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짜장면 집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 분위기가 달랐다. 입구에서는 전광판이 화려하게 돌아갔다. 영상의 3분의 2쯤은 빨간 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바른 남자 가수가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다. 3분의 1에는 짜장면과 짬뽕 요리가 부글부글 끓으며 흥을 더해주고 있었다. 마치, 이 짜장면이 저를 계속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지원 해주고 있어요, 라는 듯.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찾아간 집은 가수가 운영하는 짜장면집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에 덩그러니 컨테이너 건물 한 채가 있는데, 꽤 붐볐다. 유명한 집인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서 먼저 선결제를 하고 먹어야 하는 곳이었는데, 카운터에는 영상에서 보았던 가수가 돈을 받고 있었다. 빨간 머리와 빨간 립스틱, 옷은 무대의상처럼 금박이 박힌 쟈켓에 바지는 갈기갈기 찢어진 검은색 레깅스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온몸으로 "나는 예술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음식은 싸고 맛있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4천 원이었고, 짬뽕은 6천 원이었다. 짬뽕이 왜 좀 더 비싼지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짬뽕이라기보다는 짬뽕산이라고 해야 맞을 양이었다. 여자들은 2명이서 먹어도 될 만 양이었다. 게다가 짜장면은 무한리필이었다. 대신 모든 것이 셀프였다. 반찬도, 물도, 그릇 치우는 것도. 인건비를 낮추고 음식의 가격을 낮춘 것 같았다.
배를 채우고 나서 식당 안을 둘러보니 식당 TV에서도 연신 가수가 노래하는 장면이 나왔다.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식당 한 켠에는 무대처럼 보이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이크와 기타와 악보들이 있었다. 가끔 이곳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가수가 궁금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싱어송 라이터였다. 집에 와서 그의 노래를 찾아보니 대부분 내가 모르는 노래들이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대중에게 회자되지 않은 노래였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와 함께 나오는 건 대부분 짜장면이나 짬뽕 사진이었으니까. 노래보다 식당이 더 잘 되기도 했을 테지만, 이미 공중파 방송에서도 가수보다는 맛집으로 소개되었다. 전체적으로 둘러본 느낌상 식당은 생계고, 음악은 하고 싶은 일로 보였다.
그를 보면서, 나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문학이다. 소설을 쓰고 싶고, 에세이도 쓴다. 가끔 신문사에 칼럼도 연재한다. 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소소하게 돈은 되지만, 생계까지는 무리다. 대중에게 회자되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기 작가가 아니다.
문학은 예술에 속한다. 나는 예술을 하고 싶고, 재능은 부족하다. 재능이 차고 넘친 후, 사회적 요구와 부합 한다면 돈이라는 재화를 창출할 텐데,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그걸로 먹고사는 걸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줄기차게 20년간 회사를 다녔고, 퇴사 후에도 줄기차게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는 중이다. 그의 짜장면집과 나의 사업이 겹치는 이유였다.
물론 그가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음악의 경우 레크리에이션과 행사 무대로 수입이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글은 다분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 나의 상황이 겹쳐 있을 뿐, 꼭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상상했다. 내가 나중에 언론에 나온다면 내 사진과 함께 내가 출간한 책이나 작품이 나오기보다는 팔고 있는 환풍기 댐퍼 사진이나 회사 로고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작가보다는 환풍기 댐퍼를 열심히 마케팅하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슬픈 상상일까?
아니.
그렇게라도 잘 되면 다행인 거다. 먹고살면서 문학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아이들 먹이고, 가르칠 수 있는 거니까. 문학 이전에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들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으니까. 그 책임을 다하고, 포도청인 목구멍의 욕구를 기본적으로 해결한 후에야 문학이란 걸 더 충실히 사랑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배고파야 예술을 한다고 하고, 배고픈 예술가를 지향할지 모르겠으나, 나란 인간은 배고프면 글이 안 써진다. 불안해서. 나에게는 재능이 부족한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른 생계를 열심히 파고 있으니까.
글을 쓰기 시작한 초반에 그 짜장면집을 만났더라면 조금 슬펐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만 가득했던 그때, 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했을 수도! 아니, 왜 다들 내 글을 못 알아보는 거지! 하면서.
이제는 쿨하게 인정한다. 재능은 부족하다고. 그리고 결심한다. 그럼에도 계속 쓴다고. 왜? 좋아하니까. 잘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고 결심한 일이니까. 때론 글이 잘 안 써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지만, 계속 쓴다.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온 몸으로 "나는 작가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