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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07. 2019

라이징 포토그래퍼가 전해온 독일의 세 도시 이야기

함부르크, 베를린, 드레스덴을 여행하며 기록한 사진들.


누가 라이징 포토그래퍼가 될 것인가?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라이징 포토그래퍼가 이번에는 독일로 떠났다. 파이널리스트 3인이 함부르크, 베를린, 드레스덴을 여행하며 도시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들. 영감으로 가득한 찰나의 시간을 세심히 들여다보자.  







함부르크 - 베를린 - 드레스덴

제3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파이널리스트 김윤경이 바라본 함부르크.




디가! 모든 것은 타이밍
슈파이허슈타트의 전경. 빨간 벽돌과 에메랄드빛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이 늘어서 있다. ⓒ 김윤경


✽Digga : 함부르크의 안부 인사


작년 겨울 무턱대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3개월간 베를린을 여행한 뒤, 두 번째 독일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지는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 독일에서 베를린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유일한 항구도시다. 번화하고 세련된 도시 베를린과는 분명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설렜다.


부푼 기대를 안고 공항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습한 공기였다.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는 창밖으로 점점 흐려지는 하늘을 흘끗 보더니 “어째 날씨가 좋지 않네…”라고 읊조리며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여행자를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으로 감정이 고조된 나는 ‘내일은 해를 볼 수 있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창밖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빴다. 그렇게 시작한 나는 여행 내내 비 오는 함부르크를 만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지는 건물들

엘프필하르모니의 전경.  배가 지나는 시간에 맞춰 도로가  올라갔다 내려온다. 엘프필하르모니에서 본 함부르크의 전경. 정면에 성 미카엘 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 김윤경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를 대비해 챙겨 온 까만 우산을 들고 가볍게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호텔은 함부르크의 시내 중심에 자리해 조금만 걸어도 대표 관광지인 슈파이허슈타트(Speicherstadt)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함부르크의 첫인상은 시끌벅적한 베를린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이 끝없이 이어진 슈파이허슈타트와 인적 드문 거리를 거닐며 드디어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빨간 건물 사이로 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다리 밑으로 작은 배가 지나가기도 하고, 저 멀리 콘서트홀 엘프필하르모니(Elbphilharmonie)의 유리창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맞은편 다리 위에 있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다. 비슷비슷한 다리지만 건널 때마다 다른 장면이 다가왔다. ‘단지 벽돌로 켜켜이 쌓아 올린 건물뿐인데 왜 이리 좋은 걸까?’ 하고 생각했다. 



슈파이허슈타트의 한 로스터리 카페. 슈파이허슈타트에 1885년 지은 플레트슐스헨(Fleetschlösschen). 당시 세관으로 사용했으며,  현재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김윤경
슈파이허슈타트에서 마주친 아이. ⓒ 김윤경

함부르크 최대 규모의 하역 창고 단지 슈파이허슈타트. 총 1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에 7~8층 높이의 빌딩 17채로 이루어진 이 단지는 100여 년 전 커피, 차, 코코아, 향신료, 담배와 같은 고부가치 제품을 수입하는 창고로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사무실이나 박물관, 카페, 상점이 들어서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슈파이허슈타트의 카페 한편에선 커피를 로스팅하고 있었다. 그 향기를 맡으며 100여 년 전에는 이곳이 커피 자루로 가득 차 있었다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긴 세월 속에서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되 내부는 필요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해가는 모습처럼, 함부르크 사람들에게 100년이라는 세월은 창고 아래 엘베(Elbe)강이 흘러가듯 그저 무던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카페를 나와 비를 잔뜩 머금은 빨간 건물을 다시 걷노라니 창고 거리의 색채가 더욱 짙어 보였다. 








함부르크 부의 상징

칠레하우스의 야경. 엘베 터널(Elbe Tunnel)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함부르크 항구의 전경. ⓒ 김윤경

뱃머리 형상의 칠레하우스(Chilehaus)는 1922년 칠레에서 부호가 되어 고향 함부르크로 돌아온 헨리 브라렌스 슬로만(Henry Brarens Sloman)이 5,000제곱미터의 부지를 구입해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그후 이 건물은 함부르크 경제 부흥의 상징이 되었고, 현재는 슈파이허슈타트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빌딩 사이로 뱃머리를 형상화한 10층 높이의 건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들고 뱃머리 형상의 모서리 끝을 올려다보았다. 상상 속 이미지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오랜 세월에도 세련된 형태를 유지한 건축물에서 위엄이 느껴졌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뻥 뚫린 천장과 네 면이 창문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칠레하우스의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480만 개의 암적색 벽돌과 2,800개의 창문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한눈에도 견고하고 튼튼해 보였다. 헤아리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숫자를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100년 전 함부르크 사람들은 이 앞을 지나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 우리가 제2롯데월드 앞을 지날 때의 기분이었으려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힘들었던 함부르크 시민에게는 이 건물의 존재가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가이드 니콜라(Nikola)가 건넨 팸플릿의 표지에는 건물을 짓고 난 직후 옥상의 창문 틀에 공사장 인부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오래된 흑백사진이었지만, 지금도 저 옥상을 올려다보면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크트 파울리의 거리 주점

레퍼반에서 슐라게르무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 김윤경

장크트 파울리(Sankt Pauli)의 레퍼반(Reeperbahn) 거리는 초창기 비틀스가 일대의 라이브 음악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했다는 광장 비틀스플라츠(BeatlesPlatz)로 유명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장크트 파울리 구석구석에 다양한 클럽과 주점이 즐비하다. 항구와 가깝기 때문인지 홍등가가 발달했고, 유흥의 역사 또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함부르크 여행 하면 레퍼반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밤 문화와는 거리가 먼 나는 멋진 마도로스 캡과 캐주얼한 정장을 차려입은 현지인 가이드 외른(Jörn)과 함께 해 질 녘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레퍼반 거리를 구경했다. 레퍼반의 메인 거리에서는 드래그 퀸(Drag Queen)의 시초인 올리비아 존스(Olivia Johns)의 영향을 받아 드래그 퀸 분장을 하고 가게 앞을 지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거리의 끝에는 오래된 교회가 하나 서 있는데, 그 앞에서 가이드인 드래그 퀸 1명을 관광객이 에워싸고 투어를 다니는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주점 추어 리체(Zur Ritze)는 특이하게도 지하에 복싱 링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이곳은 과거 독일의 유명 복서들이 사용하던 연습장이었다고 한다. 역사가 깊은 주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장크트 파울리는 단순히 유흥가가 모인 곳이 아니라 마치 밤 문화의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레퍼반에서 매년 열리는 슐라게르무브 (Schlagermove) 페스티벌 현장.  이는 독일 컨트리음악에 맞춰 1970년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축제다. ⓒ 김윤경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슬슬 출출해졌다. 외른은 함부르크 사람들이 일반적인 햄버거를 자주 먹지 않는다며 자신의 단골집인 함부르크식 버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함부르크가 햄버거 패티를 최초로 만든 곳이라 햄버거의 어원이 이곳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현지인은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다니! 골목 한쪽의 클라이네 하이에 그로세 피셰(Kleine Haie Grosse Fische)라는 해산물 음식점으로 향했다.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햄버거는 비스마르크(Bismarck)라고 부르는데, 고기 패티 대신 날것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 같은 신선한 버거다. 가게 앞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버거를 한입 먹으려는 순간, 외른의 친구처럼 보이는 독일인 무리가 다가와 작은 잔에 담긴 술을 들고 나를 에워싸더니 “프로스트(Prost)!” 하고 외치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간판이 반짝이는 거리 한가운데 정어리 버거를 먹는 나를 향해 건배를 외치던 건장한 독일인의 잔상과 시큼하던 버거의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피시 마켓의 푸드코트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 김윤경
피시 마켓에서 구입한 화분을 들고 있는 쇼핑객. 피시 마켓의 푸드코트에서 공연을 즐기는 남자. 함부르크식 햄버거 가게  깃발이 내걸린 피시 마켓의 풍경.  ⓒ 김윤경

함부르크 피시 마켓은 함부르크 항구 근처에서 일요일 오전 6시부터 9시경까지 열린다. 피시 마켓이라 하여 고기잡이배에서 갓 내린 생선을 경매하는 이미지를 상상했지만, 함부르크 피시 마켓은 컨테이너 트럭이 줄지어 있고 생선뿐 아니라 함부르크식 햄버거, 소시지, 과일, 기념품 등 거의 모든 물건을 파는 마켓이었다. 흔히 보던 야시장과 비슷한 풍경에 기대감이 꺾이려는 찰나, 기다랗게 늘어선 트럭 줄 끝에 커다란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꼭꼭 닫힌 창문 틈으로 작은 음악 소리와 주황색 전구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격자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고 내부를 들여다보자 안쪽에서 나를 발견한 할아버지가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내부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푸드코트였고, 건물 양쪽 끝에 위치한 큰 무대에서 번갈아 공연을 하고 있었다. 무대 앞 스테이지에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것이 아침 9시의 모습이라니, 대체 이곳 사람들의 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너 나 할 것 없이 스테이지로 나와 춤을 추는데 마치 팔딱팔딱 뛰는 생선처럼 활기가 넘쳐났다. 사람들 틈에서 음악에 몸을 까딱까딱하며 한참을 구경하다가 바깥으로 나와 다시 항구를 마주했다. 바다에는 또다시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슈파이허슈타트의 야경.  뒤편으로 파도 형상의  엘프필하르모니 건물이 보인다. ⓒ 김윤경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사는 요즘도 그날의 함부르크를 떠올리면 장대비가 쏟아지던 슈파이허슈타트의 빨간 창고 거리에서 시작해 부슬비 내리던 함부르크 바다의 묵직한 짠 내음으로 끝난다. 매일매일 흐린 날씨와 비 때문에 화창한 함부르크를 별로 마주하지 못해 돌아와서도 내내 아쉽기만 했는데, 이 또한 나에게 주어진 타이밍이었다. 창고 거리의 코너를 돈 순간 옥상에서 도르래가 내려와 100년 전처럼 물건을 옮기는 진기한 광경을 본 일, 하루에 서너 번 올라가는 운하의 다리가 갑자기 눈앞에서 올라가는 것을 본 일. 1년에 두 번 볼 수 있다는 엘프필하르모니의 창문을 청소하는 모습을 단 몇 분 만에 본 내게 가이드 니콜라는 눈을 마주보며 “나이스 타이밍, 넌 정말 운이 좋은 애구나!” 하고 말했다. 니콜라의 말대로 내 여행은 모든 순간이 나이스 타이밍이었을 수도 있다. 좋은 타이밍의 순간들을 연속적으로 마주하는 순간 밀려오는 설렘과 긴장,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것을 우연히 마주칠 때 느끼는 기시감. 그 모든 찰나의 순간에 이어지는 감정이 나에게는 곧 여행이기 때문이다.





김윤경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프리랜스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모르는 얼굴과 언어 사이에 혼자 있는 것이 좋아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잠시 베를린에 체류하는 동안 찍은 사진을 계기로 이번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글/사진. 윤경






'독일의 도시 이야기'에 이어진 이야기

Part 2. 베를린의 사소한 여유

▶ Part 3. 오늘의 날씨

▶ 독일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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