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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Mar 10. 2019

절정의 히말라야

두 시간 정도 앉아있었나. 정오에 가까워지자 잠시 물러서 있던 구름이 슬금슬금 되돌아왔다. 


“구름이 조금 비켜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산 한 번 더 보고 가자.” 

더스틴이 말했다. 그래. 난 반나절이라도 기다릴 수 있어. 어차피 가야 할 곳도 없잖아. 


“와, 진짜 멋있다! 우후!” 

꼭대기에 방울이 달린 귀여운 털모자를 쓴 짙은 눈썹의 여자가 외쳤다. 그 옆에는 각진 턱과 똘망똘망한 눈이 슬쩍 프로도를 닮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하-, 감탄을 하다 아쉬운 듯 사진을 찍는다. 이미 사진을 50장도 더 찍은 나도, 다시 한번 찍어본다. 카메라 화면을 확인했다. 카메라에 담긴 설산은 나보다 한참이나 작다. 다시 눈을 들어 설산을 봤다. 한눈에는 절대 담지 못할 거대한 설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성 중 아마 여기가 절정이 아닐까.



커플이 우리 옆에 주저앉았다. 안녕? 여자가 하얗게 웃으며 인사했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했다. 줄리와 루카스는 프랑스에서 왔다. 


“줄리가 박사 학위를 막 끝냈거든. 그 참에 나도 회사 그만두고 같이 왔어. 6 개월 정도 여행하려고.” 

루카스가 말했다. 


“네팔 전에는 어디 갔는데?” 

더스틴이 물었다. 


“여행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했어. 중국으로 가는 시베리아 열차를 탔는데…. 아! 중간에 몽골도 잠깐 들렀다!” 

줄리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들떠있다. 


“와…. 시베리아 열차 진짜 타보고 싶은데.” 

내가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288km를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직통열차. 우리도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고려해 본 옵션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가격이 어느 정도 해?” 

내가 물었다. 스페인에 중국에 PCT, 거기에 시베리아 열차까지 더해졌다. 반 평생 여행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겠다. 


“그렇게 싸지는 않아. 프랑스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값보다 비쌌어. 그래도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거쳐 간다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 

줄리가 말했다. 


“어디가 제일 좋았는데?” 

“음…. 몽골? 몽골이 제일 좋았어.” 

몽골. 몽골을 횡단했다면 시베리아 스텝 지대 타이가와 몽골의 사막 지대를 가로질렀겠지. 하얼빈을 거쳐 중국으로 갔을 거고. 아, 몽골 가고 싶다. 


아니지…. 난 바보인가…. 몽골 따위는 그만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설산을 보란 말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바로 눈앞에 두고 몽골에 가고 싶단 생각이나 하다니. 



오후 2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왈에 도착하니 3시다. 가루에서 나왈까지, 2시간 걸릴 길을 7시간에 걸쳐 왔다. 매우 잘한 일이다. 나왈은 거대한 봉우리들 안에 포근히 감싸 안긴 마을이었다.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줄리와 루카스가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아까 거기, 가루-나왈 구간. 내일 다시 가자.” 

비니를 벗고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더스틴이 말했다. 


“다시 돌아가?” 

“응. 아침 일찍 다시 가서 원 없이 보고 오자. 다시는 이런 풍경을 못 볼 테니까.”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아직 두세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나왈 뷰포인트에 가 보기로 했다. 


“어?” 

앞서 걷던 더스틴이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잰걸음을 걸었다. 건너편 숙소 테라스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만났구나, 너희?” 

더스틴을 뒤따라간 내가 말했다. 다나큐에서 만난 체코 트레커, 헬레나와 이반 커플이다. 일행은 다섯으로 불어나 있다. 산을 내려갔다 올라오는 친구들과 다시 만날 거라고 하더니. 


“오늘 나왈에서 만났어.” 

이반의 선글라스가 햇살에 반짝였다. 


“어떻게 엇갈리지 않고 잘 만났네? 신기하다.” 

내 콧잔등 위로, 찬 공기 속으로 떠내려가는 허연 입김이 슬쩍 보였다. 

“마을에 도착하면 무조건 제일 첫 번째 숙소에서 묵기로 했었거든. 토마스랑 마케터, 밀란이 빨리 와주기도 했고.” 

예! 친구 다섯이 찻잔을 높이 들고 부딪혔다. 


나왈




“야 그만 가 이제!” 

할 만큼 했다. 길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돌무더기 쌓인 경사길을 오른 지 30 분. 한 발자국 내밀 때마다 돌멩이가 스무 개씩 와르르 쏟아진다. 


“…자.” 

“뭐?”  

돌멩이 쏟아지는 소리에 거센 바람 소리까지 더해져, 더스틴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10분을 더 올라 결국 뷰포인트까지 왔다. 익살스러운 눈이 그려진 하얀 초르텐(불탑) 옆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왈 마을을 감싸 안은 안나푸르나의 설산 봉우리들. 그 뒤에 선 강가푸르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휘잉! 바람이 비명이라도 지르듯 내 시린 귀를 스쳤다. 


“나는 저 위까지 올라가 보려고.” 

코털 아래 가려진 더스틴의 작은 입이 웅얼거렸다. 


“뭐? 어디?” 

“저어기. 저기 작은 점 보여?” 

“안 보이는데.” 

“아무튼 갈 거야. 너도 가려면 가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 

“야, 여기도 해발 4,000m야. 더 올라가면 좀 위험하지 않아?” 

“괜찮을 거야. 아무래도 난 가봐야겠어. 갈 거야 말 거야?” 

“안 가.” 


더스틴의 눈동자는 대낮의 고양이 눈빛처럼 작아져 있었다. 콧구멍은 화라도 난 듯 살짝 벌어져 흰 김을 씩씩 뿜어대고 있다. 아무래도 가봐야 되겠는 건 뭔데? 평소답지 않은 정복자 흉내는 또 뭐고…. 나는 걱정스러운, 한편으로는 못마땅한 마음으로 더스틴의 뒤통수를 살폈다. 더스틴은 가방을 내 옆에 내려놓고 돌무더기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돌멩이들이 와르르. 또 와르르. 얼마 못 가 그 와르르하는 소리도 그치고 세찬 바람 소리만 남았다. 길 아닌 길을 일직선으로 곧게 오르던 더스틴은 점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나도 갈 걸 그랬나. 여기도 경치가 이렇게 끝내주는데 저 위는 더 멋지려나.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파란 잠바는 보이다 안 보이다 하더니, 아주 사라져 버렸다. 


“이게 미쳤나. 왜 이제 와?” 

더스틴이 돌아온 건 한 시간 후였다. 내가 걱정하는 건 생각 안 해? 


“그래서, 어땠어? 나도 가봐야겠어?” 

내가 물었다. 

“음…. 아냐 뭐 굳이 갈 필요 없어. 여기도 아주 멋져.” 

“그럼 너도 괜히 갔네?” 

“아니. 난 굳이 경치를 보러 간 건 아니라서.” 

그럼 왜 갔는데? 몰라.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었어. 더 가고 싶었는데 네가 걱정할까 봐 내려온 거야. 거기 뭐가 있었어? 아니. 그럼 왜 가? 몰라. 너 좀 이상해…. 어디 홀렸어? 


나왈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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