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쓰는 소설
분명히 조금 커졌다.
최승수 팀장의 얼굴 말이다. 미세한 차이긴 하지만, 어제보다 조금 커졌다는 건 분명하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어제 팀 점심 회식 때, 팀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크기에 대해, 그 거대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어제 식당에서 최팀장은 내 맞은편에 앉아있었고, 팀장의 옆에는 박화정 대리가 앉아있었다. 나란히 앉은 최팀장과 박대리의 얼굴 크기 차이는 실로 대단했다. 최팀장이 남자이고 박대리가 여자인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는지 의아해하며, 나는 내가 목격하고 있는 광경에 깊이 빠져들었다. 저건 거의 참외와 수박의 크기 차이, 치와와와 하마의 얼굴 크기 차이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작가의 현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기이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탄두리 치킨 샐러드를 뒤적이며 최팀장과 박대리의 얼굴 크기, 그 차이, 나아가 사람의 얼굴은 어느 정도까지 클 수 있고 또 작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사내 게시판에 누가 글도 올렸던데요? 지난주 행사 너무 좋았고, 프로모션팀이 참 수고한 것 같다고. 하하하.”
팀장은 우리 팀이 지난주에 치른 행사에 대해 신나게 떠드는 중이었다. 거대한 얼굴 위에 놓인 그의 조그마한 입이 하, 하, 하 하고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부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게 과연 저 사람의 얼굴에 달린 입이 맞는 걸까 의심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얼굴과 입의 비율 때문인지, 시답잖은 일로 잔뜩 신이 나 웃는 것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오십 대 초중반의 최팀장의 얼굴에는 노화의 기미가 여기저기 묻어나 있었다. 한때는 꽤나 짙었을 것 같은 눈썹은 메뚜기 떼가 습격하고 지나간 밭처럼 여기저기가 휑했고, 끄트머리에는 마치 늙은 수도사의 눈썹처럼 한두 개의 털이 한계를 모르고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있었다. 축 처진 두 눈은 늘 흐릿한 안경알 뒤로 소심하게 숨어, 누군가를 똑바로 쳐다볼 줄을 모르고 여기저기를 엿봤다. 그 사이에 좁다란 콧날이 겨우 들어앉아 있었는데, 그 아래로 거대한 뱃살 같은 코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그 코 아래, 최팀장의 작은 입이, 거대한 얼굴과 코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먹고 말하는 제 기능만은 충실히, 그것도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카레를 바른 난을 씹는 동시에 지난주에 거두어들인 아주 작은 영광에 대해 떠들며.
‘아... 씨.’
최팀장의 입에서 카레인지 고기인지 모를 주황색 물체가 튀어 내 접시 끄트머리에 꽂혔다. 아마 음식에도 침이 몇 방울 튀었을 테지. 비위가 팍 상해버린 난 깊게 빠져있던 생각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그래, 그만 생각하자. 남의 머리 크기 따위. 머리가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떤가….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팀장은 필요 이상으로 신이 나있었다. 그 꼴이 참으로 보기가 싫었다.
팀장이 신이 나 떠들고 있는 행사는 타 기관에서 하는 행사에 우리 팀이 반일 간 작은 홍보 부스를 하나 차렸던 사업이다. 내가 맡고 있는 사업 중 그 규모나 중요성 면에서 ‘최하’ 정도 되는 수준의 단발적 이벤트성 일이다. 상사도 아니고 타 팀직원이 사내 게시판에 아주 사소한 긍정의 코멘트 하나 단 거를 가지고 저토록 신이 나하는 이유는, 그 정도가 저 인간이 업무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긍정적 피드백의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게시판의 그 글마저도 최팀장 저놈의 주작일 거다. 무능한 새끼. 일의 선후경중도 모르는 놈. 저딴 게 팀장이라고 앉아있다니.
최팀장은 5년 전 팀장을 달았다. 저토록 무능한 인간이 팀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그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최팀장이 승진할 당시, 누군가 이사진으로부터 들었다며 퍼뜨린 소문이 있었다. 성과 점수가 제일 낮은 최팀장이 이번에 승진한 이유는 그가 기혼 남성이고, 부양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소문은 사실이었을 거다. 회사 측에서 굳이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꼴통 조직이니까. 당시 40대 중후반 기혼 남성 중 팀장직을 아직 못단 사람은 최승수 저 인간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대리로 승진하는 데 성공했다. 나와 같이 대리로 승진한 여성은 몇 있었지만, 팀장 승진 명부에 적힌 사람은 전부 남자였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 회사가 생긴 지지난 20년 간 여자는 간부급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 직원 비율이 80프로 넘는 이 회사는 기이한 성비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이사진과 본부장, 팀장급은 싹 다 남자. 그들을 보좌하는 팀원들은 대부분 여자. 이건 무슨, 유리천장이 아니라 강철로 된 천장 아닌가.
소수이긴 하지만 최승수가 불쌍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무능력하다지만 남자가 쉰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까지 팀장직도 못 달고 다니면 스스로도 안팎으로 쪽팔려 기가 안 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그 여론의 주도자는 박대리였다. 승진 발표가 난 날 나와 맥주를 기울이던 박대리가 나에게 직접 한 말이었다. 저년은 열도 안 받나? 하긴, 박대리는 무능력하기로 따지자면 최승수와 도찐개찐이었다. 자기 연민 때문에 최승수에게 더 공감하는 건지…. 아니 근데 지는 여자잖아? 박대리는 심지어 최승수와 동기였다. 그 5년 전,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던 그때를 몸이 기억해 내는 건지 순간 몸이 뜨끈해진다.
“우리 이대리가 수고가 많았어요. 어떻게, 오늘의 주인공이신데 한 말씀해주시면 어떤지….”
“네?”
순간 나는 최팀장을 날카롭게 흘겼다. 뜨끈해진 몸에서 열이 올라와 얼굴까지 후끈해졌다. 참자. 최팀장한테 이러면 안 된다. 무능한 팀장 밑에서 일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성과 평가를 하는 사람 아닌가. 성과 평가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여자가 팀장으로 승진할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 회사에 돌고 있었다. 팀장을 달만한 남자들은 옛 저녁에 다 승진했고, 아직 간부가 되지 못한 남자들은 거의 다 이제 막 입사한 연차가 얼마 안 되는 어린애들 뿐이었다. 소문대로 여자가 팀장을 달게 된다면, 유력한 후보자는 나와 기획팀의 홍지혜 대리다. 연차로 따지면 홍대리가 1년 정도 더 찼고, 성과로 따지자면…. 내 생각엔 내가 월등하지만 윗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성과 평가라는 건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도 중요하지만 평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판 관리를 해야 한다. 내 성과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최팀장에게 나의 솔직한 마음을, 나는 너를 무시한다, 너 따위보다 내가 백배는 낫다는 표현을 욱해서 해버리면 안 된다.
“... 뭐, 다들 도와주셔가지고 수월하게 끝났죠. 그리고 뭐 제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게 다 잘 이끌어주신 최팀장님 덕분인데.”
속에서 매콤한 빈달루 카레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침을 삼켜 꾹 눌러 내렸다. 박대리가 ‘너 참 뻔뻔하다’고 말하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흘끗 쳐다봤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잘했어 이아성. 조금만 더 참고 잘하자. 최팀장이 흐뭇한 듯 나를 보며 허허, 웃었다. 정말이지 부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저 부자연스러운 얼굴과 거대한 머리를 가진 최팀장이야말로 내 승진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최팀장이 너무 무능력해서, 내가 일한 만큼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최팀장의 무능력함이 거미줄처럼 나를 잡아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번에 승진 못하면 최팀장 저걸…. 최팀장의 저 거대한 얼굴을 그냥 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