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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Oct 27. 2024

마호가니 테이블 2

아무렇게나 쓰는 소설 

(1편에서 이어짐)


“집 안에서 다시 보니까 좀 더럽네? 너무 오래됐나.... “ 


작은 방 한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을 여기저기 살피며, 도현이 말했다. 


"못 쓸 정도야?"

"아니 좀 닦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좀 닦아, 그럼." 


작은 방이 들여다 보이는 부엌 식탁에 앉아 사과를 씹으며, 정미가 말했다. 도현은 그런 정미를 잠깐 노려보다가 물티슈를 챙겨 와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먼지와 때가 걷힐수록 윤기가 나고, 고급 원목의 멋이 살아나는 듯했다. 많이 낡긴 했지만 멋진 책상이었다. 땡잡았다는 생각에 도현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상판을 다 닦은 도현은 책상다리를 닦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 서랍도 있네.” 


상판 아래에 숨겨진 얇은 서랍이었다. 도현이 서랍을 열었다. 귀걸이, 동전, 사진, 영수증, 메모지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도현의 말에 정미가 사과를 계속 씹으며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뭔데? 정미가 물음과 동시에 정미의 입에서 노란 사과 파편이 튀어나와 도현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도현의 얼굴이 팍 찡그려졌다. 아 진짜…. 존나 더럽게…. 도현이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물티슈로 제 얼굴을 닦았다. 정미는 서랍 안에서 사진을 집어 앉아있던 식탁으로 돌아갔다. 다섯 장의 사진에는 정미와 도현의 또래, 그러니까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결혼식 사진이 있는 것으로 봐서 부부인 모양이었다. 정미는 결혼식 사진을 골라 오래 들여다봤다. 주례로 보이는 머리가 반쯤 빈 중년의 남자 앞에, 푸른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자가 선 자리 옆쪽으로 한자로 ‘신랑’, 그 아래 한글로 ‘김정배’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고, 여자가 선 자리 옆쪽으로는 한자로 ‘신부’, 그 아래 한글로 ‘손연정’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사진 아래 박힌 날짜는 1984년 3월 31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결혼식 사진 같은 걸 이렇게 아무 데나 넣고 잊어버리냐.” 

정미가 제 손을 바지에 쓱 닦으며 말했다. 


“결혼식 사진 같은 거 뭐, 있으면 보기나 해? 니도 약혼반지 얻다 던져가지고 잃어버렸잖아.” 

“아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데?” 

정미의 목소리가 커졌다. 


“좀 조용히 말해라. 또 층간소음 신고당하고 싶어?”

도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 모양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정미가 눈알을 천장 위로 굴리다 한숨을 쉬더니 결혼식 사진을 식탁 위로 거칠게 내려놨다. 다음 사진은 결혼식 사진에 있던 같은 남녀가 산에서 찍은 거였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서 있는 여자와 남자 발아래 정상석에 ‘天王奉’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었다. 


“천왕…. 봉. 야 천왕봉이면 어디냐?”

정미가 물었다.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앎.”

“아 씨 좀 찾아보라고. 니 핸드폰 들고 있잖아 지금. 사진에 천왕봉이라고 쓰여있단 말이야.”

“그 사람들이 천왕봉에 갔건 말건 뭔 상관?”

“아 궁금하잖아!” 

“아 씨 존나 귀찮게….” 

도현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지리산이네. …. 아, 아니다. 속리산에도 천왕봉 있다.” 


도현이 검색을 하는 동안 정미는 사진을 계속 들여다봤다. 여자는 청자켓과 나풀거리는 긴치마 차림에, 잔뜩 부풀린 긴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산 정상까지 갔으면 꽤나 힘이 들었을 텐데, 분홍빛 립스틱과 짙은 마스카라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조금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장발의 머리를 8대 2로 가른 남자의 눈썹 아래로, 크고 쌍꺼풀이 짙은 눈이 카메라를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굵은 체크무늬 남방 차림에, 가죽 잠바는 팔 한쪽에 걸치고 있었다. 사진 속 비석 하단에는 ‘해발 1,058m'라고 적혀있었다. 사진 하단에는 사진이 촬영된 날짜가 적혀있었다. 1994년 3월 31일. 


“결혼기념일이라고 여행 간 거야? 산으로? 미쳤네…. 아, 여기 해발 1,058m라고 써 있다. 야 그러면 지리산이냐 속리산이냐?”

“….”

“어?”

“뭐?”

“아 저 새끼가 진짜. 아까부터 사람 말 자꾸 안 들을래? 해발 1,058m 천왕봉이면 지리산이냐고 속리산이냐고?” 

“아…. 몰라 씨발 니가 찾든가.” 


정미가 한숨을 푹 쉬고는 사진을 뒤집었다. 사진 뒷면 하단에 손글씨로 쓴 짧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존과 마틸다, 마지막 봄, 속리산에서.’ 


“존과 마틸다? 이 사람들 뭐야? 진짜 웃기네.” 


정미가 피식 웃었다. 도현은 한쪽 팔을 서랍에 쑥 집어넣고 안에 든 것을 꺼내고 있었다. 얇은 책 한 권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할 얇은 서랍인데 꽤나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도현은 팔로 낚아낸 전리품들을 방바닥에 늘어놨다. 차면 배꼽까지 내려올 길이에 커다란 메달이 달린 은색 목걸이, 커다란 은색 링 귀걸이, 검은 가죽 스트랩이 달린 금색의 롤렉스 시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정미의 눈이 도현이 늘어놓은 전리품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정미가 도현 쪽으로 다가와 방바닥에 쭈그려 앉더니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커다란 은색 메달을 빛이 들어오는 창 쪽으로 들어 올려 찬찬히 들여다봤다. 


“야 이건 값 좀 나갈 거 같지 않냐? 아무리 버린 물건이라지만…. 경비실에 말해야 하나?” 


롤렉스 시계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도현의 말을 무시한 채, 정미가 목걸이를 들고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현관문 앞 신발장에는 전신거울이 달려있었다. 정미는 목걸이를 목에 차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들여다봤다. 목이 늘어난 회색 티셔츠 위를 가로질러 배꼽 아래까지 내려온 은색의 커다란 태양. 그래, 그것은 마치 태양 같았다. 목걸이가 워낙 크기도 하고, 평소 액세서리를 일절 하지 않는 정미에게는 꽤 무거웠지만 정미는 제 목에 감긴 그 묵직함이 싫지 않았다. 정미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고 위로 부풀려봤다. 북, 부욱, 북, 부욱…. 작은 방에서 도현이 서랍 안의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틸다….” 


정미가 태양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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