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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프랜 Oct 19. 2024

갭이어, 후회하지 않나요?

저 사실 후회 많이 했어요. 그런데요...

M : 저는 이게 되게 궁금했어요. 갭이어를 보낼 때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K : 크게 후회하진 않아요. 갭이어를 통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하게 되찾을 수 있었거든요. 시간이 빌 때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다시 생생하게 그릴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일이 하고 싶어진 것도 좋은 점이에요. 일이 더 이상 지긋지긋하지 않고 빨리 출근하고 싶어졌어요.

- 2024년 3월, 갭이어 소모임에서



구독자님께 쓰는 열아홉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문프랜입니다.


오늘은 제 일기 대신에 지난 3월에 진행한 <나의 갭이어 일기> 에세이레터 구독자 대상 '갭이어 소모임'에서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을 가져와 봤습니다. 질문한 사람 M은 저 문프랜이고, 답변을 들려주신 K님은 갭이어 소모임에 참석해 주신 구독자 중 한 분이에요.


갭이어 소모임에 참석해주신 구독자분들과 함께


'갭이어 소모임'은 현재 갭이어 중이거나 갭이어를 고려하고 있는 구독자분들과 갭이어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신청 폼을 열자마자 열 분 넘게 신청하셔서 총 3회에 걸쳐서 구독자분들을 만났답니다. 매번 편지와 방명록으로만 소통하다가 직접 얼굴을 뵈니 얼마나 좋던지요!


이 소모임의 핵심은 제가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질문 카드였습니다. <나의 갭이어 일기>가 제 이야기라면, 이걸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은 각자 어떤 '갭이어 일기'를 써나가고 계시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재하고 있는 목차를 바탕으로 총 스무 장의 질문 카드를 만들어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시간상 모든 질문을 다루지 못했는데도 3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깊게 대화할 수 있었답니다. 저마다의 '갭이어 일기'를 기꺼이 들려주신 참석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직접 인쇄하고 잘라서 만든 '갭이어 질문 카드'


이 질문 카드를 준비하면서 제가 꼭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갭이어, 후회하지는 않나요?'

'솔직히 진짜로 정말로 후회한 적 없나요?'


내가 갭이어를 정말 해도 될지 고민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실적으로 후회되는 점은 없었는지, 정말 좋기만 했는지 말이에요.


우선 제 경우부터 이야기 해보자면 당연히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저 사실 후회 많이 했어요.


제가 갭이어를 후회했던 이유는 첫 번째도 돈, 두 번째도 돈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당시 저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있는 돈을 까먹기만 하며 지냈거든요. 충분히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통장 잔고가 훌쩍 줄어드니 마음 졸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요.


무엇보다 돈으로 인해서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그 상황 자체가 슬펐어요. 실제로 눈물 찔끔 흘린 날도 있었고요.


'아, 조금만 더 버틸걸. 그때 퇴사 안 했으면 지금 얼마를 더 벌었을 텐데...' 구질구질한 한탄과 자책을 하는 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요.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더 버티면 나는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지금이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요.


갭이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에 여유가 생기니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요리와 뜨개질 같은 새로운 세계에도 마음을 열 수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일할지 고민하고 준비할 수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번아웃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씻듯이 나았던 걸 보면 퇴사와 갭이어는 분명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놀라운 건 저만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소모임에 참석한 '갭이어러'들은 갭이어를 시작한 계기도 형태도 목적도 다 달랐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서 갭이어 하기 잘했다고 얘기했거든요.


아래는 소모임에 참석한 구독자들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내용이에요. 앞선 K님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두 사전에 인용 허락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E : 갭이어를 통해 새로운 취미를 얻었고 나한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회사 다닐 때는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늘 타이트하게 생활했는데 지금은 스케줄 조절을 어느 정도 해야 내가 피곤하지 않은지 감이 좀 오는 것 같아요.


N : 갭이어를 보내다 보니 평소에 절대 안 할 것 같은 걸 해보게 됐어요. 그게 점점 깨지는 것 같아서 되게 재밌어요.


Y : 한 가지 알게 된 건 결국 나는 바뀌지 않았다는 거예요. 시야가 확장되고 많은 세계를 알게 된 한편, 내가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몰랐던 것도 새롭게 발견한 그런 갭이어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오늘 편지의 제목으로 돌아와서,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하고 싶어요.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완벽한 선택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무얼 선택하든 후회를 아예 안 할 순 없는 것 같아서요.


후회할 일은 언제든 생길 거예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점을 찾아서 살아가는 거죠. '그래도 갭이어 하기 잘했다' 라고 생각한 순간들이 조금씩 모여서 제 마음 속에 견고한 지지대가 된 것처럼요.


그래서 그런지 한없이 땅굴을 파다가도, 결국 나는 이 선택을 하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은 갭이어 내내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음 깊이 자리잡은 지지대 덕분에 후회에 매몰되지 않고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있었어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편지를 보내고 나면 다음 편지가 <나의 갭이어 일기> 마지막 편이에요.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실 거죠?


그럼 이만 줄일게요.

오늘 밤도 편안하게 보내세요.


마지막 편지 한 장을 앞에 두고,

프랜 드림.




추신.

구독자님, 갭이어를 가진 게 후회될 때가 있었나요?


갭이어를 가져서 후회한 점과 그럼에도 좋았던 점을 솔직하게 나눠주세요. 아직 갭이어를 시작하기 전이라면 어떤 게 후회될 것 같은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죠?


제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 혹은 구독자 전용 익명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구독자님의 답장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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