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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진 사랑의 원천

7부 소현이와 작은 소현이

by 정수윤세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물어뜯던 닭다리의 뼈를 반쯤 입에 걸친 채 놀란 토끼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연인인 나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양심고백을 하는 것도 모자라 너무나 태연하게 당황한 기색도 없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주 평온하게 여전히 오른손에 쥔 젓가락으로 닭살을 입에 넣으며 오물거리고 있었다. 실로 충격적인 그녀의 고백에 나는 자작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들고 있던 닭다리도 뚝배기에 던져 넣고 물티슈로 들깨 국물이 흥건하게 묻어있던 손가락을 닦았다. 그리고 양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렇게나 강력한 한마디를 던진 사람이 맞는지 연신 뚝배기와의 전투에만 관심을 둘뿐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보였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그제야 내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개그 프로그램을 본 것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심각한 상황인데 저런 함박웃음까지 짓는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무엇보다 그 사람이 누군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내 진지한 표정에 한껏 웃던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나에게 오해하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아니 오빠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마!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돌봐주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이었어 내가 주어를 빼먹어서 깜짝 놀랐구나?”


“아.. 그.... 그래?.. 말을 하지!”


나는 무안함에 얼른 팔꿈치를 내리고 다시 뚝배기에 던져두었던 닭다리를 집어 들어 입속에 넣었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소현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오빠도 질투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몰랐네?”


“엣헴.. 그래서 누군데?”


“아~ 그게 나 살았던 보육원에 들어온 4살짜리 여자아이야 나만 가면 그렇게 내 옆에 붙어서 조잘거리는 걸 좋아하더라고 평소에는 잘 그러지도 않는대! 근데 내가 있으면 그렇다고 하니까 옛날에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사랑스러워졌어!”


그랬다. 소현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나와 만나지 못하는 주말을 이용해 과거에 살던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다녔다. 얼마 전에도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설마 사랑하는 사람이 아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짧은 순간에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심각해졌던 상황이 너무나 민망해져 뻘쭘함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후에도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계속 킥킥대며 웃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 머쓱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 대한 정보를 소현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다. 또한 그녀는 나와 함께 보육원에 가보지 않겠느냐며 제안했다. 과거에 지냈던 공간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사랑하는 아이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한참 아이에 대해서 듣다 보니 아이도 궁금하고 소현이 컸던 보육원도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그녀의 제안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폴짝폴짝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보육원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단정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샤워하고 면도도 구석구석 하고 눈썹 칼을 이용해 눈썹도 정리하고 코털도 정리했다. 옷도 무엇을 입을지 수십 번 고민했다. 캐주얼하게 입어야 할지 깔끔하게 차려입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니 오른쪽 가슴팍에 빨간 하트모양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검은색 티셔츠에 아이보리색의 슬랙스 바지를 입고 출발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소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서 그녀는 언제나처럼 달려와 꼭 안아주었다. 항상 그녀를 만날 때면 만나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한결같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신기했다.


보육원으로 가기 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고민하다가 혹시나 제각각의 간식이면 다툼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한 가지로 통일하기로 하고 단팥빵과 우유를 한 아름 사서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자랐다는 보육원으로 갔다. 가는 길은 도심에서 생각보다 멀었고 도심을 빠져나와 나무가 무성한 시골길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달려 옛날 학교처럼 생긴 오래된 건물 앞에 정차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정문 바로 앞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아마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지나가던 길인 듯 시냇가로 내려가는 방향엔 잡초들이 누워있었다. 내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그녀는 정문을 지나 건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건물의 외관은 본래 연두색처럼 보이는데 색이 바래서 지금 입고 있는 바지처럼 아이보리 빛이 나는 벽에 나비, 잠자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예스러운 건물이었다. 그녀가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몇 명의 아이들은 현관문 앞까지만 걸어 나와 손을 흔들었고 작은 아이들 중 엄청나게 조그만 아이가 총총거리며 걸어오자 그녀는 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한 팔로 아이를 능숙하게 들어 올린 그녀는 나를 향해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아이들은 처음 본 내가 어색했는지 요리조리 숨어서 쳐다보기만 하고 내가 쳐다보면 숨거나 웃으며 부끄러워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등교했을 시간이라 없었고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를 포함해서 유치원을 다닐만한 아이들이 열댓 명이 돼 보였다. 저마다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와 소현을 번갈아 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너무 귀여워서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이 먹을 간식도 나눠주고 자리에 앉아 계속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녀를 마중 나왔던 아이는 계속 어딜 가든지 졸졸 따라다니고 그녀가 앉으면 옆에 앉아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그러다 내가 소현에게 말을 걸면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아마 이 아이가 그녀가 내게 말했던 사랑하는 아이인 것을 느낌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눈이 정말 동그랗고 볼살이 통통해서 귀여운 곰 인형처럼 생긴 귀여운 아이였다. 내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있는 아이를 향해 물었다.


“이름이 뭐야?”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흘기듯 한번 쳐다보고 소현을 바라보더니 잠시 우물 쭈물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빵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 박소현..이예요..”

“응? 이 선생님 이름 말고 너의 이름이 박소현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맞다는 듯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랬구나. 그녀의 옛 모습을 닮았다던 아이는 심지어 이름 세 글자가 모두 그녀와 같았다. 태어난 시기만 다르고 생김새만 다를 뿐 이름과 어쩌면 어릴 적 살던 이곳은 집과도 같으니 같은 집에서 자라난 같은 박소현이었다. 이름을 들으니 더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었고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끊임없이 떠드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잠시의 평화는 깨졌다. 가만히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부끄러워하고 숨던 아이들이 경계심을 풀고 내게 와서 수많은 질문 폭탄을 던져오니 일일이 답변해주느라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고 공놀이도 하고 레슬링 같은 장난도 치고 놀아주었다. 물론 내가 아이들을 놀아줬는지 아이들이 나를 놀아줬는지는 모르겠다. 한 시간쯤 놀았을까 점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더니 서른이 넘은 성인 남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좀처럼 지치지도 않았다. 아니 지친 기색도 없었다. 병원 놀이를 하자고 유도해서 시체 역할을 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제안을 들어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정말 다행인 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식당으로 데려가 주셔서 살았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 온몸에 힘이 다 소진된 나는 교실 중간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가 선생님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바닥과 한 몸이 된 내 옆에 그녀가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어땠어?”

“말도 마.. 애들 놀아주기 너무 힘든데? 대단하다. 선생님들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고”

“그치? 진짜 힘든 일이지? 그래도 오빠가 오늘 이렇게 같이 와줘서 너무 기뻐”

“왜? 사랑하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어서?”

“그것도 맞지만 오빠에게 내가 자란 집을 보여줬잖아. 나는 여기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애정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걸 눈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에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때 빨리 식사를 끝낸 소현이가 그녀를 찾아왔다. 아이는 잠시 우리가 안고 있는 광경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온 것을 알고 내 행동에 순간 자책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이리 와 소현아”


그녀가 아이에게 손짓하자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더니 나와 그녀 사이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를 있는 힘껏 꼭 끌어안아 주고 나는 사랑스러운 두 명의 소현이를 감싸 안았다. 기분이 정말이지 너무나 묘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아이를 중간에 두고 서로 안고 있으려니 마치 우리가 낳은 아이 같았다. 씩씩한 아이는 울지도 않고 우리 둘 사이에서 가만히 온기를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더 일렁였다. 잠시 뒤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돌아와 셋이 꼭 끌어안고 있는 걸 보고는 ‘얼레리꼴레리’라며 놀렸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을 씩씩하게 했다. 왜 그녀가 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았다. 외부 환경이 어떻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해가 저물고 우리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택시를 불러두고 올 때까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에도 아이는 그녀의 곁에 붙어서 그녀가 건네는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꾹 눈물을 참으며 들으며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겨우 4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니 더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를 다시 시내로 데려갈 택시가 도착하고 한 걸음씩 아이들에게서 그녀가 사랑하는 아이에게서 우리는 멀어졌다. 운동장을 반쯤 지났을 때 갑자기 아이가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쭈그리고 앉아 달려오는 아이를 맞아 한 팔씩 손을 뻗어 아이를 안아주었고 아이는 우리에게 못다 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 아저씨 다음에 또 올 거죠?"

"당연하지...!"

"고마워요. 행복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다음에 꼭 또 와요. 꼭 다시 만나요.”


울음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전하는 아이의 음성을 듣고만 있었다. 정확히는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메어와서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는 등을 돌려 다시 선생님이 계신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우리는 하염없이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슬퍼 보였지만 씩씩했고 외로워 보였지만 담담해 보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면서도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어색하게 입꼬리만 미소 지으며 손만 흔들었다. 조금씩 보육원에서 멀어져 갈 때 그녀가 내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으리라 생각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세상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받는다는 감정 같은 것이었다. 4살짜리 아이가 전하는 몇 마디의 말속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듯이 느껴졌다. 단순히 그녀가 같이 가자고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색적인 데이트를 하듯 그녀가 자라온 보육원에 가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얻은 건 인생을 오래 산 어른도 누구라도 억만금을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을 몸소 경험했다.


아이의 마지막 말은 시간이 흘러도 한참 뇌리에 박혀 있었다. 웃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아이에게서 사랑의 또 다른 의미 혹은 새로운 면을 배웠다. 이성 간에 혹은 가족 간에 느끼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연민의 마음이었다. 어쩌면 내가 원한 맹목적인 사랑의 모습이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참회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을 경험하게 해 준 하늘과 운명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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