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부제 : 혼돈)
목요일 연재를 기다리셨을분들께 죄송합니다.
제가 목요일 일요일 연재로 변경을 해두고 목요일에 올린 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날짜에는 늦지 않도록 관리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안온한 휴일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늘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름 구도심. 길 도(道) 자에 찾을 심(尋)을 쓰는 길을 찾아가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나이는 29살이고 이름은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거리가 됐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사회에 나와서도 내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예 구(舊) 자를 써서 옛날 도시 중심에 살았냐며 한 번씩 피식 웃곤 했었다. 처음에는 이름이 부끄러웠지만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으니 식상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똑같은 말을 들어도 타격은커녕 어떠한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연애를 해봤으면 좋았으련만 남중을 거쳐 남고를 졸업했다는 핑계로 연애를 못 하다가 20살이 되어서야 겨우 첫 연애를 해봤다. 나이 스무 살에 4살이 어린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라는 자각도 하기가 어려웠을 만큼 첫 연애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지나갔다. 첫 연애의 이별 원인은 당시 여자 친구가 같은 학교 남학생과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헤어지게 됐었다.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어떤 마음에선지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으나 여자 친구가 오히려 단호했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한창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났고 나는 남겨져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한참을 방황하셨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에게 신경을 최대한 써주시려는 노력은 하셨던 것 같은데 학교 졸업식을 할 때면 엄마와 함께 웃으며 사진 찍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나는 꼭 커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절대 이혼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했었다. 20살에 첫 연애를 겪은 후 군대에 다녀왔다. 22살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번째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으며 얼굴이 작고 동그란데 눈이 얼굴의 반이 되는 것처럼 매우 컸다. 키는 나와 머리 하나가 차이 날 만큼 아담했으며 작고 똘망똘망한 눈빛이 꼭 햄스터를 닮아 있었다. 두 번째 여자 친구와는 거의 2년을 만났고 거의 매일 붙어 다녔다. 당시에도 항상 여자 친구가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오빠는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학습한 인공지능 로봇 같아 배운 대로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건 뭐고 준다는 건 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저 같이 있으면 기분 좋고 편안하고 그런 게 사랑 아닌가 했다. 물론 ‘사랑한다’라는 표현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워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어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부끄럽기도 했고 무책임하게 남발하면 진정성이 떨어져 보일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중에 진짜 사랑하게 될 사람에게 마음껏 해주려 아껴놓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연애를 이미 하고 있음에도 다음의 사랑을 위해 아껴둔다는 말조차 모순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내 마음속에만 있는 이야기를 겉으로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로봇 같다고 항상 말하던 여자 친구는 마지막 순간에 말하길 함께 하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변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도 변한 건 없었고 연애를 했음에도 외로웠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더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여자 친구도 떠나보내고 세 번째 여자 친구를 만났다. 첫 만남은 역시 봉수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자연스러운 헌팅으로 만났다. 전에 만났던 여자들보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크고 호탕한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밀어붙이는 힘도 강력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1년 정도 되었을 무렵 결혼 이야기가 오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결혼식장에 서있었다.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낭만적인 결혼 스토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신랑 입장!’ 소리에 맞추어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결혼생활은 6개월여 만에 파경을 맞았다. 학창 시절 다짐했던 것처럼 무슨 수를 써 서든 나의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아이도 낳아서 내가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무한하게 주고 싶었었다. 그러나 아내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당시 중견 기업의 생산직으로 일했는데 이렇게만 살 것이냐며 하루가 다르게 바가지를 긁으며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랐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둘 다 26살로 동갑이었으니 분명히 나이는 어리고 젊었다. 그래서 나에게 새로운 시도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럴 의욕도 열정도 없었다. 막연하게 성실히 직장 생활하며 받은 월급으로 생활하고 저축하고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모습이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 4개월 차 정도에 아이가 생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상상은 해봤는데 현실이 될 거란 마음 자체가 없기도 했던 것 같다.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좋았다. 원하던 낭만적인 미래의 이상향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6주 차 만에 계류유산 판정을 받았다. 전 아내는 소파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난 뒤 한참을 울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그녀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서로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평소 같았다면 장난처럼 넘길 일도 다툼이 되었다. 그렇게 2개월 만에 우리는 결국 서로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가장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토록 원하시던 손자 손녀도 안겨드리고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어도 충분히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당당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혼 소식을 알리던 그날 아버지는 다른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해주셨다. 그때 그 마음이 감사했다. 이유를 물으셨다면 아마 내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해 연애가 실패했던 경험과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고 전 아내가 나에게 바라던 점이 많았다며 흉을 보며 심지어는 아버지 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상사가 생겼다면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것인데 다행히도 사고 없이 내 마음속에만 간직할 수 있어서 안심했다.
이혼 후 나도 마치 아버지처럼 한참 방황했다. 세 번째 연애는 전 아내가 맞지만 ‘결혼’이라는 것을 했었기에 개인적으로 여자 친구라는 타이틀에서 뺐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놀다가 다빈이를 만나서 연애를 시작했다. 다빈이는 이중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둘이 아닌 제삼자가 함께 있으면 음식만 좋아하는 한없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둘이 있을 때만은 달랐다. 스킨십도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만 해야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원할 때는 다빈이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못했고 반대로 다빈이 원할 때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비하하며 깎아내리기를 좋아했다. 외모적인 것에서부터 밥 먹을 때 표정, 입의 모양, 걷는 모습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지적했다. 다빈이는 자신만의 특별한 로봇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는 모든 모습을 다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다빈이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나에게 애교로 상황을 무마하려 들었다. 나중에 지나고 안 사실이지만 다빈이는 나르시시스트였다. 잘못된 자기애의 형성으로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이면서도 싫어하는 사람에겐 악마 그 자체이고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인형처럼 부리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도 처음엔 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적하는 부분들도 모두 내가 좀 더 나아지길 바라기에 바꾸려고 하는 걸로 착각했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명치 부분이 뜨거워지는 날이 많았다. 무슨 말을 꺼내려해도 다빈이는 반박하기 일쑤였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조용히 밥을 먹으면 재밌는 이야기 좀 해보라며 다그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고 다른 친구의 남자 친구들은 다 재밌더라는 비교도 서슴지 않았다. 사랑이라 여겼으니 참고 또 참았다. 연애도, 결혼도 실패했다고 생각했기에 내 피해망상이라고 여겼다. 입에 쓴 약은 몸에는 좋을 거라며 버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입에 쓴 약은 독약이었다. 나는 점점 병들고 스트레스성 탈모와 각종 염증에 시달렸다. 모든 원인은 당시 다빈이에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나는 그날 바로 헤어짐을 통보했다. 다빈이는 쏜살같이 우리 집으로 달려와 말이 안 된다며 약 2시간을 내 앞에서 떠들었다. 그 앞에서 나는 나를 좀 놓아달라며 빌었다. 나의 부탁에 마지못해 돌아서는 다빈이의 뒷모습에 나의 마음 한구석에선 해방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기뻤고 행복했다. 명치가 타들어가던 느낌은 이내 환희로 변해갔다. 다빈이 떠나간 이후 기쁨과 환희 속에서도 이런 게 사랑이라면 다시는 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봉수와 술을 마실 때면 항상 다빈이 얘기를 했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고 가스라이팅의 후유증은 실로 엄청났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행동들이 다 미화되어 예쁜 추억처럼 느껴졌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상자에 갇혀있었음에도 그것 또한 행복이었다고 뇌가 기억 변조를 시도했다. 다빈이와 만나면서 봉수에게 힘들었던 시절에 고민 상담을 했는데 연인끼리는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대답하곤 했었다. 확실히 그랬다. 내가 제삼자고 봉수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도 똑같이 답변했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는 시각과 실제로 당하는 피해자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래서인지 술을 마시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봉수는 다빈이를 불러내는 전화를 했을 것이다. 봉수에게 보여준 다빈이의 모습은 둘만 있을 때와는 다른 천사의 모습이었기에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였다 한들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익숙한 느낌에 의지하려 했다. 마치 학창 시절에 불량식품에 중독된 것처럼 다빈이를 떠올렸다. 없으면 허전하면서도 있으면 무서움을 느꼈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그날 다빈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같이 잠을 자고 나와서도 다빈이가 어떤 말로 공격을 해댈지 두려웠다. 무서웠기에 도망치려 했으나 도망치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아무 말도 없이 헤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준 여자 친구 전에도 잠깐의 썸이 있었다. 모임에서 만났고 같이 어울려 친하게 지내며 두 번 세 번 만나는 동안에도 말이 거의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최은수였고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에 여리여리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눈은 컸다. 이런 외모적인 이상형을 종합해볼 때 나는 눈이 크고 피부가 하얀 여성을 선호했다. 내가 은수를 맘에 들어했기에 모임 자리에서 말을 걸고 번호를 물어보고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단둘이 만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긴장이 좀 풀어진 뒤 저녁 식사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대뜸 은수는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속으로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말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니 뭘까?’ 설마 ‘나처럼 혹시 돌싱일까?’ 아니면 ‘애가 있나?’ 그도 아니면 갑작스러운 고백인가 수십 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수줍게 웃으며 나의 답을 기다리던 은수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할 말이 무엇이냐며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던 은수는 나의 표정이나 생각을 읽었는지 내가 생각하는 애가 있거나 돌싱 이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내심 다행이면서도 맞아도 상관없겠다 싶었었는데 그럼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더 궁금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반문했다.
“오빠도 그런 건 아니죠? 돌싱 이라거나.. 아이가 있다거나..”
“어? 사실 나도 듣고 말하려고 했는데 나는 한번 이혼을 했었어....”
수줍게 웃던 은수의 표정이 내 말을 듣고 무섭도록 차갑게 식어갔다. 그토록 조용하던 은수는 나에게 비속어는 아니더라도 비수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왜 자신에게 접근을 했는지 애초에 접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그도 아니면 미리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은수는 나에 대한 마음이 생기려고 했는데 싹 사라졌다며 그렇게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돌아서 가는 은수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 나의 실수이기도 했고 변하지 않는 ‘돌싱’이라는 꼬리표는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수가 말을 쏟아내는 동안에 내가 받아들인 언어는 ‘감히 돌싱 주제에 나한테 접근하고 잘해보려 하다니!’라는 분노로 들렸다. 나는 곧 절망에 빠졌다. 주변의 친구들과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이혼 한 번이 뭐 대수냐며 위로했었다. 그럼에도 은수는 당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은수는 ‘돌싱’을 싫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은수가 말하려던 비밀은 끝내 듣지 못한 채로 끝이 났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을 때 구원자처럼 등장했던 존재가 바로 이전의 여자 친구였다. 나의 비밀을 알고도 멀어지려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괜찮다며 천천히 자신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꿈꿔보자고 했었다. 참 고마웠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금세 초심을 잃고 망각했다. 상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중요했으며 의욕이 없어서인지 행동도 느려지는 바람에 데이트의 반은 거의 실내에서 했다. 데이트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집에 누워서 같이 TV를 시청하고 잠자고 밥만 먹었다. 별 다른 소통도 없었고 소위 말하는 꽁냥 거림도 연애 초기 1달 정도만 그랬다. 그러니 아무리 천사 같은 구원자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문득 ‘사랑’이라고 하는 게 뭔지 궁금했다. 사랑을 준다는 건 표현을 말하는 것이고 받는다는 건 표현을 받을 때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 분명 이성 간의 관계에서 뭘 했던 것은 같은데 정확히 뭘 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졌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받고 전하는 일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사랑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가?
성적이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던 나는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랑도 못하는 건가? 온갖 물음표만 머릿속에 떠다녔다. 봉수는 고등학생 때 만나서 지금도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다. 벌써 10년이 된 관계이다. 그 둘을 보고 있을 때면 볼 때마다 신기하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어떻게 10년을 만났는지도 의문이고 볼 때마다 매번 싸우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느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고 그런 걸 보면서 저런 게 사랑일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사랑이 뭔지 정답을 찾으려다 보니 점점 지치고 머리가 아파온다. 어느새 나는 벌써 5번째 혼자가 되었다. 앞으로는 연애도 사랑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성을 만나는 자체가 두려워졌다. 나이가 드니 육체적 쾌락을 위한 가벼운 만남은 더 싫어졌다. 나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달콤하고 황홀한 게 사랑이라는데 그 느낌이 대체 무엇일지 궁금했다. 고민만 하고 있으니 어딘지 모르게 억울했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슴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하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흐르고 밤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