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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Sep 20. 2022

<사람들이 모인 곳엔 힘이 있다.>

'사람이 문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푸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어제만 해도 계절이 거꾸로 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 아침은 어찌 된 일인지 살랑~살랑~(이 물결 표시처럼 말이야^^) 시원한 바람이 분다. 집 앞 은행나무 가지와 느티 나뭇잎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고, 거실 안까지 흘러들어와 뺨에 닿은 바람에는 가을이 느껴진다. 이제 곧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오겠다. 벌써 설렌다. 

 그렇게 아침부터 설렘에 젖어 있던 내게 톡, 톡, 톡 도착한 너의 안부.


  "엄마 학식 너무 맛없어. 짜증 나... 어휴~"


 아이고, 저런... 이를 어쩐다니. 

 학기 중 잠깐 집에 올라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갈 때 네가 가방에 챙겨 넣던 라면 세 봉과 통조림 햄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먹깨비 안쓰러워라.

 


 

 "밥 먹었어? 밥은 잘 나오고?"


 그랬다. 네가 기숙사에 입소했던 그날 이후 너에 대한 모든 걱정은 저 말 한마디로 대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픈 곳은 없는지, 춥지 않은지, 덥지 않은지, 잘 씻고 자는지(? ^^),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지, 선후배 사이는 괜찮은지...... 그 모든 걱정을 저 물음 하나로 대신했었단다.

 나의 물음이 늘 밥은 먹었냐는 말이어서 그랬는지 너는 네가 먹은 끼니마다 메뉴를 일일이 나열하며 밥이 정말 너무 맛있게 잘 나와서 집에 있을 때보다 살이 5kg나 쪘다고 했었지. 나는 안심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조잘조잘 얘기하는 너의 목소리에서 힘듦이나 어려움, 곤란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네가 오늘 아침에 나온 학식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서 급식 업체가 바뀌고 난 뒤부터는 학식의 퀄리티도 떨어지고 맛도 변했으며 개인당 배식되는 반찬의 양도 줄어들었다고 했지(원칙은 떡갈비가 1인당 5개씩은 배식되어야 하는데 3 개씩만 배식받으라고 했다며). 그래! 먹는 걸로 그러는 건 아니지! 치사하고 너무 했네!!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니고 내고 먹는 건데, 엄마가 속상하다 정말. ^^

 급기야 너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학식 개선을 위해 학우들의 의견을 모으고 매일 배식되는 학식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들어 학생회에 건의를 해보려고 하는데 좋은 방법인지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내게 조언을 구했다. 


 10달을 내 몸에서 품고 낳았는지만 너는 정말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매사 남 앞에 서는 것을 힘들어하고, 나의 생각을 겉으로 얘기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하는 엄마 성격과 달리 무언가 옳지 않고 부당하다 생각하면 당당하게 앞장서서 맞서는 너는 정말... 내 자식이지만, 정말 용감하고 멋진 아이구나! 엄마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아들을 낳았을까! 내가 이렇게 멋진 아이의 엄마니!" 생각에 가슴이 몰캉몰캉해지곤 한단다.  



 

 엄마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마을 한가운데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어. 공터가 마을 한가운데 있다 보니 한 여름 오후엔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어느 날은 낮에 들일을 끝낸 아저씨들의 작은 선술집이, 명절을 앞둔 어느 날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다과 방이 되기도 했어. 그렇지만 거의 모든 날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단다.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 다였지만, 어디서든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술래잡기 등등 어떤 놀이든 할 수 있었다. 장난감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나이가 든 지금도 내 앞에 있던 친구의 눈꼬리와 웃음소리가 기억날 정도니까. 


  "엄마 없는 아이랑은 놀지 마!"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 집이라고 할 것 없이 굴뚝에서는 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수한 된장국 냄새, 비릿한 고등어자반 구이 냄새, 갖가지 양념 냄새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해. 그 냄새를 맡으면 우린 곧 하던 놀이를 마무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곧 해가 질 거니까. 그렇게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위로 어스룩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엄마들은 아이를 찾으러 공터로 나와 놀이 중인 아이의 손을 잡는다. "밥 먹어야지"하며...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아이들이 일어나 등을 돌리면 아이의 엄마들은 어린 나를 보며 아이들에게 "엄마 없는 아이랑은 놀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며 갔었단다. 분명 자신의 아이에게 한 말이었지만,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엄마는 아무런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지...마지막까지 공터에 남은 외삼촌과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며 분한 마음에 "마지막 말은 하지 말지, 나쁜 아줌마!"라고 속으로 엄청나게 욕(?)을 하며 가곤 했었단다. 

 

 당시 동네에서 유일하게 한부모가정인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의 뒷담 화하기 딱 좋은 대상이었단다. 그들은 마치 우리 가정이 자신들의 가정에 불운을 전염시키기라도 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었지. 외할아버지는 법 없이 살 사람이고, 외삼촌은 모범생에 예의 발랐고, 엄만 똑똑하진 않아도 순하디 순하기만 했었는데도 말이야. 


 그래서였을까? 외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었어. 동네 함께 살던 큰 댁을 왕래하는 것 말고는 다른 집을 방문을 하거나, 동네 행사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라도 하면 그 장소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때론 외할아버지의 과도한 간섭과 단속이 속상하면서도 당신이라는 가림막 없이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가 걱정이 되어 그랬던 거라는 걸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  사람들이 모인 곳엔 늘 말이 많고 그 많은 말들 중엔 진실이 아닌 것도 있으니까... 그렇게 자라서인지 여전히 지금도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엄마 완전 집순이잖아! ^^ 



 

 "사람이 모인 곳엔 힘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집순이 놀이를 너무 오래 해서 그런지... 자꾸 사람들이 모인 곳에 슬~쩍 한 발을 넣어 보고 싶더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힘은 약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엄청난 힘이 되어 불의에 맞서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기적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기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보거라,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너와 맞는 사람을 찾고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에게 힘이 더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기를 응원한다. 

 때론 너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던져질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 절망하지 말고 그래도 한 번은 잘 어울려보기 위해 노력하고 한 번은 배려하는 그런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데도 기술과 노력과 배움이 필요하니까. 그래도 영~~~ 아니면 어떡하냐고? 그럼 얼른 탈출(?) 해야지^^ 

언제나 네 편 엄마가 있잖아! 모쪼록 너의 학식 개선안 통과를 응원하며!! 멋진 내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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