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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딸? 외할아버지는 미역을 내팽개치고 나가버렸다.

[엄마에게는 물어볼 수 없어서 2.] 다섯째, 여섯째 이모에게 물어보았다

by 두지

막내 이모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3년 전 이모의 환갑을 맞아 외갓집 식구들이 식당에 모였을 때다. 그 전은 4년 전 오빠의 결혼식에서였고, 또 그 전은 9년 전 광주에서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였다. 나는 친척들과 거의 교류가 없기 때문에, 더군다나 내 쪽에서 연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모에게 전화를 거는 건 조금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혹시 안 좋은 소식인 줄 알고 놀랄까 봐.


그리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왜 쑥스럽냐면…. 내가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나는 늘 쑥스럽다. 어렸을 때는 더 심했다. 심할 정도로 모든 걸 쑥스러워하고 낯을 가렸다. 말을 하도 안 해서 내 목소리를 까먹었다며 고모가 내 어깨를 쥐고 흔들며 아무 소리라도 제발 좀 내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잖아. 팔 남매니까 복작복작하잖아. 그래서 만날 시끄러운 거야. 그래서 나도 어렸을 때 식구들 보면서 아, 내가 글을 잘 썼으면 식구들 얘기로 소설을 쓸 텐데. 그런 생각한 적이 있어.”


나의 인터뷰 제안에 이모가 재밌어하며 말했다. 다행히 승낙이다. 이모는 평일 이른 오후에 오라고 했다. 이모는 현재 경기도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다섯째 이모가 격일에 한 번꼴로 와서 일을 도와준단다. 그리고 기억력은 다섯째 이모가 훨씬 좋아서 자기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이모네 가게는 차로 1시간 거리였다.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늦어서 아무것도 못 사고 헐레벌떡 갔다. 3년 만에 처음 만나는 건데, 참 경우도 없는 조카다.


“어디서부터 말해줄까. 내가 메모지에 쫙 적어오려고 그랬는데. 잊어버렸어.”

다섯째 이모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막내 이모는 갑자기 터진 일을 수습하느라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거부터 말해야지. 외할아버지가 ‘광산김씨 문정공파’. 광산김씨가 재작년까지 텔레비전에서 난리였잖아. 알아?”


다섯째 이모가 말했다. 첫마디부터 충격이다. 외할아버지가, 그러니까 엄마가 광산김씨인 게 충격인 게 아니고 내가 엄마의 성씨를 몰랐다는 게,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아빠가, 그래서 나와 오빠가 광주이씨라는 건 어렸을 때부터 주야장천 듣기도 하고,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마다 봐서 거의 뼈에 새겨져 있을 정도인데.


엄마는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영산동에서 김정명(가명)과 이순덕(가명)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김정명과 이순덕은 그 뒤로도 계속 자식을 낳아 무려 8남매를 길러냈다. 이모의 말에 따르면 광산 김씨는 대단한 양반 가문이었다. 그런 만큼(?) 문중에 가면 딸들은 완전 투명인간, 쓰레기 취급을 했다. 다섯째 이모와 이모의 바로 아래 동생인 첫째 외삼촌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문중에 가면 외삼촌만 예뻐하고 이모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그런데 그런 가문의 셋째 아들이던 외할아버지가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주르륵 딸만 낳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큰 딸 났을 땐 안방까지 들어왔대. 둘째, 그러니까 너네 엄마 낳았을 땐 대청마루까지 오고. 셋째는 마당까지 왔대.”

넷째도 딸이었다. 할아버지는 대문에서 들고 있던 미역을 내팽개쳐 버리고 나가버렸다. 다섯째는 지금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명옥이(가명) 이모다. 다섯째 이모가 세상에 나왔을 때 외할아버지는 서울에 있었다. 다섯째 이모가 세상에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측실을 얻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외할머니는 너무 속이 상해 동네 방죽에 빠져 죽으려고 했다.


“형제들 중에서 나랑 막내 외삼촌 둘이 몸이 좀 아팠어. 어렸을 때부터 위장이 아프다고 만날 골골거리고. 근데 나 스무 살 지나서 너희 할머니가 얘기를 해주는 거야. 그 첩 얻었다는 소문 듣고 굶어 죽으려고 사흘을 밥을 안 먹었대. 그러니까 나한테 젖도 안 먹인 거지. 그래서 내가 위장이 안 좋고 골골골 했던 거고.”


그리고 여섯째는 드디어(?) 아들이었다. 외할머니는 당시 동네에서 ‘한실댁’이라고 불렸는데, 이웃들이 “한실댁 아들 났다!”라고 소리치며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 친척 하나는 일을 보고 있다가 너무 놀라서 똥숫간에 빠졌다나. 근데 불과 몇 달 후, 그 소문으로만 듣던 서울의 측실도 아들을 낳았다.


“그때 외삼촌 안 낳았으면 할머니는 쫓겨났겠지.”

할아버지는 서울에 한옥을 사서 측실과 측실이 데리고 온 딸을 살게 했다. 그리고 측실과 낳은 아들은 영산포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처음 듣는 얘기다. 외할아버지에게 측실이 있었다는 것도, 나에게 내가 아는 두 명의 외삼촌 외에 또 한 명의 삼촌이 있다는 것도.


“어릴 때는 외할아버지가 걔만 예뻐했어. 너희 외삼촌이 말이 느렸거든. 지금은 사장하면서 똑똑하지만 7살까지도 어더더더 하면서 말을 잘 못했어. 근데 이 배다른 애는 똑똑한 거야. 그래서 얘만 예뻐해. 그래서 외삼촌은 그 멍울이 지금까지도 맺혀있어. 하여간 너희 외삼촌이 그 배다른 아들보다 몇 달 먼저 태어난 거지. 기적적으로.”


그때 외삼촌이 외삼촌이 아니라 또 다른 이모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는 정말 외할머니를 쫓아냈을까? 그러면 식구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나라는 존재는 정말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에, 너무도 쉽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할아버지는 40이 넘어서 철이 났는지 어쨌는지 본가로 마음을 싹 돌렸다. 어렸던 다섯째 이모도 자명하게 느낄 정도였다고. 외할머니와 엄마, 이모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그 측실과 측실의 자식들은 또 참….


“너희 외할머니가 순하잖아. 우리 식구들은 다 순해. 그래서 외할아버지 하고도 평생 부부싸움을 안 했어. 근데 영산포에서 딱 한번 싸운 일이 있었거든? 그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다섯째 이모가 말을 이었다. 외할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바느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기우(가명, 외할아버지가 측실과 낳은 아들) 엄씨가 어쩌고 저쩌고. 만날 기우 엄씨가 어쩌고 저쩌고.”

외할아버지가 측실인 기우 엄마가 어쨌다 저쨌다 하는 얘기를 하도 하니까 외할머니가 나름 비꼬는 거였다. 평생 ‘대드는 말’, ‘비꼬는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는 외할머니였다. 외할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방 한구석에는 늘 식은 숭늉이 놓여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숭늉을 외할머니 머리 위로 콸콸 부어버렸다.


“그랬더니 외할머니가 나 죽여! 나 죽여! 하고 난리가 나가지고.”

순하디 순하다지만 속 안에 숨겨진 성깔은 있으셨겠지. 외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칼을 가지러. 집에서 밥을 해주던 언니가 할머니를 말리며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고 울부짖었다. 유치원생이었던 막내이모는 너무 놀라 마당에서 넘어져 마구 울었다.


“외할머니가 너네 엄마하고 비슷해 성격이. 발산을 안 하잖아. 근데 느끼는 건 똑같지. 외할머니도 여잔데. 첩을 얻었다는데 당연히 똑같이 질투 나고. 발산만 안 했다 뿐이지. 언니(우리 엄마)도 그러잖아. 발산을 안 하잖아.”

“맞아. 그래서 병나고.”

내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병난 거야.”


꼭 아들을 낳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다면 할머니가 조금은 편했을까. 외할아버지를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다면. 아들을 낳겠다고 측실을 얻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도 속으로 분을 삼키고 가만히 앉아 바느질만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외할머니도 병이 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편히 사실 수도 있었을까.


“한 번은 영산포에서 막내삼촌이랑 내가 엄마(외할머니)한테. 엄마, 아버지한테 한 번 대들어봐, 그러니까. 엄마가 “내가 미국 여자냐?” 막 그래. 그리고 엄마는 평생 미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한 명도 미운 사람이 없냐고,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미운 사람 한 명만 생각해 보라고. 한 번만 생각해 보라고 막 졸라. 그러면 “안 돼. 미워하면 안 돼.” 그래도 막 조르니까, “둘째 큰엄마가….” 그래. 둘째 큰엄마가 시집살이 좀 시키고 얄미웠거든. 근데 그러다가 또 “안 돼. 그래도 미워하면 안 돼.” 이래.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병이 든거지. 속으로 막 참고.”


그만 좀 참지. ‘미국 여자’처럼 남편 귀싸대기도 때려버리고 악다구니도 지르고 상도 뒤집어엎어버리지. 발산 좀 하지. 그게 화건 울분이건 답답함이건. 외할머니도,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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