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 무주택자인 우리 부부에게 내 집 마련보다 먼저 소박하게 1년간 5평 남짓한 텃밭을 운영해 볼 기회가 생겼다. 당시, 우리에겐 각자 커리어로 인한 치임, 지침, 번아웃이 지배적인 키워드라 할 만큼 힘들었다. 그래서 주말의 시간은 별다른 일거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그저 몸과 마음을 숨통 트이는 정도로, 다시 월요일을 시작하기에 무리 없을 정도로 지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베란다 화분을 키우던 경험을 살려, ‘텃밭’에 관심이 생겨 1년간 텃밭을 지원해 주는 서울시 주관 텃밭 지원 사업에 신청했고 별다른 경쟁 없이 선정되었다. 남편에게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하자, 그는 ENFP 와이프의 즉흥적인 면을 체념한 듯했다. 그리고는 1년이란 시간이 주는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는지 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그만둘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텃밭 개방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금요일 저녁, 퇴근한 남편은 내일 꼭 가야 하냐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침 일찍 차 막히기 전에 경기도 광주시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맛있다고 소문난 김밥 6줄을 사서 텃밭으로 향했고,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어느새 텃밭 생활 1년을 완주했고, 2년 차 텃밭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남편은 10평 정도가 좋겠다고 의욕을 보였고, 제대로 장비를 갖추길 바랐다.
그저 5평 남짓한 텃밭이 우리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 텃밭을 할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5가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물론, 텃밭의 위치도 중요하다. 마침 내가 신청한 텃밭은 팔당호를 따라 몇 킬로 달리다 보면, 용마산 끝자락에 인접한 곳이었다. 종종 도심 근처에서 텃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들면 크고 작은 도시 빌딩들이나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가 보여서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산은 부지런히 4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웅장한 패션쇼를 선보였다. 매번 대자연이 나를 빙 두르고 있을 때면, 나는 참 작은 존재구나 하는 경탄이 느꼈다.
2. 소소한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상추 여러 종, 브로콜리, 토마토, 고추, 가지, 양배추, 쑥갓, 부추, 대파, 배추, 무 등 다양한 채소를 심었고 길렀다. 추수하는 감격이 클 거라고 기대했지만, 꽤 과정마다 수고로운 노동이 동반되는 것을 깨달으며, 쉽게 마트에서 1,000~3,000원대에 살 수 있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 ‘고작’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가 겨우내 얼어있던 밭을 손이 얼얼할 정도로 일구고, 뜨거운 뙤약볕에 땀이 흠뻑 젖을 만큼 쪼그려 앉아 잡초들을 뽑고, 옷에 물이 튀면서 물이 가득 담긴 물뿌리개를 수십 번 나르던 그 숱한 과정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래서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그 모든 것 뒤에 숨겨진 수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3. 순리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갖는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적인 결과를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어떤 일에도 통하는 진리와 같다. 텃밭도 마찬가지로 애쓰고 힘쓰고 맘 쓰는 모든 것에 비례해 매번 성공적이지 않았다. 물론 어디서나 잘 자라주는 작물들은 초보 텃밭러에게 뿌듯함을 주었지만, 까탈스러운 작물들 앞에서는 속절없이 소심해졌다. 똑같은 환경임에도 어떤 토마토는 맥을 못추고 썩어버렸고, 브로콜리는 결국 알맹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잡초와 흡사해 보인 대파 새싹들은 우리의 무지로 뽑히는 실수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참 노력 플러스 자연의 순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싹 모종이, 아주 작은 씨앗이 땅에 심겼지만, 땅이 가진 영양분과 때에 맞춘 날씨의 도움이 없다면 수확의 기쁨을 맛보긴 어렵다. 오만함을 잠재우는 겸허한 농부의 마음을 갖게 된다.
4. 온전히 오프 하는 재미를 발견하다.
텃밭은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노동이라 눈동자와 손가락만 까닥하는 핸드폰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한두 시간이 우리에게 두뇌활동과 신체활동의 밸런스를 맞춰 주었다. 오랜 시간 머리 쓰는, 책상에 앉는 것을 ‘일’이라고 알다가, 텃밭을 통해 몸을 쓰는 일을 주기적으로 겸직하며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이것도 재밌고, 이것도 뿌듯함이 있네? 빠르게 소비되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오프하고 우리는 산들거리는 바람과, 햇살과 새싹의 변화를 만끽했다. 정. 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미디어의 강한 자극이 없는 삶에서도 재밋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5. 마음의 쉼을 두는 곳이다.
정기적으로 외곽에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적을 두는 것이 이렇게 좋을 일이구나 싶었다. 어쩌면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며 허무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주말 오전의 시간을 힐링하고 충전하는 시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텃밭이 몸을 쓰는 노동이자, 바쁜 현대인으로 쫓기는 마음을 다잡는 안식처가 되었다. 이런 경험은 다음에 또 가고 싶은 귀향 본능을 갖게 한다. 나보다도 남편에게 그런 쉼을 준 텃밭에 고마울 뿐.
그렇게 우리는 자연을 주기적으로 볼 수 있는 텃밭을 신청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왕 가는 거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는 소소한 노력이 트리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반에는 얼마 못 가 그만둘 것 같아서, 텃밭의 기본 장비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장화 대신 운동화를 신었고, 장갑 대신 고무장갑을 끼기도 했다. 돌아보니 우리는 우스운 모습으로 1년을 완주해 냈다. 놀라울 뿐이다. 참고로, 두 아들에게 좋은 경험이었다는 내용은 제외했다. 두말하면 잔소리.
여전히 열정적으로 텃밭장인이 되려는 마음은 부담스럽고 거절한다. 그런데도 매년 하다 보면, 작년의 레슨이 쌓여 쪼끔씩 성장하는 노하우가 쌓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는 텃밭 작업을 위한 장화를 구입할 것이다.
모쪼록 이 글이 텃밭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