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쓰는 소설
(1편에서 이어짐)
그런데 어제의 그것보다 더 커진 것이다. 최팀장의 얼굴말이다. 모니터와 파티션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보고하러 가는 길에, 프린트된 인쇄물을 가지러 가는 길에 틈틈이 관찰해 본 결과 확실했다. 영감님 같은 흐트러진 눈썹과 힘없이 축 처진 눈, 고도 비만의 배처럼 불뚝 튀어나온 코의 크기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얼굴 겉 부분에 찰흙을 덧댄 것처럼 그 지름만 조금 커져 있었다. 얼굴이 부은 건가? 얼굴이 부으면 눈코입과 볼이 전체적으로 붓지 않나? 어디가 아파서 생긴 이상현상인가? 최팀장은 평소에도 간이 안 좋은 사람처럼 낯빛이 매우 어둡긴 하다. 간이 안 좋으면 얼굴의 지름이 조금 커지기도 하고 그러나?
“최팀장말이야. 오늘 얼굴 좀 안 좋아 보이지 않아?”
탕비실에서 만난 박대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웬 최팀장 타령이야?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아니, 오늘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여서….”
“뭐, 글쎄? 흙빛 같은 낯빛 그대로고, 못생긴 눈코입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난 잘 모르겠는데? 몰라. 어디 아픈가 보지.”
“아니 아픈 게 아니라…. 크기가 좀….”
“크기? 얼굴 크기? 최팀장 얼굴 원래 크잖아.”
“아니 그건 아는데.... 그걸 모를 순 없고....”
“아, 아무튼. 진짜 못생겼어. 안 그래도 싫어 죽겠는데 얼굴도 진짜 꼴 보기 싫게 생기지 않았냐? 못생겨서 보기 싫은 건지, 보기 싫어서 못생겨 보이는 건지….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 진짜 모르겠다니까.”
나는 입을 다물고 인스턴트 커피를 담은 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박대리 얘는 이게 문제다. 타인에 대한 외모 평가다 너무 심하다. 아니, 그게 박대리가 하는 생각과 말의 전부다. 운영팀에 새로 들어온 하주임 봤냐, 키도 크고 너무 예쁘더라, 다음 생에는 그녀로 태어나고 싶다…. 한대리랑 성대리가 사귄다더라, 근데 누가 봐도 내가 성대리보다는 외모적으로 훨씬 낫지 않냐, 자존심이 상한다…. 등. 박대리는 오로지 외모만 평가했다. 사람의 성품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제가 능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능력에 대한 낮은 자신감이 외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상쇄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능력은 없지만 얼굴은 좀 예쁘잖아?’라는 본인의 생각을 끊임없이 표출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를 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 타인에 대한 외모 평가인듯했다. 사실 박대리의 얼굴이 좀 작기는 하지만, 특히 최팀장과 비교하면 월등히 작기는 하지만, 마흔 중반이 넘은 나이에 외모 자부심을 느낄 만큼 출중한 외모를 가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사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마흔이 넘어서 외모가 크게 중요할 일이 뭐가 있나? 사춘기 중학생도 아니고…. 박대리가 저렇게 여태껏 철이 못 들고 있는 건 여태껏 살아온 성정 탓이다. 박대리는 회사에서 늘 그렇게 살아왔다. ‘나 이거 못하겠는데….’ ‘너무 힘들어’라고 손가락을 깨물며 미숙한 척을 하면 옆에서 남들이 보고서도 써주고 위로도 해주고 싸워도 주고….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는 거다. 하긴 그렇게 잘만 살아왔는데 고칠 이유가 뭐가 있겠나. 그리고 사실 뭐, 그것도 기술이고 재능이다. 회사 생활에 정답이 어디 있나. 나처럼 성과 관리하려고 남들이 하기 싫다는 일 다 맡아서 한 사람이랑 박대리의 오늘날 위치는, 결국 같은데.
그런 박대리와 최팀장의 얼굴 크기에 대해 더 논하고 싶지 않았다. 나까지 남의 얼굴 크기나 쟤며 외모평가나 하고 앉아있는 한심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으니까. 커피가 든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최팀장의 머리는 그새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아니 사람 머리가 무슨 잔디인형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자라? 이 정도면 최팀장의 머리가 커지고 있는 게 아니라 내 눈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퇴근길에 안과, 아니, 정신과에 가봐야 하나. 그런데 분명 더 커졌다. 탕비실에 가기 전만 해도 그의 얼굴은 그나마 모니터에 가려져 있기라도 했다. 지금은 27인치 크기의 모니터 가장자리로 그의 얼굴이 삐져나와있다. 사람 얼굴이, 그것도 성인의 얼굴이 어떻게 자랄 수가 있지? 그것도 분단위로? 그리고 왜 박대리는 눈치를 못 챈단 말인가?
상의하고 싶었다. 최팀장의 얼굴 크기가 점점 자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런 말을 나눌 만큼 친한 동료는 박대리뿐이었다. 그런데 박대리 저년은 자기 외모에만 신경 쓰느라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다. 다른 팀원들은 눈치를 못 챈 건지 눈치를 채고도 점잖은 체하느라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최팀장의 얼굴은 끝 간 데 모르고 비대해졌다. 내 시신경이나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는 걸, 최팀의 얼굴이 나날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최팀은 머리가 저토록 비대해지기 전에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앉아있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너무 무거워서 꼿꼿한 자세로는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머리가 더욱 비대해진 요즘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머리를 목만으로는 받치고 있는 게 감당이 안되는지, 꼭 오른손으로 한쪽 팔을 괴고 앉았다. 보통 사람이 턱을 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나름 편안해 보이거나, 너무 편안한 나머지 게을러 보이기까지 하기 마련인데, 최팀장의 그 자세는 뭔가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심지어는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무언가였다. 마치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작은 돌멩이 위에 거대한 바위를 하나 얹어놓은 돌탑을 보는 듯했다.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최팀장의 오른팔은 힘줄이 여기저기 잔뜩 튀어나온 채, 마치 거대한 바위를 받쳐 들고 있는 시시푸스처럼 안간힘을 쓰며 그의 얼굴을 받쳐내고 있었다.
앉아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해야 할 때가 문제였다. 원래도 자리를 잘 뜨지 않는 최팀장은 머리가 비대해진 뒤로 웬만하면 자리에 앉아서 그 육중한 머리를 오른팔로 괸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렇다고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9시간을 버티고 있는 건 불가능했다. 본부장 방에 보고도 하러 가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며, 점심도 먹어야 하고, 집에도 가야 하니까. 최팀장은 일어날 일이 있을 때면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한숨이 먹구름처럼 팀 공간 전체를 무겁게 내려 깔고 나면, 이윽고 그가 천천히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그가 머리를 받친 채 천천히 어딘가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뭔가 골똘히 생각할 일이 있는 것처럼, 혹은 편두통이 있는 것처럼 한 팔로 고개를 받치며 가더니, 머리가 더 커지자 제깐에 요령이 생겼는지 양손을 고개 뒤로 받쳐 깍지를 낀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박스를 양팔 가득 안아서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옮기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불안하고 불행해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