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수제비를 잘 먹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첫 아이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 결혼하자마자 곧 임신을 하기도 했고, 아이가 너무 커서 몇 주 일찍 낳았기에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결혼 생활 1년 동안 나는 야근을 하느라 남편에게 집밥을 해준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식성을 잘 몰랐다.
아이를 낳고 얼마간 친정어머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다. 그때만 해도 남편과 친정어머니는 어색함을 넘어서 불편한 관계였는데, 친정어머니는 모든 일 중에서 사위의 밥을 해주는 일이 가장 난감하다고 하셨다. 남편이 워낙 식탐이 없고, 입이 짧은 탓에 어떤 음식을 해줘도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당신의 음식 솜씨가 부족해서는 아닌지, 어떻게 해줘야 맛있게 먹을지 고민하셨다. 그런데 당시엔 나도 남편 입맛에 맞게 음식을 할 줄 몰랐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몰랐기에 난감하고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가 수제비를 끓여서 퇴근한 남편에게 주셨는데, 남편이 말도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이 두 번째 수제비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남편이 작은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내게 살금살금 다가오셔서는 사위가 웬일로 저녁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며 크게 기뻐하셨다. 그날 어머니의 기뻐하시던 얼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도 눈에 선하다. 벌써 그 젖먹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냄비에 멸치 듬뿍, 껍질 깐 양파 반 개와 대파 한 대, 다시마를 넣고 맛국물을 만들었다. 오늘처럼 폭우가 지속적으로 내려서 바닥이 쩍쩍 달라붙고, 공기에 물기가 가득한 날에는 멸치 맛국물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벌써 수제비 한 그릇을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습한 공기에 배어 있는 멸치 맛국물 냄새란, 이런 진부한 표현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정말 예술이다.
멸치 맛국물은 까나리액젓으로 간했다. 조선간장이 있으면 조선간장으로 간해도 좋다. 멸치 맛국물이 완성되면 반죽에 넣을 분량을 덜어내서 한 김 식힌다. 밀가루와 맛국물의 비율은 4 : 1로 잡았는데, 반죽할 때 손에 묻어나지 않아서 좋고 적당히 촉촉해서 좋다. 맛국물에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기에 고운 소금을 약간만 집어서 맛국물에 녹인 뒤 밀가루와 섞어주면 간이 잘 맞고 맛있다.
반죽은 오래 치댈수록 쫄깃하기에 널찍한 볼에 넣고 열심히 치댔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무념무상으로 치대다보면 어느샌가 반죽에 점성이 생겨 길게 늘어지는 모양새가 된다. 반죽을 널찍하게 자른 랩에 싸서 작은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30분 정도 둔다. 그렇게 하면 반죽이 뚝뚝 끊어지지 않고 더 쫄깃쫄깃하다.
반죽을 숙성시키는 동안 부재료를 준비했다. 감자 두 개를 땀박땀박 썰고, 애호박도 땀박땀박 썰었다. 양파는 크기가 작은 편이어서 하나 다 썰고, 대파의 흰 부분도 가늘게 썰었다.
숙성된 반죽을 조금 떼어내 도마 위에 두고 홍두깨로 살살 밀어서 납작하게 폈다. 그런 다음 볼의 가장자리 같은 곳에 척 걸쳐두었다. 접시에 두면 들러붙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맛국물을 다시 끓여 수제비 반죽이 서너 덩어리 정도 펴지면 끓고 있는 맛국물에 뚝뚝 뜯어서 넣는다. 냄비 윗면에 반죽이 가득 찰 정도가 되면 더 이상 넣지 말고, 반죽을 살짝만 익혀서 체로 건진다. 데친 수제비 반죽을 따로 헹구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다시 반죽을 뜯어 넣고 건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맛국물에 맨 처음 넣은 수제비 반죽과 맨 나중에 넣은 수제비 반죽의 익는 속도가 달라서다. 나는 반죽을 아주 얇게 하는 편이라 자칫 오래 익히면 흐늘거릴 수도 있다. 그래서 80~90% 정도만 익혀서 다른 그릇에 건져두었다가 마지막에 한꺼번에 넣고 완전히 익힌다.
반죽을 다 익혀서 건졌다면 맛국물에 감자를 넣고 한소끔 끓이고, 건져놓은 반죽과 애호박을 넣고 완전히 익힌다. 불에서 내리기 직전 양파와 대파를 넣고 한 번 섞었다. 고명으로 김가루를 얹거나 절구에 간 볶은 통깨를 뿌리고, 참기름을 몇 방울 뿌려도 좋다.
곁들이로 뭘 낼까 생각하다 뜨거운 수제비 국물에 어울리는 시원한 ‘돌나물 사과 물김치’를 냈다. 돌나물 사과 물김치는 어느 식당에서 처음 맛보고는 특유의 식감이 너무 좋아서 만들어본 것이다. 식당에서 먹었던 돌나물 물김치는 신맛이 적당해서 좋았는데 내가 만든 것은 덜 시큼했다. 신맛이 잘못 들면 부담스럽고 불쾌하기까지 한데, 적당한 신맛은 정말 맛있는 것 같다. 몇 차례 더 연구해서 나만의 조리법을 정착시켜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수제비를 만들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도와준 덕에 식구들 모두 국물까지 싹 비웠다. 남편은 그날처럼 두 그릇을 먹었다. 제법 맛있게 먹은 듯한데, 얼굴에 별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나저나 남편은 알고 있을까. 그 시큰둥한 얼굴 때문에 장모님이 애를 태우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