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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롱썸 Jan 20. 2017

베트남 음식 어디까지 알고 있니? 껌장

볶음밥 마니아의 하노이 단골집

볶음밥에 꽂혀있던 때가 있었다.

 

한동안 기회만 있으면 밥을 볶아댔다. 친구를 불러서도, 밤늦게 출출할 때에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도 볶음밥을 했다. 볶음밥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볶음밥을 만들고 싶어서. 


처음에는 집에 있는 재료를 적당히 조합하여 볶음밥을 하였다. 밥통에 있는 밥과 찬장에 쌓인 통조림 참치나 스팸, 요즘 한국에서 그렇게 비싸다는 계란을 넣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김치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내가 꿈꾸는 볶음밥은 알알이 흩날리는 포슬포슬한 태국식 볶음밥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찰진 엄마 밥은 아무리 기름을 부어도 포슬포슬해지지 않았고, 햇반도 마찬가지로 흩날리기에는 너무 쫀득했다. 결국 내가 밥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몇 번 밥을 짓다가 제대로 날리는 밥을 짓기 위해 태국에서 안남미를 주문하였다. 그 때 그 때 해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1-2인용 밥통도 샀다.

한 포대 주문한 태국 쌀을 해치우기 위해 더 열심히 밥을 볶았다. 아직까지 서늘한 베란다 한 구석에 남아있긴 하지만, 이젠 제법 알알이 살아있는 만족스러운 볶음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슬그머니 마음 한편에 다음 목표가 생겨났다.


궁극의 김치볶음밥.


정말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문에서 열 걸음 정도 걸어 나오면 허름한 분식점이 하나 있었는데, 된장찌개, 김치찌개 , 비빔밥, 볶음밥 같은 것들을 팔았다. 여름방학 자습실에서 졸다 공부하다 밥때가 되면 친구들과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집에 가서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곤 했다. 보통은 찌개류를 시켜먹고 아주 가끔 김치볶음밥을 시켜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졸업하고 나서는 김치볶음밥만 종종 생각났다.

그 집 김치볶음밥은 짜고, 맵고 강렬했다. 어찌나 짠지 김치볶음밥을 먹고 들어온 날 자습시간에는 왔다 갔다 하며 정수기에서 몇 잔이고 물을 마셔야 했다. '볶음'밥이라고 하기 애매할 만큼 질퍽하고 보나 마나 msg도 꽤나 넣었을법한 볶음밥이 이상하게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

학교 앞 분식집 볶음밥만큼이나 맛있는 김치볶음밥은 감자탕을 다 먹고 나서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돈암동 태조 감자탕 볶음밥이다. 불에 졸아 자작해진 육수에 밥을 넣고 김치, 참기름, 김가루 같은 것을 더해 바닥에 누를 때까지 기다렸다 먹어야 제맛이다. 이 볶음밥만 없었어도 과식하지 않고 나올 수 있을텐데, 매번 이 볶음밥 때문에 감자탕집만 가면 양 조절에 실패한다.

김치볶음밥은 볶음밥이지만 '볶은' 밥 같지 않다. 전혀 훌훌 날리지 않는다. 오히려 김칫국물이나 육수에 어느 정도 질척해져 있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볶음밥의 생명이 후-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흩날리는 쌀인 것을 고려하면 김치볶음밥은 완전히 다른 음식인 것이다.

궁극의 김치볶음밥에 대한 도전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주 맛있는 김치를 먹으면, 혹은 아주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먹으면 다시 볶음밥에 대한 열정이 살아날지도 모르겠지만, 하노이에서는 굳이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쌀국수 먹기 바쁘다.

어찌 되었든. 볶음밥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메뉴다. 하노이에서는 지금껏 몇 번 해 먹지는 않았지만, 국수를 먹고 싶지 않은 날에는 집 근처나 아래서 이야기할 단골집에서 볶음밥을 자주 사 먹곤 했다. 


베트남 볶음밥


볶음밥은 베트남어로 껌 치엔(Cơm chiên) 혹은 껌장(cơm rang)으로, 하노이에서는 주로 껌장(cơm rang)이라고 한다.  베트남 볶음밥이라고 달리 특별한 것은 없다. 꽌안응온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부터 집 앞 밥집까지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메뉴다. 가격과 맛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나라 볶음밥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훌훌 날아가는 쌀을 사용한다는 것. 우리나라 볶음밥은 보통 그냥 우리 쌀로 하니까 많이 다를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우리가 먹는 쫀득한 쌀로 찹쌀밥인 쏘이(Xôi)를 해 먹긴 하지만, 이 밥을 볶음밥 할 때 사용하지는 않는다.



나의 단골집


베트남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볶음밥을 묻는다면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이 곳을 이야기할 것이다. 목욕탕 의자에 앉아 밖에서 먹는 곳이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외국인이 식사하는 걸 본 적 없을 만큼 로컬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했으나 영어 메뉴판이 있는 걸로 보아 아닌 것 같기도(!) 


외국인에게만 가져다 주는 메뉴판


Cơm Gà Quay

추천 메뉴 : Cơ m Rang Gà Quay (닭고기와 볶음밥)

주소 : 29 Bà Triệu. Địa chỉ. 29 Bà Triệu, Quận Hoàn Kiếm, Hà Nội.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 

1. 풍부한 단백질


볶음밥에서 항상 아쉬운 것은 단백질이다. 탄수화물 그 자체인 볶음밥은 기본적으로 균형 있는 영양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 곳의 볶음밥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닭다리와 같이 나온다.(아 물론 닭다리 볶음밥을 시켰을 때에 한해서. 돼지고기 볶음밥은 돼지고기가 나온다..) 그러니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메뉴인 닭다리+볶음밥을 시키면 영양 불균형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물론 영양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맛도 좋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다. 치킨은 항상 옳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이 곳 닭고기는 인정. 테이블마다 놓인 가위로 닭다리를 해체하여 밥과 섞어먹으면 더욱 맛있다.


2. 훌륭한 소스


베트남은 소스가 매우 발달한 나라다. 거의 모든 음식이 소스와 함께 나오는 것 같다. 하다 못해 간장, 식초, 소금, 라임이라도 같이 나온다. 그래서 음식을 여러 가지 시키면 테이블 위의 소스가 뒤죽박죽되어 어느 음식을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럴 땐 그냥 내 입에 맛있는 조합을 찾으면 된다. 


볶음밥은 주로 간장과 함께 나오는 편인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볶음밥과 곁들일 소스로 토마토소스를 준다. 대체 토마토 외에 무엇을 넣었길래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새콤달콤하고 입에 착 감기는 맛이 볶음밥과 아주 잘 어울린다. 볶음밥 자체의 간이 그리 세지 않아 소스와 잘 어울린다.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면 되니 소스를 충분히 뿌려먹자.


볶음밥 집을 추천하는 이유로 볶음밥과 함께 나오는 고기와 소스를 이유로 드는 게 다소 우습긴 하지만, 일단 먹어보면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양도 엄청 많아 세 명이 가면 두 개 시켜 먹으면 딱이다. (아주 잘 먹는 청년 셋 제외)



베트남 음식점 여기저기서 볶음밥이라는 메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렝, 우리나라의 김치볶음밥만큼 '베트남스러운' 볶음밥은 딱히 없다. 굳이 찾자면 '베트남스러움'은 주로 볶음밥 그 자체보다는, 빨간 베트남 고추가 송송 썰려있는 감칠맛 좋은 간장이라던가, 강한 화력에 빠르게 볶아낸 소고기+배추 반찬 같은 볶음밥과 함께 나오는 소스나 반찬 같은 것에서 나오곤 했다.


그러나 먹는 환경만큼은 매우 베트남스러울 테니 그건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 친구끼리는 가도 부모님 모시고 갈 곳은 아닌듯 하다. 누군가를 모시고 가는 거라면 그 근처 채식 레스토랑 Ưu Đàm Chay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 볶음밥은 위의 집에 비하면 확실히 맛과 양에서 밀리지만 식사 장소의 깔끔함과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괜찮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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