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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해 묻기로 했다.

[엄마에게는 물어볼 수 없어서 1.] 프롤로그

by 두지

엄마가 파킨슨병을 앓은 지 17년이 됐다. 엄마의 몸은 병의 진행과 함께 천천히, 하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게 쇠약해져 갔다. 아빠의 도움으로 버텨오던 엄마는 작년 어버이날 찾아온 뇌경색으로 와상 환자가 되었다. 뇌경색 이후로 폐렴, 요로감염 등의 합병증이 수시로 찾아왔고, 독감, 코로나19도 잊지 않고 찾아와 지난 1년간 응급실만 세 번, 중환자실만 두 번을 갔다.


엄마는 요새 잠만 잔다. 깨어 있을 때도 눈을 감은 채로 끙끙대기만 한다. “엄마, 어디 아파?”라고 물으면 이따금 “아파”라고 답해준다. “어디가 아파?”라고 하면 “사방데가 다 아파”라고 한다든가 “모르겠어”라고 한다. 가끔 긴 문장도 말한다. 영순이(가명, 넷째 이모)를 막 찾더니 “아버지 밥 차려야 돼”라고 한다든가, “오빠랑 다녀와”라고 하길래 “어딜?”이라고 물으면 “시장에.”라고 한다. 얼굴을 막 찡그리며 “가게 가스 불 꺼야 하는데,” “심란해 죽겠네”라며 이제는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한다. 밤에 갑자기 막 웃더니 “되게 웃긴다.”라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아마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시간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며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잘 모른다고. 엄마가 머릿속을 헤매다 이따금 내뱉는 시절의 절반 이상을, 나는 모른다. 나는 엄마의 30대부터 70대까지의 모습 중 아주 일부만 엿보았을 뿐이다. 그마저도 내가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십 대 때에는 너무 나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었고, 성인이 되고 첫 직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 아빠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버렸기 때문에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물론, 다 변명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건 이상하다. 물어볼 수 없게 되니 궁금해진다. 못 듣게 되니 듣고 싶다. 할 수 없게 되니 하고 싶다. 엄마와 마주 앉아 묻고 듣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아버지의 장사를 도우며 고생하던 20대 시절에 대해, 나와 오빠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에 대해, 나주 영산포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8남매가 한 집에서 복작복작 살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 성수동에서 가게를 하며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과의 일에 대해, 김명순(가명)이라는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인생에 대해.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가능해진 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걸. 하지만 우회로는 있다.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엄마와 한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모만 해도 다섯 명이나 있고 외삼촌도 두 명이나 있다. 아빠와 오빠가 가진 기억도 있을 테고, 여섯 명이나 되는 고모들과 수두룩한 사촌들이 가진 기억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고등학교 친구들, 장사를 하면서 사귀었던 동네 친구들도 있다. 그들에게 엄마는 누구였는지, 친구, 언니, 이웃으로서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취재하다 보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글이 누구를 위한 글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엄마를 취재하는 일이지만, 엄마는 읽을 수 없으니 엄마를 위한 글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엄마를 알고 싶다는 내 욕심으로 시작한 글이니, 아마도 나를 위한 글이 되겠지. 하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나와 함께 우리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글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 각자의 삶과 기억,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와 추억을 돌아보게 될 독자들을 위한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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