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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24. 2019

위선자들이 걸친 황금옷속엔...

단테가 보여주는 위선자들이란? 런던 에세이- 아침

지옥편 위선자들의 구덩이. 벌거벗은 채 세개의 말뚝으로 땅에 붙박혀 누워있는 사람은 유대인 대사제 카이파스이다. 그는 본시오 빌라도에게 예수를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처형하라고 선동

악령에 쫓기며 도망쳐 겨우 한숨을 돌린 스승이자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와 제자 단테가 이곳 지옥세계 지하 제 8 층 6번째 구덩이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은 그룹으로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무리들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겉은 아주 화려한 황금색으로 빛나고 속은 아주 무거운 납덩이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친 겉옷이 너무 무거워 아주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이 납덩이로 만든, 겉은 눈부신 옷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잘 설명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이들속에 섞여 걸어가며 이들이 과연 누군지 궁금해 물어보는데 알고 보니 "위선자들(hypocrites)"이었다.

그 위선자들 중에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만나는 사람은 두 수도사이다. 이들은 유럽의 첫 대학이 있는  볼로냐에서 창립된 기쁨의 수도원(Jovial Friars)수도사들이었다. 우리나라 '신곡' 번역엔 이들이'향락 수사'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문맥상 잘못된 번역이다. 이들이 속한 수도원의 이름을 따라 줄여서 'Jovial Friars(기쁨의 탁발승)'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말 그대로 향락을 누리며 위선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이 위선자들의 지옥 구덩이에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수도원은 단테의 고향 피렌체에서 가문이나 정파간 화해를 유도하고 평화를 도모해야 할 임무에도 곧 세속적인 권력욕과 부로 나태해지고 태만해졌다. 그래서 자신들의 임무는 외면한 채 오히려 정파간 또는 가문간에 싸움을 유도하고 조장하는 위선자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피렌체로부터 초청받은 이들이 자신들의 임무보다 세속 당파싸움에 끼어들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던 장본인들이고 또 그 여파로 단테가 고향을 떠나 떠돈 이유도 됨으로 단테가 좋아할 리가 없다. 이런 연유로 단테는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을 이 제 8층 위선자들의 지옥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이 위선자들은 그들의 못된 본성에서 왔다.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 사리사욕으로 자신만 또는 자신의 가족들만 편하게 살기 위해 온갖 위선의 말과 행동을 저질렀다. 그럼으로 남들에게 유형무형으로 많은 피해를 입힌 것이다. 지옥의 어둠에 사는 그들의 겉옷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밝은 옷을 걸치고 있다. 그들의 위선과 허영의 화려한 언어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속은 납덩이로 채워져 엄청 무겁다. 이 무거운 옷을 걸치며 걸어야하는 벌을 받은 위선자들은 그들이 살았던 세상에서 촉새처럼 혀를 놀리며 사탕발림같은 위선의 언어들에 속아 납덩이 같은 무거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들의 피해자들을 대신해 이제 이 지옥 지하 제 8층에서 그 무거운 고통을 대신받고 있는 것이다.  


단테는 이 위선자들을 지옥의 지하 제 8층 안에 가두었다. 이 위선자들의 죄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고 지옥 최하층, 즉 사탄이 머무는 지하 제 9층 바로 위인 이곳 8층에 위치시켰다. 시인인 단테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면 위선은 지성의 악용과 남용이다. 즉, 똑똑한 자가 머리를 요리조리 돌리며 온갖 로 법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다. 여기서 단테는 덧붙이기를 아주 불순한 의도(intention)로 자신을 포장하는 자가 위선자임을 보여준다. 이 위선자들은 위선의 언어로 사회 정의나 개혁을 크게 외치는 동시에 자신은 정직하고 청렴하다고 포장시키는 자들이다. 겉과 속이 다르기에 위선이며 언행이 일치 않기에 위선이다. 바로 위의 두 수도사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단테가 얘기하듯 이들은 지옥에서 '겉은 황금빛으로 칠해진 옷(위선의 언어)이지만 속은 무거운 납덩이(위선과 사리사욕으로 획득한 위선자들의 명예와 부)로 만들어진 무거운 옷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혹시 우리 사회에 세치 혀로 정의를 외치고 속으론 온갖 잔꾀로 자신의 사리사욕과 허영을 무거운 납덩이마냥 무겁게 쌓아놓은 이런 위선자가 있을까?


https://brunch.co.kr/@london/287

https://brunch.co.kr/@london/290


단테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바티칸 시스틴 채플.
단테의 신곡

아래: "Chart of Hell"(1480 and 1490) by Sandro Botticelli, Height: 33 cm (12.9 ″); Width: 47.5 cm (18.7 ″), Vatican Library

보티첼리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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