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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 겨울 Apr 19. 2019

추억은 현재 진행형

추억의 맛, 분홍 소시지부침

 어릴 때 분홍 소시지부침을 싫어했던 사람이 있을까? 분홍 소시지는 햄이나 수제 소시지처럼 맛과 향이 강하진 않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향이 있다. 기름에 지글지글 구울 때 나는 그 냄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던 분홍 소시지 굽는 냄새가 아직도 떠오른다. 어머니가 분홍 소시지를 구우시는 날이면, 나는 손씻는 것도 잊은 채 책가방을 던져놓고 주방으로 달려가서 갓 구운 분홍 소시지를 계속 집어 먹었다. 잘 먹는 나를 본 어머니는 맘씨 좋게 웃으며 굽는 속도를 올리셨다.

 기다란 분홍 소시지와 함께 야채 소시지도 있었는데, 그 소시지는 색깔이 옅고, 단면이 타원형(혹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에 가까웠으며, 완두 같은 것이 콕콕 박혀 있었다. 약간 고급화된 소시지랄까. 그래서인지 양은 분홍 소시지에 비해 확연히 적은데 가격은 비슷하거나 더 비쌌던 것 같다. 무언가 업그레이드 버전 같고, 특별한 것 같아서 어렸을 때는 야채 소시지를 더 반겼는데, 요즘은 분홍 소시지가 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분홍 소시지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금 주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 것이다. 한창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70년대식 교복과 손으로 들고 다니는 책가방, 철제 도시락에 싸서 가지고 다녔던 김치볶음, 분홍 소시지 같은 것을 전략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많이 생겨났다. 나는 철제 도시락에 김치볶음과 분홍 소시지를 싸 가서 난로에 데워 먹던 세대는 아니지만 유행하니 덩달아 즐겨 먹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기다란 분홍 소시지가 보였다. 옛날 생각이 났던 나는 냉큼 장바구니에 분홍 소시지를 집어넣었다. 집으로 돌아와 겉포장을 잘라서 얇은 비닐에 싸인 분홍 소시지를 꺼냈다. 도마에 올려두고 가운데를 한 번 잘랐다. 그런 다음 얇은 비닐을 조심스레 벗겼다. 남은 소시지는 다시 겉포장에 넣은 뒤 클립으로 봉해 냉장고에 넣었다. 속 비닐을 벗긴 분홍 소시지는 제법 두툼하게 썰어 달걀물에 쏟아넣었다. 달걀물은 냉장고에 있던 부추를 썰어서 넣고, 소금과 약간의 맛술로 간한 것이다.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걀물을 입힌 분홍 소시지를 구웠다. 분홍 소시지는 너무 오래 익힐 필요는 없다. 달걀은 낮은 온도에서도 익기 때문에 너무 세지 않은 불에서 달걀이 노랗게 익을 정도로만 구운 뒤 뒤집었다. 그런 다음 구멍이 송송 뚫린 그릇에 옮겨 담았다. 분홍 소시지를 구우면서 1/3 정도는 내가 다 집어 먹은 것 같다. 막 구웠을 때가 제일 맛있다.


송화버섯 구이

 마트에서 처음으로 송화버섯을 구입해봤다. 송이버섯과 표고버섯의 특·장점을 합한 품종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 몇 개를 골라 담았다. 송화버섯은 갓은 물론이고 기둥까지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버섯이라고 했다. 기둥을 만져보니 정말 부드러웠다.

 송화버섯을 슬라이스해 팬에 기름과 참기름을 약간 두르고 구웠다. 들기름을 좋아하면 들기름을 넣어도 된다. 소금을 손가락으로 잘게 부순 뒤 솔솔 뿌려서 마무리했다. 송화버섯은 수분이 적어서 바로 구워도 질척이지 않아서 좋고, 생버섯 상태로 장기 보관하기도 좋다. 살짝 구워서 간한 송화버섯은 쫄깃쫄깃한 식감과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초여름이면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주셨던 감자조림도 만들었다. 감자도 양파도 제철인 초여름엔 싱싱한 감자와 양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좋다. 싱싱한 햇감자는 필러로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얇은 숟가락으로 슥슥 긁기만 해도 껍질이 일어난다. 그렇게 하면 버려지는 게 적다. 햇감자의 경우엔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어도 나쁘지 않다. 껍질이 매우 얇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작게 깍둑썰기 한 다음, 물에 한 번 헹궈서 전분기를 제거했다. 전분기를 제거하지 않고 만들어도 괜찮은데, 나는 한 번 씻어서 하는 것이 눋지 않고, 깔끔한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양파도 감자 크기에 맞춰서 썰었다. 양파가 클 경우에는 가장 바깥쪽 비늘줄기 크기에 맞춰서 자르면 안쪽 비늘줄기가 너무 잘아진다. 그래서 바깥쪽 비늘줄기를 한두 겹 정도 적당히 벗기고 자르는 게 좋다.

 널찍한 웍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서 살짝 익힌 다음, 마늘 향이 맛있게 밴 기름에 손질해둔 감자를 넣고 볶았다. 감자가 반절 정도 익으면 양조간장을 조금 넣어 향과 색을 돋운다. 감자조림은 살짝 달착지근해야 맛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의 올리고당과 자일로스 설탕으로 단맛을 더했다. 올리고당은 단맛을 내기도 하지만 윤기를 내기 위해서 넣은 것이다.

 감자가 거의 다 조려지면 양파를 넣고 볶는다. 양파를 너무 일찍 넣으면 아삭한 식감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넣고, 후춧가루, 볶은 흑임자와 참깨를 섞어 마무리했다.


 무생채는 남편이 잘 먹는 반찬이다. 가늘게 채 썬 무에 약간의 설탕을 뿌려 절인 다음 물기를 짰다. 그런 다음 고춧가루로 붉은 물을 들이고 다진 마늘과 까나리액젓, 약간의 간 새우젓에 참기름과 부순 참깨를 넣어서 무쳤다. 여기에 식초 한 방울 정도 넣으면 살짝 새콤한 맛이 가미되어 좋다. 남편은 신 음식을 싫어하기에 진짜 한 방울만 톡 넣어야 한다. 이렇게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무생채는 조금씩만 무쳐서 가급적 그날 다 먹어야한다. 냉장고에 하루 이틀만 넣어두어도 맛이 확 떨어진다.


 타임 세일 때 사서 냉동해둔 어묵으로 어묵국도 끓였다. 어묵은 자연 해동하고, 숟가락으로 떠먹기 수월하도록 작게 자른다. 그런 다음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불순물과 나쁜 기름을 뺐다. 그런 다음 맛국물이 끓을 때 데친 어묵을 넣어 마저 끓였다. 무를 넉넉히 넣어야 어묵국이 시원하다. 간은 냉장고에 있던 스키야키 소스로 했는데, 없다면 조선간장과 맛술로 하면 된다. 마지막에 후춧가루도 톡톡 뿌렸다.


 분홍 소시지부침을 딸이 정말 격하게 좋아해주었다. 딸은 나와는 달리 요즘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접해봤는데도 이 분홍 소시지부침에 홀딱 반한 모양이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분홍 소시지의 저력이 참 대단한 것 같다.



<오늘의 식단>

- 1인 솥에 끓인 어묵국과 기장밥

- 추억의 분홍 소시지 부침

- 식감이 좋은 송화버섯 구이

- 달콤 짭짤한 감자조림

- 새콤 달콤 매콤한 무생채와 배추 겉절이

- 참외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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