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6개월이 지났다. 퇴사라는 말이 아직도 내 입에서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직장인의 때를 벗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한다. 휴직이라는 완충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사 사람들은 가끔 나를 궁금해한다. 퇴사 후에도 잘 살고 있는지, 나의 발자취는 어떠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퇴사 후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치 현생에서 사후세계가 궁금하듯, 현재는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발 담그게 될 세상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장기하의 노랫말처럼 "별일 없이 산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뭔가 힘 빠지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노래 가사처럼 뭔가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내가 사업으로 승승장구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하면 흥미로웠을까? 퇴사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면 자신의 처지에 안심을 했을까?
퇴사 후에 뭔가 스펙터클한 변화가 내게 일어나진 않았다. 글로 벌어먹고살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책이 잘 팔리거나 내 글쓰기 강의가 빠른 시간에 마감이 되지도 않았다. 빵 터지길 기대하진 않았지만, 정말 예상대로 간신히 마감하고, 간신히 쓰고 있다.
글보다는 남편 사업을 돕는 것이 생활비를 버는데 더 유리했다. 잘하는 일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을 사이드잡으로 하는 건 퇴사 이전이나 이후나 비슷했다. 별 일 없이 밥 먹고,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최대한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고, 아이들 육아도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게으르고, 버럭 하고, 자책하며 산다. 단지 내가 낮에 머무는 공간과 시간이 달라졌을 뿐, 생활은 비슷했다. 그러니 "별일 없이 산다"라고 답할 수밖에.
예전 직장 동료가 물었다.
"퇴사하니 좋아요?"
"네."
"미련 안 남아요?"
"네. 전혀요."
"그렇게 회사가 싫었어요?"
"아니요."
싫다기보다는 떠나야 할 타이밍이라는 감이 왔을 뿐이다. 내가 회사에서 더는 할 수 있는 일도, 성장도 없다고 느꼈다. 월급 받는 소모품이라는 느낌만 남았을 뿐,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일이냐를 떠나, 쉬운 일, 업무 강도가 낮은 일만 찾는 나를 보는 것도 지겨웠다.
이런 나를 보고 선배는 "너 아직 순수하구나"라고 했다. 워킹맘이 그런 자리 찾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내 안에는 당연한듯 그런 자리를 찾았으면서, 당연하지 않은 듯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에 대해선 순수했다는 거 인정. 그러니 그 월급 받으면서도 밤낮없이 일했겠지. 이제와 깨닫는 건 나는 재미로 일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나를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고, 알면서도 당해준 적도 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난 좀 바보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건 잘 안 보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에 약한 편이다.
이 약한 계산법 때문에 퇴사 후 가장 손해를 많이 본다고 생각 드는 건 집안일이다.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집안일은 빠르게 내 차지가 되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너 아니면 누가 하겠냐는 듯이. 마치 돌아온 머슴처럼 집안일이 나를 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일은 순수함으로 채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하기 싫은데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해야 하는 그 루틴이 잘 맞지 않았다. 회사처럼 그만둘 수도 없다는 아이러니함. 그 부분에서 여전히 남편과 조율 중이고,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조금 큰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다. 퇴사 후 일상생활 적응 중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퇴사 직후, 워킹맘들을 위한 퇴사 강의를 두 번했다. 그리고, 그 강의는 다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퇴사 직후, 막 에너지가 올라올 때, 내가 퇴사가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퇴사의 선택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적어도 3년은 지나 봐야 아는 것 같다. 1년 만에 다시 재취업하는 사람도 보았고, 퇴직금을 탈탈 털어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했다가 망하는 사람도 있으니, 적어도 내가 회사 밖에서 잘 생활할 수 있는지는 3년이라는 시간을 묵혀봐야 알지 않을까.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사업 열심히 해서 생활비도 벌고, 이전처럼 글도 써서 책도 내고, 소설 공모전 응모도 할 거다. 그 시간들이 쌓여서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가늠하지 않기로 했다. 살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 아니더라. 다만 노력만 할 뿐이다. 그러니 즐거운 과정을 계속 찾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할 거다.
3년 후, 그때는 퇴사에 대한 에너지가 지금처럼 남아있진 않겠지만, 적어도 브런치에 남기는 한 조각, 한 자락의 글을 통해, '아, 내가 그때 그랬었구나.'라고 회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 어렸을 때 회사와 육아를 종종거리며 채운 기록들이 돌아보니 '그땐 그랬네.'하고 회상하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독자보다는 나를 위한 글이다. 일기를 공개적인 SNS에 쓰는 뻔뻔함이라니. 부끄럽지만, 혼자 쓰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이렇게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