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믿었고, 노래를 그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하는 방식으로 여겼다.


19세기 중반 덴마크가 전쟁과 영토 상실로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가사와 멜로디를 함께 부르며 덴마크어로, 덴마크답게 존재한다는 감각을 나누었던 것이다. 제2차대전 독일 점령기에는 모여서 애국가와 민요를 부르며 평화적 저항을 했고, 코로나 시기에도 TV에서 국민 합창 방송을 하며 사회적 단절 속 연대감을 확인했다고 한다. 문득 한국의 전 대통령 탄핵 시위에서 국민들이 노래로, 떼창으로 평화롭게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나라와 상황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연대하는 모습 속에는 음악이 있었다.


덴마크의 음악(Danish Music) 수업에서 선생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덴마크 사람들은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예외죠." 실제로 덴마크에서 지내다 보니, 이 말이 사실임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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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다운타운에 특별한 콘서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갔는데, 그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 그룹에서 누군가 "이 노래 할 사람?"이라고 올리면 서로 댓글을 달아 각종 악기와 보컬 담당을 정한다. 오래 함께 연습해 온 팀이나 프로 밴드가 아니고 그날 처음 만난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는데,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실제 프로 팀처럼 노래도 연주도 대단했다. 관객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매주 월요일마다 이렇게 동네 축제를 즐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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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날에는 코펜하겐의 놀이공원 티볼리파크에서 덴마크의 유명한 밴드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덴마크 사람들이 다 같이 떼창을 하며 행복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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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언어를 배워가는 동안, 나는 행복이라는 게 사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매일 아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맞춰가는 이런 소소한 순간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IPC에서의 매일 아침의 합창 시간이 기다려졌다. 모든 학생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 경쟁보다는 조화를, 개성보다는 어울림을 추구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노래로 시작하는 하루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줬다. 행복을 찾으러 간 덴마크에서, 벌써 그 작은 한 조각을 찾아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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