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강아지는 로이와 로로, 둘이지만 사실 나와 긴 인연이 있었던 강아지는 한 마리 더 있었다.
요즘은 sns를 통해 한층 더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느낌이다. 그 옛날에도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유기견 보호소 내용을 간간히 공유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찾아서 주기적으로 내용 업데이트를 체크하곤 하긴 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은, 사람이 관심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요즘은 AI나 sns의 발전이 눈이 부실 정도라서, 한 번이라도 관련 내용을 본 적이 있다면 그래도 지속적으로 피드에 노출시켜주는 것 같다. 그리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든 단체를 통해서든 끊임없이 지금 안락사를 앞둔 아이나 임시 보호 중인 아이, 아픈 아이에 대해서 공유를 해주고 있다. 옛날보다 유기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확실히 더 늘어난 것 같다.
그런 여러 활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 나의 경험은 어디 가서 내세울 것은 못 되는 것 같긴 하다. 정말 어떻게 저런 왕성을 활동을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나오는 걸까, 궁금한 분들이 꽤 있으니.
사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후원하던 강아지가 있었다. 그 강아지가 있는 보호소를 알게 된 것은 거의 10년 전 쯤 일이었다. 듣기로는 그보다도 또 4, 5년 전에 어느 유명 연예인이 봉사활동을 가서 유명했던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몇몇 보호소에서 시행하고 있어서 이미 상당히 익숙한 개념이 되었지만,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의 정기 후원을 그 당시 시행하고 있었던 곳으로는 거의 그 보호소가 유일했던 것 같다.
학생일 때에는 그 제도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고,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거의 아무 것도 아닌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후원을 하지 못했었다. 내가 스스로 내 앞가림을 하지 못하던 때였으니, 정기적으로 누군가를 책임 질 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학생일 때의 나는 아무리 적은 돈에 대해서도 계속 집에 빚을 지는 기분으로 살았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또 나만큼이나 강아지를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강아지를 후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녀석을 후원할까 고민해봤다. 해당 보호소의 인터넷 카페에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늙은 아이, 아픈 아이, 애교가 많은 아이,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 하는 아이... 그 중에서 내 눈을 끈 것은, 한 걸레같은 삽살개같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미용을 하지 못해 앞머리가 눈을 다 가리고 있었다. 앞은 보이나 싶을 정도로.
나이가 아주 많은 슈나유저라는데 털이 정말 새카맸다. 그리고 기운이 넘치는지, 사진에는 마치 먼지떨이 같은 잔상만 찍혔다. 설명에는 정말 밝고 명랑했지만 요즘 나이도 많이 먹고, 같이 룸메이트를 하던 친구들은 최근에 다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마냥 슬픈 모습만은 아닌, 오히려 약간 익살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더 정이 가서.
상당히 긴 시간동안 그 아이를 후원했다. 매년 여름아면 심장사상충 예방약 모금을 하는데, 특별히 그 아이와 주변의 친구들을 위한 돈도 더 입금했다. 어떤 아이인지 궁금한 마음도 물론 있었다. 보호소 카페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사진이 간간히 올라오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궁금해서 계속 클릭해 봤지만 아이의 사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간혹가다 아이의 사진이 한두장씩 올라오고는 했다. 털을 미용했어요, 요즘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기운이 많이 없어졌네요 같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아예 안 해보았던 것도 아니였다. 언젠가 한번 보러 가야지,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매번 날씨가 좋지 않다, 바쁘다 등의 핑계로 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점점 아이의 소식은 더 안 들리게 되었다. 내가 이미 후원을 시작한 시점에 10살 추정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로부터 이미 5년도 더 지났었다.
이 아이는 과연 실존하는 아이인가? 나는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않은 강아지한테 후원을 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 때 쯔음에.
어느 날 밤에 문자가 왔었다. 산책을 다녀 왔다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무릎에는 언제나처럼 로로가 붙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문자 미리보기의 내용이 ‘안녕하세요, xx보호소입니다...’ 로 시작하였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불쾌함마저 느꼈지만, 일단 문자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내용은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고, 잠시나마 짜증을 느꼈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xx보호소입니다. 오랫동안 후원해 주셨던 희망이가 나이가 많아서 최근에 계속 기운이 없었는데, 오늘 숨을 거두었습니다. 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던, 이 정도의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과연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나름대로 큰 사명감과 자부심에 차서 강아지를 후원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 돈은 정말 어디 가서 생색을 낼 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금액이었다.
그런 작은 후원조차도 받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에 비하면 그나마 너는 좀 더 사정이 나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매번 바쁘다고, 몸이 힘들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시간을 내서 너를 들여다보러 갈 걸 그랬다. 이미 너무 늦은 때가 오고 나서야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오랫동안 후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키울 강아지를 고려할 때 그 아이는 데리고 오지 못했었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신혼집은 중형견이 오기에는 너무 좁기도 했고, 또 나이가 많은데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었다. 혹시 우리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을 때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할까봐.
우리 로로를 데리고 오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랬지만, 끊임없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버림받고 죽음의 위기에 놓인 강아지들은 많은데 내가 다 책임질 수는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을 감당하겠다고 나섰을 때, 더한 무책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로로를 선택한 것에 이기심이 단 하나도 없었을까? 품종견이고(사실 내가 가벼운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털이 많이 빠지는 아이는 도저히 같이 살기 어렵긴 했다) 나이가 어리고 등등 여러 조건들을 따지고 또 따져서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해 보았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가장 자기합리화 식의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시간과 금전 자원은 한정적이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금은 로로 하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과 돈으로 키우자고. 그러다가 여유가 더 생기면, 그 때 또 더 큰 최선을 다하자고.
내가 인스타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물 웹툰을 그리는 분들 중, ‘키니일기’를 그리는 ‘멍디’님이 계시다. 그 분이 올리셨던 만화들 중 마음을 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모든 개는 키니야.’
라고.
나 역시 그러하다. 나에게 있어, 어느 새인가 세상의 모든 강아지들은 로이와 로로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로이와 로로가, 어느 하나도 버림받는 일 없기를.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아프다고, 귀찮게 한다고... 버림받는 일이 없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