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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r 03. 2017

<도깨비> 촬영지,
퀘벡 시티 겨울 여행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퀘벡 시티의 기나긴 겨울. 순백의 풍경과 적막한 빈 공간을 채우는 퀘베쿠아의 삶과 축제를 엿보다.


라 시타델로 향하는 언덕에서 바라본 올드 퀘벡의 풍경. 페르몽 르 샤토 프롱트나크가 주변을 압도하며 웅장하게 솟아 있다. ⓒ 고현


퀘베쿠아의 본거지


퀘베쿠아(Québécois). 퀘벡 주에 살고 있는 현지인을 지칭하는 프랑스어다. 1969년 캐나다 연방 정부는 프랑스어를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로 지정하지만, 1977년 퀘벡 주는 프랑스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선포한다. 주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프랑스계 정착민이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결의에 찬 선택이었다. 그후 주도 퀘벡 시티를 비롯한 퀘벡 주의 간판과 이정표 등 공식 문구는 모두 프랑스어로 바뀌었다.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퀘베쿠아를 만나는 일도 다반사. 그런 까닭에 퀘벡 시티에 잠시 머무는 동안 “봉 주르(Bon Jour)” “메르씨(Merci)” “실 부 플레(S’il vous plait)” 같은 간단한 프랑스어가 자연스레 입에 붙는다.


17세기 초 프랑스 탐험대를 이끈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세인트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 기슭에 정착한 이래 퀘벡 시티는 뉴 프랑스(New France) 시대를 열었다. 해발 100미터 남짓의 언덕에 요새를 지어 성당과 학교, 병원, 농장 등을 세웠고, 차츰 프랑스에서 건너온 이주민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그리하여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올드 퀘벡(Old Québec)이 탄생했다. 18세기 중반 영국군에게 함락되고 캐나다 연방에 예속되고 말지만, 선대의 문화를 영예롭게 지켜온 퀘벡 시티는 프랑스 왕족을 상징하는 백합 문장이 담긴 주 깃발을 당당하게 내걸고 있다.

올드 퀘벡을 둘러싸고 있는 총 4.6킬로미터 성곽 안쪽의 중심부는 올드 어퍼 타운(Old Upper Town)이다.성벽에는 총 4개의 문이 있는데, 남쪽의 생 루이 문(Porte St-Luis) 앞에는 마차가 터벅터벅 달리며 약 30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생 루이 거리에 촘촘이 늘어선 석조 가옥마다 17세기 이래 프랑스에서 건너온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안내판이 유서 깊은 역사를 알려준다. 길 끝에는 웅장한 페르몽 르 샤토 프롱트나크(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가 자리한다. 19세기 말부터 캐나다 태평양 철도(Canadian Pacific Railway) 회사는 주요 도시마다 호화로운 호텔을 하나씩 세웠다. 그중 퀘벡 시티에는 프랑스풍 고성을 모티프로 한 호텔을 지어 프랑스 초대 총독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과 루스벨트의 정상회담이 열렸고, 조지 4세, 그레이스 켈리, 폴 매카트니 등 세계적 명사가 두루 거쳐 간 퀘벡 시티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죠.” 퀘벡 시티 관광청의 카롤린 라프랑스(Caroline Lafrance)가 자랑스레 호텔을 가리키며 말한다. 히치콕의 영화 <나는 고백한다>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배경지로도 등장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900년 동안 이승을 떠도는 주인공이 소유한 호텔로 나왔다. 라프랑스는 올드 퀘벡을 거니는 동안 퀘벡 노트르담 성당(Basilique-Cathédrale Notre-Dame de Québec) 앞에 자리한 크리스마스 부티크 숍 등 드라마에 등장한 장소를 하나씩 알려준다. <도깨비> 촬영지는 올드 퀘벡의 주요 명소를 아우르고 있어 워킹 투어 코스로 손색없다.


페르몽 르 샤토 프롱트나크 앞에서 약 45도 각도로 낙하하는 퓌니쿨레르(Fuiniculaire)를 타고 올드 로어 타운(Old Lower Town)으로 내려가는 것도 투어 코스 중 하나다. 올드 로어 타운은 퀘벡을 발견한 탐험가와 상인이 세인트로렌스 강변과 언덕 사이에 조성한 마을이다. 퓌니쿨레르에서 내리면 프티 샹플랭 거리(Rue du Petit-Champlain)로 이어진다. 이 거리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번화가로 꼽히는데, 아기자기한 노천 카페와 편집숍, 뮤지엄이 여행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올드 로어 타운의 중심을 이루는 플라스 루아얄(Place-Royale) 등 거리와 광장 곳곳의 건물 외벽에는 퀘벡 시티를 일군 상징적 인물과 계절별 풍경을 담은 프레스코화가 숨어 있다.

<도깨비> 투어의 마무리는 성곽 남서쪽 끝에 영국군이 세운 방호 기지 라 시타델(La Citadel)이 제격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라 시타델 앞에 펼쳐진 언덕은 주인공이 잠든 공동묘지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텅 빈 녹지일 뿐이다. 사라진 묘비를 상상하며 언덕 정상부까지 느긋하게 올라가보자. 고개를 슬쩍 돌리면 녹색 지붕이 햇살에 반짝이는 올드 퀘벡의 우아한 경관이 경탄을 자아낼 것이다. 드라마의 엔딩 장소로 이곳을 택한 제작진의 탁월한 심미안에도.



긴 겨울의 시작


기온이 영하 20도 안팎까지 곤두박질치고, 칼바람이 쉴새 없이 뺨을 때리고, 밤사이 무릎 높이로 쌓인 눈을 치우는 제설차가 쉼 없이 돌아다니는 퀘벡 시티의 겨울. 위도상으로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보다 남쪽에 위치하지만, 한겨울 최저 기온이 10도 이상 더 낮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아줄 만한 산악 지대가 없는, 퀘벡 주의 완만한 지형 탓이다. 퀘벡 시티의 냉랭한 겨울 풍경은 도시 남부를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이르러 완성된다. 나이아가라폭포(Niagara Falls)에서 발원한 세찬 물줄기가 온타리오 호(Lake Ontario)에 잠시 머물다가 대서양을 향해 뻗어나가는 세인트로렌스 강은 퀘벡 시티를 기점으로 차츰 폭이 넓어진다. 겨울이면 이 구간의 강물이 얼기 시작해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유빙처럼 천천히 물살을 따라 움직인다.


한겨울 세인트로렌스 강에서 익스트림 스포츠에 나서는 이도 있다. 얼음을 헤치고 강을 건너는 아이스 카누 레이스 대회 참가자들. 본래 카누는 긴 겨울 동안 얼어붙은 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100여 년 전 겨울, 카누 경주를 처음 시작했는데 그후 매년 겨울 약 3.6킬로미터의 구간을 왕복하는 대회로 자리 잡았다.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투어를 신청해 극한의 아이스 카누를 경험해볼 수 있다. “얼음이 떠 있는 강에서 카누를 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대회 코스를 완주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죠.” 퀘벡의 겨울을 담기 위해 에드먼턴(Edmonton)에서 온 프리랜스 다큐멘터리 PD 브랜디 얀치크(Brandy Yanchyk)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전날 다녀온 아이스 카누 투어에 대해 털어놓는다. 기상 조건이 맞지 않아 투어가 불가능한 날이라면 올드 로어 타운의 선착장에서 강 건너 레비(Lévis)를 오가는 페리를 대안으로 선택하자. 시원하게 얼음 조각을 깨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육중한 페리의 갑판은 페르몽 르 샤토 프롱트나크가 솟아 있는 올드 퀘벡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퀘벡 시티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세인트로렌스 강. 강물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이곳에서 아이스 카누 레이스가 펼쳐진다. ⓒ 고현

사방이 얼음과 눈으로 뒤덮이는 퀘벡 시티의 야외는 계절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과거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7년간 전투를 벌여 배틀필즈(Battlefields)라 부르는 성곽 서쪽의 아브라함 평원(Plaines d’Abraham)은 매년 여름 캐나다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을 여는 공원이다. 눈이 두툼하게 내려앉는 겨울에는 본래의 녹지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다. 그 자리에는 올림픽 규격 사이즈의 야외 아이스링크가 들어서고, 공원의 산책로는 스노슈잉과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코스로 바뀐다. “아마 퀘베쿠아 중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요? 우리는 틈날 때마다 스케이트를 타거든요.” 아이스링크의 장비 렌털 숍 직원 엘루아즈 라마르(Eloisie Lamarre)가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아이스 링크에서는 스케이트를 갓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부터 능숙하게 빙판을 질주하는 나이 든 부부까지 녀노소가 자연스럽게 주말의 오후를 만끽한다.

아브라함 평원의 아이스 링크. ⓒ 고현

도시 북부 퀘벡 항구(Port de Québec)의 요트 계류장도 겨울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뀐다. 강물이 얼어붙어 요트가 정박할 수 없게 되면 이곳에는 빌라주 노르디크(Village Nordik)란 이름의 얼음낚시터가 개장한다. 요트가 있던 자리에는 이글루가 들어서고, 얼음낚시 삼매경에 빠진 이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빌라주 노르디크 입구에 있는 마르셰 뒤 뵈 포르(Marché du Vieux-Port)는 퀘벡 시티 근교의 로컬 푸드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시장이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일 도를레앙(Iles d’ Orleans)에서 생산한 애플 사이다부터 토마토 와인, 치즈, 메이플 시럽, 블루베리 등 지역 농가에서 수확한 신선한 식자재를 파는 부스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겨울이면 얼음 낚시터로 변하는 퀘벡 항구의 빌라주 노르디크. ⓒ 고현


좀 더 터프한 한겨울의 퀘벡 요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시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레장드(Légende)로 걸음을 옮기자. 프랑스어로 ‘전설’을 의미하는 이곳에서는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셰프 중 1명으로 선정된 바 있는 프레데리크 라플랑트(Frédéric Laplante)가 퀘벡 북방의 식자재를 사용해 창의적인 보레알(boreal) 다이닝을 선보인다. 처음 방문한 이는 메뉴판을 살펴보며 꽤 진지한 고민에 빠질 듯하다. 북극 곤들매기 훈제 구이, 데친 사과와 거위 간 무스, 절인 겨자씨와 나오는 엘크 타르타르, 야생 버섯을 곁들인 바이슨(bison, 들소) 혀 구이 등.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기분으로 메뉴를 골라야 한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테이스팅 코스에 도전해보자. 메뉴판에 나온 절반 이상의 요리가 쉴 새 없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여기에 와인 코스를 추가하면, 각 요리에 딱 어울리는 와인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5차례나 테이블 세팅을 바꾼 끝에 ‘전설의 만찬’을 끝내자 허드슨 만(Hudson Bay) 어딘가를 탐험한 기분이 든다.

레장드에서 테이스팅 메뉴 중 하나로 선보인 관자 요리. ⓒ 고현




▶ <도깨비>촬영지, 퀘벡 시티 겨울 여행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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