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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Feb 03. 2019

오직 우리만의 히말라야

“나마스떼. 어디까지, 가요?” 

포터의 대답이 한 음절씩 끊어지며, 찬 공기 속으로 하얗게 불어 나왔다. 소처럼 깊고 큰 눈을 가진 포터의 등에는 배낭 네 개를 합한 크기의 커다란 짐 꾸러미가 매달려 있다. 짐에서 딸려 나온 세 개의 끈은 양어깨와 머리에 하나씩 달려있다. 


“띠망이요. 거의 다 왔죠?” 

내가 물었다. 

 

“몇 분만 더 걸으시면 돼요.” 

중심을 잡으려고 살짝 구부린 몸과 머리에 달린 끈 때문에, 포터가 말을 하려면 눈을 살짝 치켜떠야 했다. 눈을 치켜떠도 선한 인상이다. 


“그거 들고 어디 가요? 안 무거워요?”  

“에이, 아뇨. 별로 안 무거워요. 맨날 드는데요 뭐. 차메에 가고 있어요. 차메는 엄청 큰 마을이에요. 약국도 있고 병원도 있고.” 

“아, 우리도 오늘 거기까지 가려했는데. 포기. 세 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하지 않아요?” 

“전 길이 익숙해서 금방 가요. …. 내일이라도 차메에는 꼭 들르세요. 크고 좋은 마을이니까!” 

 

포터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더스틴이 차례로 악수했다. 길 조심해서 가세요. 내가 말했다. 그쪽도, 나마스떼. 포터가 뒤를 돌았다. 뒤를 돈 그는 움직이는 거대한 짐 같은 모습이 되었다. 거대한 짐은 흔들거리다 숲 속으로 멀어져 갔다. 힘들다는 불평은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조금 조용한 데서 자보자.” 

내가 말했다. 


“뭐, 그래.” 

더스틴이 답했다. 

“괜찮겠어? 브렛이랑 조세프 다시 만나고 싶은 거 아냐?” 

“야, 게네는 이미 이 산꼭대기까지 갔을 거다. 애초에 포기했어.” 

“그래. 오늘은 그냥, 사람 만나는 것보단 여기 조용히 있고 싶어. 뭔가 신비롭잖아. 다른 세상 같고.” 

 

작은 나무 테이블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띠망에 다 왔나 보다. 지금까지 거쳐 온 마을들로 추측해보건대, 띠망 역시 마을 입구에서 20분 정도 더 걸으면 숙소가 모여 있는 중심가가 나올 터다. 하지만 가지 말자. 중심가 말고, 조용한 곳에 머물자. 

 

“저기요….”  

외떨어져 있는 작은 식당.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파는 식당 같아 보이지만, 혹시나 방이 있나 해서 가봤다. 어두운 식당 안을 빼곡 들여다봤다. 젊은 여자가 부엌에서 나왔다. 차가운 공기 탓인지 여자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룸?” 

내가 물었다.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 숙이더니 식당 옆 나무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문 세 개가 나란히 난 집이었다. 여자가 가운데 문을 열었다. 네팔 신문으로 사방을 도배해 놓은 작은 방이다. 


“핫 워터. (Hot water)” 

방에서 짐을 풀고 있는데 여자가 왔다. 나가보니 양철 대야가 문 앞에 놓여있다. 대야에서 김이 폴폴 났다. 대야를 들고 마당 수돗가로 갔다. 찬물을 살살 섞어 세수를 했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수돗가로 달려왔다. 검지를 입에 올리고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안녕? 아이의 양 볼은 엄마를 닮아 붉게 물들어있다. 아이는 수줍게 웃더니 엄마에게 달려갔다. 설산을 배경으로 뛰는 아이의 양 갈래 머리가 하늘 위로 폴짝 뛰었다. 하얀 설산 봉우리는 저무는 석양에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띠망의 산장


“디너. (Dinner)” 

여자가 식당 문밖으로 나와 손짓했다. 아이가 마당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야외 의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품에 쏙 안겼다. 더스틴과 나는 어두운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가족을 마주하고 앉았다. 드르륵드르륵. 여자가 음식을 접시에 담았다. 고요하다. 산장 가족과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다른 트레커들은 마을 중심의 어느 숙소에서 밤을 보내고 있겠지. 


“야 한 입만 더 먹자.” 

더스틴의 달밧(네팔식 백반) 접시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싫어. 달밧 먹고 싶었으면 달밧을 시켰어야지.” 

“아 좀 치사하게…. 이렇게 맛있을지 몰랐지. 지금까지 먹은 것 중 최고 아니냐? 내 볶음밥도 맛있어. 먹어봐.” 

“…. 오, 맛있네.” 

“맛있지? 반씩 바꿔 먹자.” 

“싫어.” 


건너편 탁자에 앉아있던 여자와 할아버지가 우리를 슬쩍 쳐다봤다. 아이는 자기 얼굴만 한 수저를 들고, 작은 접시에 담긴 볶음밥을 열심히 먹었다. 엄마 아빠가 식당 했었다고 했잖아. 내가 말했다. 손님이 뭔가 주문하면, 그러니까…. 너랑 우리 엄마 아빠랑 두 번째 만났을 때 먹은 생선요리 기억 나? 그게 아귀찜이었는데…. 그런 걸 주문하면 조금 더 많이 해서 나 좀 주고 그랬어. 거기다 밥 먹으라고. …. 괜히 볶음밥 시켰네. 손님 우리 둘밖에 없는데 괜히 따로 요리해야 하고. 나 바본가 봐. 엄마 아빠 식당 하는 10년 동안 배운 게 하나도 없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요. 베스트 달밧. 히말라야 베스트 달밧.” 

내가 말했다. 여자가 수줍게 웃었다. 야 너도 한마디 해. 더스틴에게 속삭였다. 됐어. 나 그런 스타일 아닌 거 알잖아. 네가 했으면 됐지…. 참나. 아 볶음밥도. 베스트 프라이드 라이스! 촛불만 은은하게 비추는 어두운 부엌, 여자의 붉은 양 볼이 조금 더 붉게 달아올랐다. 볶음밥을 먹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와 엄마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산장에서의 저녁식사


차를 마시고 뒷마당으로 갔다. 해가 저물어있었다. 뾰족한 나뭇가지들과 고요한 설산이 달빛 아래 신비한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신문지가 발린 벽 사이에 난 조그만 창문 안, 커다란 설산이 꽉 차게 들어서 있다. 이렇게 깜깜한 밤에도 저토록 하얗게 서 있는 설산들이 신비롭다. 이 풍경이 오늘 밤, 오직 우리만의 차지라는 게 이상하다. 나무 벽 사이로 벌레 소리가 잠잠히 흘러들었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보내는 또 다른 밤. 지난 사흘과는 다른 밤이다. 처음 만난 트레커들과 나누는 자기소개도, 밤을 지새우는 카드 게임도 없다. 끝나지 않을 여행 이야기도 없다. 여행자들과 함께 보내는 시끌벅적한 히말라야의 밤도 좋지만, 오늘 밤도 더없이 좋다. 특별한 밤이다. 조용한 이곳에서, 조용한 가족과 조용히 밥을 먹고, 설산을 핑크색으로 물들이다 이내 저버리는 해를 보며, 그렇게 마무리하는 하루. 


오직 우리만의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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